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준설 논란' 파주 갈곡천에 가보니

멸종위기 조류 10종 서식 '생태 보고' 
시, 보호대책 없이 최근 두 차례 준설 

7월 큰비로 자갈밭 모래톱 자연 복원
떠났던 흰목물떼새 새끼데리고 돌아와

하천 폭 70미터, 탐조하기 좋은 곳 
시민 "준설 대신 생태보호지역 지정을"
파주시 “10월 15일 이후 공사 재개”

지난 4일 경기 파주시 갈곡천에서 관찰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 지난해 겨울 하천준설공사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여름철 집중호우로 자갈밭과 모래톱이 자연복원되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4일 경기 파주시 갈곡천에서 관찰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 지난해 겨울 하천준설공사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여름철 집중호우로 자갈밭과 모래톱이 자연복원되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신문] 경기도 파주의 지방하천인 갈곡천에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가 집단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갈곡천은 파주시 법원읍 갈곡리에서 시작해 파주읍 파주리, 봉암리를 거쳐 문산천에 합류하는 길이 15.6㎞의 하천으로, 모래와 자갈이 깔린 얕은 물가에 갈대 습지가 조성돼 야생조류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최근 1년새 갈곡천에서는 흰목물떼새를 비롯해 멸종위기종 조류 10여 종이 관찰됐다. 하지만 파주시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보호대책 없이 지난해 겨울 이후 두 차례 갈곡천을 준설했고, 조만간 다시 공사에 나설 예정이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경기 파주시 갈곡천에서 관찰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
지난 4일 경기 파주시 갈곡천에서 관찰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

돌아온 흰목물떼새 10마리 먹이활동

지난 4일 오후 준설 논란의 현장인 파주읍 갈곡천에 가보니, 겨울철 공사로 파헤쳐진 하천이 7월 중순에 내린 700㎜ 집중호우로 자연 복원돼 자갈밭과 모래톱이 적당히 자리잡고 있었다. 얕은 물이 흐르는 하천 중류에 흰목물떼새 10마리가 도요새 무리와 함께 가다 서는 동작을 반복하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몸 크기(약 20.5㎝)가 작고 자갈과 색이 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았지만 하천 폭이 70m가량으로 넓지 않아 탐조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몸 윗면에 비늘무늬가 있는 어린 새가 유독 많았는데, 대부분 올봄에 상류 쪽에서 태어난 개체들로 추정됐다. 
보 위쪽 수심이 깊은 쪽에는 원앙과 흰뺨검둥오리, 흰날개해오라기, 물총새 등 다양한 조류들이 둥지를 틀었고, 공중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한 마리가 먹이 사냥을 하려고 한참 동안 호버링(정지비행)을 하다가 지척인 봉서산 쪽에서 날아갔다. 
두 차례 준설로 몸살을 앓은 흔적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지난해까지 갈대 위에 앉아 노래하던 개개비는 공사 이후 살 곳을 잃어 자취를 감췄고, 갈대군락이 있던 자리는 외래식물인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이 기세 좋게 점령하고 있었다. 

지난 4일 파주시 갈곡천에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가 물 위를 날고 있다.
지난 4일 파주시 갈곡천에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가 물 위를 날고 있다.

현장을 안내한 파주읍 주민 정주현씨는 “지난해 6월 흰목물떼새 2~3마리를 갈곡천에서 처음 봤는데 준설공사 이후 사라졌다가 올여름 폭우로 상류 쪽에서 자갈과 모래가 쓸려 내려와 서식 환경이 회복되자 다시 돌아왔다”라고 설명했다. 
흰목물떼새는 세계적으로 생존 개체가 1만 마리 안팎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돌, 자갈, 모래가 있는 강과 하천이 주 서식지인데 잇따른 하천 준설공사로 번식지와 서식공간이 계속 줄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개개비 놀던 갈대숲 자리 가시박 무성

