고양팔현 한 분, 화전 출신 만회 이유겸
19세에 3일 동안 삼각산 구석구석 등정
세세한 여정과 감회 칠언절구 시로 남겨
“스토리텔링 탐방 코스로 복원했으면”

안재성 고양시 향토문화진흥원장
안재성 고양시 향토문화진흥원장

[고양신문] 억년의 신비를 간직한 채 우뚝 솟아 있는 장엄한 북한산(삼각산)은 그 자체가 자연사 박물관이다. 북한산은 우리나라 명승 10호인 인수봉, 백운봉, 만경대 세 봉우리가 지니는 신비로운 자태와 영산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성을 쌓으며 각축을 벌였던 영욕의 역사도 함께 간직한 곳이다. 도심 자연공원으로서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는 삼각산은 수도권 주민을 비롯하여 많은 탐방객이 찾는 자연 휴식처로서 크게 사랑받고 있다. 

자연문화유산에는 신비로운 경관과 유장한 역사가 함께 깃들어 있다. 삼각산은 예부터 선인들의 유산(遊山) 대상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런 만큼 많은 역사와 숨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북한산과 북한산성에 깃든 깊고 은은한 문화의 힘은 우리 모두가 오래오래 이어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오늘날 북한산은 한양도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바탕으로 진정한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과거 북한산과 인연을 맺었던 인물과 지명 연구가 절실하다. 이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조선 중기의 문신 만회당 이유겸(晩悔堂 李有謙, 1586~1663년) 선생이 남긴 ‘유삼각산(遊三角山)’이라는 장문의 시를 고양신문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 시를 수년 전 『고양팔현과 문봉서원』(고양향토문화연구원 刊)이라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만났다. 당시 고양팔현(高陽八賢) 중 한 분이신 이유겸 선생의 후손들로부터 문중에서 전해오는 이 작품을 국역본과 함께 전달받았던 것이다. 

노을빛에 비친 북한산(삼각산) 영봉의 모습. 
노을빛에 비친 북한산(삼각산) 영봉의 모습.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인 1605년 가을, 19세의 나이로 고양군 화전 집에서 독서로 나날을 보내던 만회당 이유겸 선생은 오래도록 염원했던 삼각산 등반을 실행한다. 산행을 준비하고 지인들을 만나 길을 떠나는 과정을 시작으로 중흥사, 산영루, 영천암, 백운봉, 만경대, 인수봉, 문수사, 보현봉, 비봉, 승가사, 탕춘대 등 차례로 탐방 등정하고 하산하는 2박 3일간의 감회를 ‘유삼각산’이라는 시 속에 주옥같은 문장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칠언절구(七言絶句)로 쓰여진 ‘유삼각산’을 한 수 한 수 읽어내려가며 필자는 여러 번 감탄사를 토해냈다. 북한산 곳곳을 나들이한 여정이 지은이의 탁월한 문장력을 통해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됐기 때문이다. 명소를 찾은 감상은 물론, 산을 유람하며 무엇을 먹고 누구와 만나고 어디에서 묵었는지를 세세하게 적어넣은 덕분에 당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탁월하다. 

예를 들어 승려와 동행해 길잡이를 삼고, 닭고기와 주먹밥으로 끼니거리를 장만하고, 임진왜란 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명나라 낙오군인을 만나 술잔을 주고 받고, 산정 바위에 우뚝 선 이름 모를 비석(진흥왕 순수비로 추정할 수 있다)을 만나는 대목 등은 삼각산을 찾은 어느 문인의 글보다도 구체적인 감흥을 전한다. 선인이 밟았던 몸과 마음의 여정이 42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북한산을 즐겨 찾는 후손들에게도 똑같은 감동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조 19년에 출생해 현종 4년에 임종한 이유겸 선생의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다. 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이지신, 아버지는 증 승지 이할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다. 벼슬은 호조참의에 이르렀으며, 가문 대대로 고양군 화전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사후에는 고양의 문봉서원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으로 『만회유고』가 전한다. 

