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방학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고양신문]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 나무보다 숲을 먼저 보자는 게 흔히 말하는 거시적 관점에 해당합니다. 이 거시적 관점 중에 갈등론적 관점이란 게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입장입니다.

사회 안의 구성 요소들이 항상 서로의 이해관계로 대립되고 불일치하는 관계로 존재하여 사회는 변동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갈등론적 관점은 사회를 구성원의 상호 의존 관계에 의한 안정적인 상태로 보지 않고 갈등, 모순, 대립이 산재해 있는 어떤 것이며, 이들의 표출로 사회가 변동하고 이것이 역사라고 보는 입장이지요. 즉 갈등론적 관점은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라고 봅니다. 이 관점에 대한 비판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갈등은 어느 곳이나 존재하고 이를 잘 해결하면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입장 자체는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매일 다양한 갈등을 마주합니다. 층간 소음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묻지마 댓글 공격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합니다.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악마가 된 사람이 너무 많아 굳이 공포 영화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극단적 갈등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학문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과거 학교에서 부당한 일이 일어나면 구성원들은 분노하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양한 갈등 상황이 벌어지고 해결이 더딥니다. 과정이 필요하니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불편한 마음은 ‘이제 그만’을 속삭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고 그 부당한 일은 잠시 수면 아래 있다가 다시 머리를 내밉니다. 일상에서의 극단적 갈등은 오래가기 힘들다는 것을 오랜 학교생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어차피 해결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쌓여 마음의 건강이라도 챙기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직접 관련 없는 갈등 상황을 보고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일상에서 그렇지 못한 행동의 반작용은 아닐까요? 그러다 보면 기분이 태도가 될 테니까요.

갈등과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보다 순응하고 복종했던 친일 매국노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비리를 폭로하고 긴 시간의 갈등을 이겨낸 내부 고발자가 어떻게 보복을 당하는지 생생하게 목격하지 않아도 갈등의 끝은 늘 그들의 편이었습니다.

학교폭력이 일어납니다. 이제 회복의 방법은 없습니다. 법과 제도가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고 격리하며 행정적으로 결론을 낼 뿐입니다. 시간과 돈이 많으면 이 갈등을 길게 끌어갈 수 있고 결국 근본적인 해결 없이 피해자는 ‘이제 그만’을 외치는 상황에서 갈등론적 관점은 그 힘을 계속 잃어가고 있습니다.

갈등이 교육이 되려면 적어도 역사가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정의가 지연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법과 제도의 행정적 결정 이전에 피해자가 온전히 회복되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목격할 때 가능합니다. 갈등이 불편은 해도 두렵지는 않다는 생각을 마주한 아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독도는 오랜 갈등 속에서도 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독도는 오랜 갈등 속에서도 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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