갈곡천에서 3년째 탐조 활동을 해온 지역 토박이로 준설 반대에 앞장선 정씨는 “지난 1년간 갈곡천 일대에서 목격한 멸종위기 조류만 흰목물떼새를 비롯해 잿빛개구리매, 새호리기, 새매, 큰말똥가리, 큰기러기, 매, 참매, 독수리, 쑥새 등 모두 10종에 달한다. 이밖에 천연기념물인 원앙, 황조롱이와 멸종위기종 포유류인 삵도 관찰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 하천 준설공사로 갈곡천 좌우에 있던 갈대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겨울 하천 준설공사로 갈곡천 좌우에 있던 갈대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이 자리를 잡았다. 
사진1, 2. 3, 4, 10 지난 4일 경기 파주시 갈곡천에서 관찰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사진5. 지난해 겨울 하천 준설공사로 갈곡천에 갈대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이 자리를 잡았다.  사진6. 하천 준설공사를 하지 않은 갈곡천 구간에 갈대잎이 무성하다. 사진7. 파주읍 주민 정주현씨가 갈곡천 현장에서 준설 전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8, 9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갈곡천 상공을 날고 있다.
하천 준설공사를 하지 않은 갈곡천 구간에 갈대잎이 무성하다. 
파주읍 주민 정주현씨가 지난 4일 갈곡천 현장에서 준설공사 전후 생태계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파주읍 주민 정주현씨가 지난 4일 갈곡천 현장에서 준설공사 전후 생태계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자료에서도 갈곡천의 생물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6년 국토교통부가 펴낸 ‘문산천 권역 하천기본계획 보고서’를 보면 갈곡천에 조류 69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붉은배새매, 새호리기, 큰기러기, 큰말똥가리 등 멸종위기종과 황조롱이, 소쩍새 등 천연기념물이 포함되어 있다. 양서류로는 맹꽁이도 파악됐다. 
올해 초 파주시 환경지도과가 공개한 ‘파주시 도시생태현황지도’에도 갈곡천 일대에 말똥가리, 황조롱이, 원앙, 큰기러기 등 법정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야생생물이 살고 있는 갈곡천에서 파주시는 왜 아무런 보호 대책 없이 준설공사를 벌이는 걸까. 

소규모환경영향평가 없이 공사 강행

갈곡천에 포크레인이 처음 들어간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공사 고시나 주민설명회, 소규모환경영향평가도 없이 부곡교~부곡2보 사이 1㎞ 이상 구간의 준설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공사 이유는 ‘재해예방’이었다. 이어 올해 5월말 추가로 300m 구간에 대한 준설에 착수했으나 주민의 민원 제기로 현재 공사를 멈춘 상태다. 

사진1, 2. 3, 4, 10 지난 4일 경기 파주시 갈곡천에서 관찰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사진5. 지난해 겨울 하천 준설공사로 갈곡천에 갈대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이 자리를 잡았다.  사진6. 하천 준설공사를 하지 않은 갈곡천 구간에 갈대잎이 무성하다. 사진7. 파주읍 주민 정주현씨가 갈곡천 현장에서 준설 전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8, 9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갈곡천 상공을 날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지난 4일 오후 갈곡천 상공을 날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지난 4일 갈곡천 상공에서 정지비행을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지난 4일 갈곡천 상공에서 정지비행을 하고 있다.

두 차례 공사를 하면서 파주시는 멸종위기종의 보호 대책은커녕 야생동물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아 환경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파주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어 “하천정비사업 도중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서식이 확인됐다면 보호대책을 세우고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어 “갈곡천은 지난 30여 년 동안 한 번도 범람한 적이 없었다. 제방의 높이와 폭이 높고 넓기도 하고, 안에 자생하는 갈대와 억새들이 수질정화, 유속 제어, 담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파주시가) 관행대로 ‘홍수 예방=하천 정비=포크레인 공사=수풀 제거’와 같은 도식으로 근거 없이 공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주읍 주민 정씨는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하천공사 면적이 1만㎡ 이상이면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파주시가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 준설한 면적이 수만㎡일 것으로 추정했다. 정씨는 “갈곡천은 파주시민의 휴식 공간이자 탐조, 생태학습공간으로 적절한 생태계를 갖춘 작은 공릉천 같은 곳이다”며 “포크레인 준설 대신 갈곡천을 자연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시민에게 질 높은 생태계서비스를 제공하고 탐조의 명소로 가꿔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 두 마리가 지난 4일 파주 갈곡천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 두 마리가 지난 4일 파주 갈곡천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4일 파주 갈곡천에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가 물위를 날고 있다.
지난 4일 파주 갈곡천에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가 물위를 날고 있다.

주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주시는 갈곡천 공사를 곧 재개할 방침이다. 시는 하천법 8조에 따라 하천관리청인 경기도가 갈곡천을 관리하지만 경기도 사무위임 조례에 따라 하천의 유지·보수를 파주시에 위임해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파주시 감사팀도 최근 시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주무 부서인 파주읍 마을지원팀장은 “민원 때문에 공사를 중단한 게 아니라 홍수기라 안 하고 있을 뿐이다. 재해대책기간이 끝나는 10월 15일 이후 공사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멸종위기종 보호 대책에 대해서는 “멸종위기종이 있으면 정부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을 텐데 그 범주에 들지 않아 재해예방 사업을 하는 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사람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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