이유겸 선생의 후손으로 명문가의 명성을 이은 타우공, 농재공, 일휴정, 귀락당, 도암공 등 많은 명관·성현들이 낳고 자란 곳도 고양시 화전이다. 선생의 후손 중 근·현대사 인물로는 사학계 거두로 평가되는 고 이병도(11대 손) 박사,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고 이어령(이병도 7촌 조카) 박사, 문화재청장을 지낸 이건무(이병도 손자) 박사가 대표적 인물들이다. 

바라기는 더 많은 고양시민들이 ‘유삼각산(遊三角山)’ 시 원문과 국역본을 함께 읽고, 자랑스러운 우리 고장 선조의 발자취를 되새겼으면 한다. 나아가 그가 걸었던 옛길 복원사업을 추진해 역사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정신적 힐링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기원한다. 

성능대사가 출간한 '북한지' 중 '북한도'. 
성능대사가 출간한 '북한지' 중 '북한도'. 


세간에도 이런 신선 세상 있었구나!

유삼각산(遊三角山)  

詩 - 만회당 이유겸(晩悔堂 李有謙)
국역 - 이유겸 선생 문중

 

山名三角角有三  봉우리가 셋이 여서 산 이름이 삼각산인데
雪外芙蓉削寒王  구름 밖에 연꽃 같은 봉우리는 옥으로 깎은 듯하다.
一脈初從白頭南  호젓한 첫 줄기는 백두산 남쪽에서 내려왔고 
兩派中分汾水北  두 줄기가 중간에서 분수령 북쪽으로 뻗어 내렸다. 

歷遍諸峯二千里  여러 봉우리가 이 천리를 두루 거치면서
坐鎭王都備五德  왕도를 진정하고 오덕을 두루 갖추었다. 
學士詩稱山字體  학자들의 시는 산이 글자체라 하였고  
道詵歌傳吉祥宅  도선 선사 노래에는 상서로운 명당이라 전했다. 
                           
四方名山皆輻輳  사방의 명산들이 모두가 이곳으로 몰렸으니 
似爲靈境爭朝謁  신비한 지경에다 다투어 조회를 하는 듯 
東楫金剛萬二峯  동쪽에선 금강산 만 이천 봉이 읍하고 있고 
曉着扶桑紅日躍  새벽에는 동방의 붉은 해 떠오름을 본다.                        

西臨蒼海浩無際  서쪽으로 푸른 바다 끝없이 활짝 틔었으니 
王母驂鶯來彷彿  서왕모가 난세를 타고서 내려오는 듯하다.                         
香山在後智異前  묘향산이 뒤에 있고 지리산이 앞에 있어 
獨擅形勝當中立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가운데를 독차지했네                          
                            
根盤漢北牛鳴地  근거는 한강 북쪽이 소 울음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
怪底仙居近城邑  야릇하여라 신선이 사는 곳에서 도성이 가깝다니...
山中朝暮景非一  산중의 아침저녁 경치가 흩어지지 않아 
異態奇形誰晝得  이상한 형태와 신기한 형태를 누가 그릴 것인가.                        
                           
深澗花殘谷鳥響  깊은 내에 꽃이 지면 골짝구니의 새 지저기고 
遠天雲捲奇峯列  먼 하늘에 구름 거치면 기이한 봉우리 벌어진다.                          
丹楓醉來錦繡分  단풍이 짙어지면 골짝은 비단으로 바뀌고 
白雲堆時天地窄  흰구름 피어날 때면 천지가 좁아진다.                          
                           
騷人墨客幾登陟  시인과 화원들이 몇 사람이나 올라왔던고  
步葉牽花踵相接  낙엽 밟고 꽃을 꺾은 발자국이 이어졌구나                          
我亦平生勞夢想  나도 평생에 구경할 생각을 꿈꾸었지만
自笑塵臼難能脫  세속 이연 벗어나지 못한 것에 스스로 웃는다.

