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엽 2동에는 조선조 전기까지 황조향이란 행정구역이 있는 것으로 신증 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는 고양군 중면 주엽리로 표기되어 있는데 조선조 영조년간의 고양군지 에는 주엽리에 모두 105호의 집이 있는 것으로 쓰여져 있다. 

당시의 통계기록은 현재의 주엽1.2동을 합친 것이다.
평범한 농촌 마을이였던 이 주엽마을은 1989년 일산신도시 개발 발표이후 본격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져 농촌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당시 마을의 이름들은 공원, 학교, 아파트 마을이름, 도로명 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시가지가 개발되기 이전의 주엽2동 지역은 문촌 (일명 민마루), 오마리, 새말 (신촌)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중에서 문촌마을은 골동산이란 낮고 예쁜산 기슭에 대부분 주택들이 남향하여 자리한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마을 앞으로는 넓은 벌판이 있고 마을 동쪽으로는 가뭄을 대비하여 대수로가 지나며 뒤로는 북풍을 막아주는 골동산이 있었다, 마을 뒤 골동산 정상에는 수령 수 백년의 주엽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곤 하였다.

이 산 넘어에 오마리 마을이 있었다. 이 오마리는 다섯 마리의 말이 살고 있다는 전설과 함께 오래 전부터 오씨 성을 가진 분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언덕 위에 수백 년 자란 참나무 종류의 대감나무가 있었는데 이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한옥이 많고 여름에 시원한 마을로 유명했으며 논의 일부에서는 토탄이 발견된 마을이기도 하다.

새말은 오마리의 북쪽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데 현재는 일부가 대화동 지역에 포함된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일산신시가지 개발에 앞서 이루어진 유물 조사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그랜드 백화점 뒷편 마을인 문촌 마을과 오마리 마을에는 아기장수와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나이가 많은 부부가 오랜 기간 자식을 얻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마을을 지켜주는 골동산에 올라 자식을 부탁했고 얼마 후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울음소리도 크고 기운이 좋아 마을사람들은 나라에 큰 장수가 나왔다고 이야기 할 정도 였다. 

5살 되던 해에는 산 위에 올라 작은 바위를 가지고 공기놀이도 하고 오줌이 마려워 바위에 누었더니 구멍이 나 이 바위를 오줌바위로 부르기도 하였다.  마을에 내려와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 아기 장수가 해결하니 마을 사람들은 이 아기가 성장하여 나라를 이끌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던 왜군의 첩자가 이 아기의 이야기를 듣고  난후에 자신들의 침략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여 잠을 자고 있는 이 아이의 가슴에 커다란 돌을 올려놓아  숨지게  하였다. 

밭에서 돌아온 부부는 너무도 놀라 정신을 잃었고 마을 사람들은  아기를  골동산 기슭에 묻어 주었다. 이 때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흰 다섯말이 나타나 울면서 아기장수를 태웠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말들이 아기장수를 태우고 하늘을 날면서 왜군을 막으려 했던 백말이라고 말하였고 이 말들도 아무리 기다려도 아기장수가 나오지 않자 골동산  바위에 머리를 쳐 박고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이 말들이 처음 나온 마을을 오마리라 부른다는 것이다. 문촌마을의 유래는 예전 이곳 골동산 아래에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글방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 지역은 한강과 가깝고 일산, 마두, 후곡 마을 등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 였으며 한강에 제방을 막은 후에는 고양시 최대의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일산초교 등 현재의 원 일산 지역에 있는 학교의 동문인 동시에 친척, 사돈 지간으로 맺어진 공동체 사회였다.

장날에 서로 만나 혼인을 이야기하고 온 마을의 소식이 전해지던 주엽동의 20년전의 정다운 마을 모습이 주엽리 마을주민들의 고향사랑이 너무도 그리우며 사라진 골동산 등을 생각하면 너무도 그 시절이 그립고 아쉽다.             

<고양시청 전문직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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