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남 장항동기업인협회장 - 인쇄산업에 대한 인식 전환 제안
인쇄산업 40년 종사한 산증인
책임감으로 협회장 역할 맡아
장항동 인쇄단지 수많은 난제
인식 전환으로 해법 모색해야
[고양신문] “회사를 설립한 지 20년만인 2009년에 장항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다 보니 더 넓고 싼 공간이 필요했어요. 장항동은 자유로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물류에도 최적지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쇄업체가 저희처럼 하나둘 이곳으로 터전을 옮겨왔던 거죠.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흙길이었던 도로가 10년 넘게 요청한 끝에 비로소 아스팔트로 포장될 정도로 관심과 지원이 너무나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회원사 증대·활발한 소통 나서
일산동구 장항동은 마을 전체의 모습이 노루의 목처럼 길게 생겼다고 해서 노루 ‘장’자와 목 ‘항’자를 따서 지어진 지명이다. 이곳에는 1800여 개의 인쇄출판 관련 기업들이 모여있고, 5000명 안팎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2007년 고양시가 JDS 개발계획을 발표하며 장항동 일대에 대한 개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장항동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모아내자는 공감대에 따라 장항동기업인협회가 창립됐다. 인쇄산업단지에 대한 기대감이 커 설립 초기엔 1000개가 넘는 업체들이 회원사로 참여해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개발계획이 무산되고 10년 이상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하며 협회의 활동도 위축돼갔다.
“책임감이죠.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가 무슨 욕심을 내겠어요. 10년 넘게 협회 임원을 맡아왔었던 터라 그러한 현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주로 창립 원년 맴버만 남아 있는 협회의 회원사를 다시 늘리고 활발히 소통하며 지지부진했던 활동도 재개해보려고 합니다.”
중요한 고비마다 변화 적극 대응
올해 장항동기업인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용남 회장은 인쇄 밥만 40년 넘게 먹어온 인쇄산업의 산증인이다. 어린 시절 매형의 권유로 처음 인쇄업에 발을 내디디며 기술을 배웠고,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활판인쇄가 사라지고 마스터 인쇄 등 인쇄산업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1988년 개인사업자로 덕흥인쇄를 설립했다.
최고의 품질, 최첨단 기술, 최상의 서비스 정신을 바탕으로 광고, 출판, 인쇄문화에 획기적 신기원을 이룩하겠다는 목표하에 사업을 이어갔고, 2002년엔 명보프린트라는 법인으로 전환했다. 미쓰비시 6색 UV 인쇄 및 5색 UV 인쇄기를 비롯해 톰슨 및 접착시설 등 장비를 보유하고 있고 매년 80~9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회사를 안정적으로 키워왔다. 특히 패키지 인쇄 최적화로 차별화된 제품력을 바탕으로 LG화학, 신신제약, 휴메딕스, 한국코러스 제약, 오스템 등에 납품한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출판, 카탈로그 인쇄, 각종 서류 양식 인쇄는 온라인·모바일 그리고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지만, 산업용 박스나 포장은 없어질 수가 없다고 보고 거기에 집중했던 것이 주효했어요. 10여 년 전부터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육성했던 것도 지금 와서 보니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직원 50명 중 20명이 외국인 근로자인데 참 일을 잘 합니다.”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과 회계·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사위, 그리고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하면 60명 내외의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일하고 있기에 회사 걱정은 그리 크지 않단다. 어려운 처지에서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장항동 기업인들의 현주소를 타개하기 위해 장항동기업인협회 회장직을 맡게 된 것도 그런 든든함 덕분에 가능한 일일 테다.
인쇄업 다양한 기술과 융합·발전
장항동에서 처음 시작된 고양시 인쇄 집적지는 삼송테크노밸리 내유동 인쇄단지 등 지역 내로 폭넓게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장항동 인쇄 집적지의 인프라나 열악한 환경은 좀처럼 변화의 조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장항동 인쇄단지의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많은 소규모 인쇄업체들은 파주 등지로 밀려났고, 그 자리를 물류 업체가 채우면서 화물차량이 증가해 교통혼잡이 심해졌다. 장항굴다리 교차로 구조개선 작업과 제2자유로 신평IC까지 2.5㎞ 구간의 ‘장항로’ 왕복 4차로로 확장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교통혼잡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공용주차장이나 단지 내 열악한 도로환경 개선은 기대 난망이다.
인쇄단지로 출퇴근 하는 근로자를 위한 대중교통 노선은 긴 배차시간과 많은 정류장 경유로 무용지물이다 보니 근로자들은 백석역에서 걸어서 출퇴근하는 상황이다. 협회 차원에서 몇 달 전 고양시에 인쇄단지 출퇴근 맞춤형 버스 노선을 제안해 놓았지만, 아직 답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설이 노후화되면서 안전사고의 위험도 크다. 건물들이 빽빽이 붙어 있어 불이 나면 발생하면 옆 건물로 번질 위험이 큰 데다가 도로까지 좁아 소방차 진입이 어렵다 보니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수많은 난제를 풀 해법이 과연 있긴 할 걸까.
“고양시는 전국에서 인쇄기업이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가장 먼저 인식과 마인드 그리고 발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봐요. 장항동 인쇄단지 건너 농림지역에 로컬푸드 매장은 되는데 왜 인쇄업체 집적건물을 건립하거나 인쇄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수 없다는 건가요. 또 이곳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인쇄문화 특화 거리로 조성할 생각은 왜 안 하는 걸까요. 인쇄산업은 단순히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기술과 융합해 친환경·맞춤화 서비스를 통해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머리를 맞댄다면 문제에 대한 ‘정답’이 아닌 ‘해답’을 하나하나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