보현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의 웅장한 모습. [사진=이재용]
보현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의 웅장한 모습. [사진=이재용]

❚첫째 날

身世飄蓬十九年  내 신세 바람에 불리는 쑥처럼 떠돌기 19년                          
咫尺匡廬猶未覿  신선 사는 지척의 명산을 아직 보지 못했다니.        
去年虛負洛花時  지난해 꽃이 질 때도 헛되이 때를 넘기었는데 
今年幸値秋風節  금년엔 다행히 가을바람 절기를 만났다.                           
                            
欲追司馬壯襟懷  사마천을 따라서 구경하며 가슴을 후련하게 하고.
擬去孫公夏蟲惑  여름 곤충에 비긴 말처럼 여름벌레의 겨울을 외면하려 한다.
旣約親朋二三子  진작에 친한 친구 두서너 명이 약속을 했고 
且喜同行有白足  더군다나 높은 승려까지 동행해서 더욱 기쁘다.                          

浩然行裝一雙屐  후련히 떠나는데 봇짐에는 미투리 한 켤레로 
暮投花田蘭若宿  저물무렵 화전에 들렸다가 절에서 묵었다.                           
平明携爾柳君望  날이밝자 동행한 유군 망이 나를 이끌고 
鞭馬東走姑山麓  말을 몰아 동으로 노고산 기슭으로 달렸다.

行行初到翰林岩  가다 쉬고 가서 처음에 다다른 곳이 한림암인데
勇退高風氷玉潔  세차게 부는 바람은 얼음이나 옥처럼 맑다.
人去千秋洞天幽  인걸은 간지 오래고 하늘 통하는 길은 그윽하고 
白石淸川舊風月  하얀 바위 맑은 냇물의 풍월은 여전하구나.                         
                          
將軍昔日破賊處  옛날 장군이 도적을 무찌른 자리인  
岩上龍盤城百尺  바위 위 용반의 성은 백척이나 된다.
神山豈許紅寇侵  신비스런 산이 어찌 홍건적의 침입을 그냥 두겠는가  
竟使凶酋皆殞滅  흉악한 귀수는 마침내 모조리 궤멸했었다.                  
                           
重恢麗室旣亡後  거의 망한 고려왕실 다시금 수복했으니                           
功德崔嵬映竹帛  그 공적과 덕행은 높고 높아 역서에 빛난다.             
步人城門不見人  걸어서 성문에 들어서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立幟遺痕在岩石  바위에 세웠던 깃발의 흔적만 남아 있다. 

閑來偃息籍芳草  피곤해서 편히 쉬려고 방초를 깔고 앉아서 
却呼童子探行橐  아이를 불러 지고 온 전대를 풀게 하였다.                         
黃鷄白飯下筋忙  닭고기와 주먹밥으로 허둥지둥 시장기를 면하고
杯取寒流漱珠液  흐르는 개울물을 잔으로 떠서 양치질을 하였다. 

一逕斜趨松檜中  비탈진 오솔길로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를 가는데 
路左澄湫深不測  길 왼쪽 맑은 웅덩이는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구나
金沙玉礫俯可數  꾸부리고 보니 금모래와 조약돌을 헤어볼 만 하다.
知是神蛟所盤屈  아마도 저 속에는 신비한 교룡이 도사리고 있는지
                          
夕陽江樹倒潭底  저녁볕에 나무 그림자 연못 아래로 깔리니 
水色蒼茫耀金碧  물빛은 끝없이 파랗고 햇살은 금빛으로 반짝인다.
穿林又向武陵溪  숲을 지나 다시금 무릉계곡을 향해 오르니
流水盤回三百曲  흐르는 냇물이 솟구쳐 삼백구비가 넘는다.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북한산의 계곡. [사진=이재용]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북한산의 계곡. [사진=이재용]

避世人居在何處  그 옛날 세상 등지고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갔느냐 
應化飛仙朝碧落  신선되어 푸른 하늘로 돌 소리를 내듯 떨어졌는가   
重尋他日携家累  훗날에 다시 올 때 집안 식구 함께 오겠으니 
莫敎迷途謝樵客  나무꾼아 그 때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하라                           
                           
更飛孤笻鳴石上  다시금 지팡이 짚고 바위소리 들으며 오르자니   
觸目無非寄且絶  눈에 띄는 것은 기이하지 않은 것이 없구나 
黃梅洞留使君詩  황매동의 군수 시가 남아 있고 
碧霞潭傳從事作  종사공이 지은 벽하담전도 만든일도 있다.                         

