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2020년 2월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될 무렵 '푹 쉰 후 슬슬 재난학교를 만들고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자'는 칼럼이 어느 신문에 나왔다. 아파도 쉴 수 없었던 사람들이나 손님이 끊긴 가게를 지켜야만 했던 사장님들 입장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유로움이었다. 그런데 여유로운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손에 돈을 쥐어주는 움직임이 그 무렵 있었다.
경기도가 먼저 도민 대상 1인당 10만원을 지급하였다. 많은 지자체가 그 뒤를 따랐다. 소득비례 재난 지원을 하려던 당시 문재인 정부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곧 다가올 21대 총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모두에게 현금 충전카드를 지급하였다. 거주지가 다르거나 대형 쇼핑몰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단서가 붙었지만, 편의점에서는 술도 살 수 있는 카드였다. 머쓱해진 정부가 지원금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재난지원금 신청과 동시에 기부 의사를 밝히는 절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누가 기부를 했을까?
막대한 현금 살포가 있었지만, 당시 정부와 여당은 공공의료체계 확대에는 돈을 아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진 국공립 병원 확대 청사진은 없었다. 제이차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베버리지 보고서를 만들고 무상의료서비스(NHS) 등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설계도를 만들었던 영국과 전혀 딴판의 대응이었다. 일단 먹고 쓰게 하고 표를 얻도록 하자. 계속 집권하면 그만이다. 이런 정략적 접근 외 다른 청사진을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의사 파업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초라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삶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속가능하면서 희망을 줄 수 있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다. 마을 부잣집에서 명절 때 마을 사람들을 위해 내려주시는 떡값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의미는 한번 뿌리는 현금이 아니라 지속적인 소득보장제도와 경제 성장이라는,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제도 확립이었을 것이다. 지금 25만원을 모두에게 준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13조~18조원 수준의 일회성 현금 뿌리기가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희망의 구조를 만들어줄까? 의사들이 파업의 ‘파’자만 언급해도 걱정이 되는 상황을 없애기 위한 국공립 병원을 만들고 노인들만 늘어나는 시골 마을에 마을 주치의 한 명이라도 배치하기 위한 돈은 어디에서 끌어오나?
한정된 재원을 어느 영역에 우선 투자해야 할 것인가에 논쟁을 할 수 있다. 그러한 논쟁의 출발은 25만원을 스스로 벌 수 있는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25만원 아니라 250만원을 벌어도 만족하거나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없는 극단적인 경쟁 구조,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소비 수준, 믿고 의지하며 비용 걱정 없이 내 문제를 털어놓을 상담소 하나 제대로 없다는 사실이다.
내 집 한 채는 있지만 외로움과 고독을 견디기 힘든 노인들이 소득ㆍ자산 기준 초과를 이유로 상담 등 사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늘어만 가는 대출이자와 빚을 국가가 갚아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제대로 된 부채 상담, 경제교육, 가족관계 상담 사회서비스 체계를 촘촘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학대피해아동, 자립준비청년, 장애인, 중독환자 등등 사회서비스와 가족지원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에 우선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서비스라는 체계와 제도가 지속가능하게 우리 곁에 남을 것이고 수많은 일자리 창출이 있을 것이다. 25만원을 스스로 벌면서 삶의 만족을 찾을 수 있는 구조 구축에 눈을 돌릴 때이다. 부잣집 영감님의 떡값이 갖는 의미를 이제 많은 국민들이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우기실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