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 중심으로

 

“왕조 시대엔 서울 사람들의 묘 자리가 되고, 독재 시대엔 잠 자리로 변하더니 이제는 노는 자리가 되고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고양 땅을 지키며 살아 온 한 토박이가 뱉은 독한 푸념이다. 고양시에 왕실의 능이 많고, ‘베드 타운’으로 신도시가 생겼고, 근래에 들어 유흥가나 러브호텔이 많아진 것을 빗대서 한 말이다. 고양시가 인구 100만을 바라보는 수도권 북부의 신흥도시로 탈바꿈한지 오래다. 그것은 신도시 개발에 다른 대량의 인구가 서울 등지에서 유입된 결과일 것이다.

이제 고양시민의 소비수준이나  의식수준은 전국의 어느 큰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주민의 생활환경이나 문화 인플라도 그렇다. 그러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에 발린 듯이 하는 ‘꽃과 숲으로 덮인 전원도시’나‘동양제일의 호수공원이 있는 미관도시’가 고양시의 표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국 제일의 화훼단지가 있고 오색의 조화를 부리는 분수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로 고양시의  상징물로 삼는 것은 낯 간지러운 일이다.   

왕도였던 서울과 개성에 가까이 자리잡은 고양시는 역사적으로 문화적 유산이 많은 고장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마주치는 교하(交河)라는 지명이 말해 주듯이 자연의 조화가 많았던 곳이다. 북한산을 품은 웅대한 지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좋은 땅’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유서깊은 고장의 전통미가 흔들리는가 하면, 대량의 외부 인구가 유입되면서 토박이와 신참들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고양에서 신도시 충격이 일어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 충격파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투기열풍이 일면서 도시의 난개발이 계속되고 있고 고소득의 한량족이 늘면서  퇴폐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환경의 훼손과 인심의 황폐화도 간과 못할 수준이다. 신도시와 함께 대량으로 유입된 화이트 칼라 족들은 여전히 ‘도시의 사냥꾼’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래의 땅을 지켜온 토박이 고양 사람들은 소수민족으로 남아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으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을 리 없다.

고양신문은 이런 괴리 현상을 지켜보며 그 간극을 풀어갈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서 고양시민을 상징하는 독자들에 어떤 보도 자세를 취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지면에 행정기사를 가급적 줄이는 것은 지역신문의 고질인 관변(官邊)의 나팔수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주민이 알아야 할 정보라면 취재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있다.  

고양신문은 당분간 주의 주장에서 멀리 떨어져 정보 중심으로 지면을 꾸미려 한다. 섣부른 주장으로 소모적인 공론에 빠지기 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독자의 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것이 언론의 정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 본연의 감시와 비판 기능은 충실하게 이어갈 생각이다.  이를테면 관료들의 의식이 시민의 의식 수준을 못 따라 가는 지금과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고양신문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독자의 행복’이다. 그것은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 일수도 있고 가계를 돕는 돈벌이 정보일 수도 있다. 문화적인 향기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여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어느 길목의 교통체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고치도록 이끌어 시민을 안전하게 할 것이고, 교육 여건이나 학교 환경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 방향을 제시하여 학부모를 안심시킬 것이다.

고양신문은 세계적인 꽃박람회와 국제적인 컨베션센터가 상징하는 고양시의 위상보다는 고봉산의 생태계 보전과 북한산의 정화작업에 더 관심이 있다. 꽃 리본을 달고 근엄하게 내빈석을 지키거나 준공테이프를 끊는 높은 사람보다 새벽 별을 보며 거리를 청소하거나 장애인과 노약자를 보살피는 낮은 사람을 더 많이 조명하려 한다.

고양신문이 밀고 가려는 궁극적인 고양시의 모습은 살 맛나는 고장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독설가의 말을 달리 표현한다면, 무덤에서도 안락하고 잠 잘 때도 편안하고 놀 때도 유쾌한 나토(樂土)가 바로 고양신문이 추구하는 고양시의 미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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