沿溪十里興不盡  계곡을 따라 십리건만 흥취가 끝이 없고 
薄暮仍訪中興刹  땅거미지면서 중흥사에 닿았다.
門前迎拜兩沙彌  두 승려가 반갑게 합장하며 마중하고  
仙果相持慰行役  산과일 내오면서 산행의 고됨을 위로한다.                         
      
山映樓空基尙存  산영루는 속절없고 빈터만 남았는데 
十王殿古羅千佛  십왕전과 천불은 해묵은 채 남아 있구나
金壇夜寂萬賴沈  법당은 밤이라 고요해서 온갖 소리 잠잠한데 
玉兎寒蟾天色泣  옥토끼는 하늘이 추운지 울고 있는 듯하다.
                       
有人頭戴蔽陽子  머리에 파랭이를 쓴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整折趨前垂手揖  삼가 허리를 굽히고 앞에 나와 손들어 읍하면서                        
自言上國東征士  나는 임진난 때 명나라 병사로 왔다가                       
病滯於斯歲換七  병에 걸려 이곳에 머문지 칠년이 넘었다 했다.                                                      
家在紹興歸未得  내 집이 강남땅 소흥인데 돌아갈 수 없다면서
一曲悲歌淚雙滴  슬픈 노래 한가락에 눈물이 두 줄로 흐른다.
松醪相屬任醉倒  막걸리가 오고 가자 취해서 멋대로 곯아떨어지고
霜菊階邊脫香發  계단가의 서리 맞은 국화도 향기를 풍긴다.

이유겸 선생이 여정의 첫날 밤을 묵은, 삼각산의 중심사찰인 중흥사. 최근에 중건되어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유겸 선생이 여정의 첫날 밤을 묵은, 삼각산의 중심사찰인 중흥사. 최근에 중건되어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둘째 날 
                           
酒盡禪房睡初熟  술이 끝나 선방에선 첫잠이 한참인데
曉來淸磬驚蝴蝶  새벽의 맑은 풍경소리 단꿈을 깨운다.
諸僧禮罷拜席寒  스님들의 예불이 끝나 법당자리 설렁한대
殘燭靑瑩照佛榻  촛불만 파랗게 반짝이면서 부처를 비친다.                         
                           
凌晨欲陟最高頂  새벽을 무릅쓰고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르려하니
石磴苔深山徑滑  돌길에 이끼가 끼어 산길이 미끄럽구나
雲間高揷露積峰  구름사이로 높이 솟은 노적가리 같은 노적봉은
量沙奇謨遵舊轍  모래를 쌓았던 기묘한 계교 그냥 써도 되겠네                         
                          
靈泉庵上飮靈泉  영천암 위에서 약수를 마시고 나니
使我神心何快豁  정신이 맑아져서 마음마저 후련하다.
蒼生轉石路忽斷  벼랑에서 바위가 흘러내려 갑자기 길이 끊기니
閣道人行橫一木  나무로 가로 걸쳐 놓고 길 삼아 건넜다.                         
                            
白雲峯下萬景臺  백운봉 아래는 만경대이고
不思庵裡千年窟  불암산 속에는 천년굴이라네
危乎壯哉幾千丈  드높고 장엄하다 몇 천 길인가
納納乾坤皆入月  하늘과 땅이 모두 달에 감싸인 듯하다.

低頭下唾海上山  머리 숙여 뱉은 침이 산이 바다위에 떨어지듯 
引袖仰佛天邊日  소매 당겨 휘저으니 하늘가의 해도 잡힐 듯
終南不飜作杯土  끝에 남산은 한 줌의 흙일 따름이고 
漢水飜作杯中物  한강 물은 술잔 속의 번득이는 티끌이러라  
                          
仁壽峯尖出半天  인수봉은 뾰죽 하게 반 하늘로 솟아나서
玉東銀排抽劒戟  옥을 묶은 듯 은을 버려 칼과 창을 꽂은 듯 
冷然況若御風仙  싸늘하고 황홀해서 바람 위의 신선 같이
渾體還疑生羽翼  온몸에 날개가 돋은 듯 의아하다.       

