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넷 월요시민강좌 -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극단적 이기주의 횡행한 시대
돈만 숭상하며 괴물이 된 인간
한국 고유철학은 진리의 뿌리
몸 아닌 마음 중심 시대 도래
욕심 줄이고 본심을 회복해야
[고양신문] ‘네가 사람이냐?’ 한국인들이 다툴 때면 흔히 내뱉는 말이다. 사람이 아니면 무엇일까. 사람이 아니면 결국 짐승이다. 짐승은 단순히 동물이란 뜻만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짐승이라고 부른다.
짐승으로 살면 개인적으로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세상도 혼란해진다. 정치가 혼란하고 경제는 불안하고 교육도 위기다. 이런 현상은 어느 한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됐다. 왜일까.
이기동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요즘 세상이 혼란하게 된 근본 원인은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 데 있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돼야 정치도 되고, 교육도 되고, 경제도 된다”고 강조했다.
동양철학의 대가인 이기동 교수가 건강넷·고양신문·사과나무의료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월요시민강좌> 8월 강의 연단에 섰다. 혼탁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동양철학의 가치를 바탕으로 지혜를 전해온 이 교수가 ‘한국의 미래와 바람직한 삶’이라는 주제로 펼친 강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이기주의 초래한 서양 근대철학
한국은 현재 기로에 서 있다. 멸망으로 가는 절망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선도하는 영광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갈림길이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은 외부 적들의 침공을 받아서 망한 게 아니다. 서로 편을 갈라서 싸우다가 결국 망했다. 요즘은 어떤가. 어느 한 지역엔 여당 의원만 있고, 다른 한 지역엔 야당만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경상도 사람은 반드시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라는 법을 만들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길도 있다. 세계사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영광의 길이다. 그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자. ‘못 생긴 건 용서해도 돈 없는 건 용서 못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늘날 사람들은 ‘돈, 돈’하며 돈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냐하면, 우리가 사기당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서양 근대철학이 제공한 이론과 방법에 근거해 살다 보니 불행의 늪에 빠졌다.
교회를 장악하고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을 벌인 중세를 벗어난 후 새롭게 강자가 된 우파 세력은 약육강식이 자연법칙이라고 떠받들며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온갖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좌파들은 약자를 돕고 노동자 세상을 주장하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러한 우파나 좌파 모두에겐 공통점이 있다. 믿을 건 돈밖에 없다며 극단적 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욕심만을 무한히 추구하다가 그 결과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됐다.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과 긴장, 피로와 실패에 빠진 삶을 살다가 늙어가고 결국 죽음을 맞고 있다.
인간성이 사라지고 환경이 파괴되면서 기후위기로 지구 역시 멸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인가. 하지만 역사는 늘 흐르기 때문에 희망이 있고, 그 중심엔 한국이 있다.
새 시대정신 담을 K-철학 창출
역사의 흐름을 사계절의 흐름에 비추어보면 몸 중심 시대와 마음 중심 시대가 늘 순환하며 흘러왔음을 알 수 있다. 돈이나 물질과 같은 욕심을 중시하는 ‘몸 중심 시대’가 저물고 이제 인간성과 양심을 바탕으로 한 본심을 중시하는 ‘마음 중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 시대를 이끌어갈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다.
세상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경제력과 문화예술 그리고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철학이 그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K-팝, K-무비, K-드라마, K-푸드에 이어 K-클래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화와 생활 그리고 예술은 세계인들에게 뉴노멀이 돼가고 있다.
그에 더해 우리는 오늘날 시대 정신을 이끌어갈 K-철학을 창출할 수 있을까. 왜곡된 서양 근대철학 이전의 순수한 철학과 정신을 찾아내면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한국의 고유철학은 모든 진리를 포함하는 바탕이자 뿌리다.
신라 시대 유학자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는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다. 풍류라고 하는 신비하고 오묘한 진리가 있는데, 모든 가르침을 세우는 근원이다. 이는 유학, 불교, 도교 등 세 가르침을 포함한다”고 했다.
한국 고유의 심오하고 오묘한 사상은 모든 사상의 터전이자 뿌리이고 자연의 섭리다. 『환단고기』, 『천부경』, 『삼일신고』, 『단군 철학』, 『을보륵 철학』 등을 통해 철학의 바탕을 확립한 뒤에 오늘날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K-철학으로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진리를 바탕으로 한 정치, 경제, 교육 등에 필요한 이론과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본심 회복해 몸을 다스려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아일랜드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오역이라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갈팡질팡 살아가다가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인간의 마음을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닌가 싶다. 삶의 방법과 내용은 저마다 달라도 죽음으로 끝나는 종점에 도달한다는 면에서 보면 별 차이는 없다. 죽음 뒤 세계에 대한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 노화 방지를 연구하는 과학자, 장기 이식을 통해 영생을 연구하는 과학자 등이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에 다다랐을 때 후회하지 않을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 방법은 바로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을 반대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욕심에 갇혀서 몸 챙기기에 급급한 비극적인 삶을 거부하고 욕심이 없는 본심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전을 읽고 명상을 하며 마음의 내용을 잘 파악해 욕심을 버리고 본심을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은 늘 몸이 행동하고, 몸이 행동할 때마다 마음이 몸에 행동하도록 지시한다. 그 순간에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이 욕심에서 나온 마음인지, 본심에서 나온 마음인지 확인해야 한다. 만일 욕심에서 나온 마음이면 억제하고, 본심에서 나온 마음이면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차츰 욕심이 줄어들고 본심을 유지하게 된다. 본심이 욕심보다 더 커지는 그 순간이 진정으로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