노적봉과 만경대. 
노적봉과 만경대. 

日暮歸來歇行脚  해가 저물자 돌아와서 산행을 쉬고
更理芒鞋上南郭  미투리를 챙기고 남쪽 성곽에 올랐다. 
文殊寺對普賢峯  문수사는 보현봉을 마주했는데 
聳拔沖空勢相遂  빈 하늘에 우뚝 솟아 서로 쫓는 듯하다. 
                        
蒼猊背上石佛像  푸른 사자 등어리 위의 돌 부처상은 
左右羅漢森如束  좌우에 나한들이 장하게 늘어섰다.
手攀雲梯下山腰  손으로 사다리를 잡고 산기슭을 내려오니
脚底層巒可褫魄  다리 밑의 층층으로 정신이 아찔하다.
 
旋登負兒百仞岩  돌아서 백길 되는 부아암에 올라가서   
歷探溫王千古跡  백제 온조왕의 천고의 자취를 찾았다.
山河不改慰禮城  산하는 변함없고 위례성은 여전한데
萬事亡羊彌鄒忽  만사는 미추홀처럼 흔적이 없구나                         
                
徒倚西峯更怊悵  서쪽 봉우리로 옮겨 기대니 다시금 허전해
數尺荒碑誰所刻  두어 자의 옛 비석은 누가 새겼는가(진흥왕 순수비) 
僧言無學相地處  승려의 말은 무학대사가 터를 잡았다는데
字晝盡訛苔生綠  글자의 획이 모두 마모되어 이끼만 파랗다.                           

三日山行不知疲  사흘동안 산행을 했는데도 피곤할 줄 모르고
夕投僧伽方丈食  저녁에 승가사에 들러 절밥을 먹었다. 
開窓俯瞰長安道  창을 열고 장안으로 내려가는 길을 본다.
燈點明星萬家陌  등불이 별처럼 반짝반짝 마을을 비친다. 

이유겸 선생이 둘째 날 여정을 푼 승가사의 현재 모습.
이유겸 선생이 둘째 날 여정을 푼 승가사의 현재 모습.

❚셋째 날 

夜深風檜鳴瀧瀧  밤이 깊어 전나무에 바람이 솔솔 불어와
骨冷魂淸塵慮滌  뼈까지 시리고 정신이 맑아 속세 떠난 듯하다.
明朝過雨地藏窟  밝은 날 아침에 지장굴에서 비를 맞으니
蕩春臺下流川咽  탕춘대 아래엔 냇물이 콸콸 흐르겠지.                      
       
歸鞭斜劈碧羅咽  돌아오는 비탈길에 저녁연기 혜치고 나와
出洞漸覺雲山隔  마을에 나오자 구름 낀 산은 멀어져 간다.
十步移來九回頭  열 걸음 옮기는데 머리를 아홉 번을 돌렸으니
此心似余佳入別  마음은 마치 미인과 작별한 듯 안쓰럽다.
                           
此余宿願今始償  내 몇 해 묵은 소원을 오늘에야 풀었으니
錦囊從玆不憂乏  이제부터는 시의 밑천 떨어졌다 걱정 안하겠네.                      
人間有此壺中境  세간에도 이러한 신선 세상 있는데도                            
碧海不須蓬萊嶽  벽해에서 봉래산을 찾을 것이 있겠는가                       
                          
寄謝山靈勿嘲罵  산신령께 당부하니 비웃고 욕하지 마소
早晩移家老林壑  조만간에 이사해 이 골짝에서 늙으리다.                        
會待秋霜凝萬樹  분명 가을 서리가 나무마다 엉킬 때 기다려
定把長鑱劚仙藥  정녕 긴 삽을 쥐고 와서 신선 약을 캐리다.

조선시대 지도인 '동국여도' 중 '북한성도'.
조선시대 지도인 '동국여도' 중 '북한성도'.
고양팔현 추향제 모습. 이유겸 선생은 고양팔현 중 한 분이다.
고양팔현 추향제 모습. 이유겸 선생은 고양팔현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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