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한때 ‘세일즈맨의 우상’으로 불렸던 대우그룹 고 김우중 회장이 남겼던 말이다.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자본금 500만원으로 창업한 대우는 한때 삼성, 현대와 함께 재계를 좌지우지할 정도가 되어 김우중 회장은 가히 샐러리맨의 신화가 되었다. 분식회계로 감추려던 그룹 부실이 드러나고, 체포를 피해 해외를 떠돌던 그의 말년은 비록 고단하였으나, 아직도 그를 생각하면 가방 하나 들고 전 세계를 누비던 그의 역동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고인이 된 그를 새삼 떠올리게 된 건 이동환 시장의 잦은 해외출장 소식을 접하면서이다. 세상이 좁다는 듯 돌아다니는 그는 할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지난 8월 26~31일 일본, 베트남 출장까지 하면 그는 2022년 7월 시장 취임 이후 모두 17차례, 119일간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2년간 30개국, 47개 도시를 다니며 9억원 이상의 예산을 출장경비로 썼다.

임기 2년 남짓 동안 4개월을 해외에서 보낸 셈인데 비슷한 규모의 용인특례시 시장이 5번, 수원특례시장이 10번, 화성 시장이 7번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에 비해 봐도 매우 잦은 해외출장임을 알 수 있다. 독일, 영국 등을 방문했던 2023년(11. 4~11. 16)이나 역시 프랑스, 독일, 영국을 방문했던 2024년(8. 4~8. 15) 경우를 보면 출장 기간도 열흘이 넘는 긴 기간이다. 

고양시는 과연 이렇게 시장이 자주 집을 비워도 모든 게 다 잘 굴러갈 정도로 태평성대인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부지런히 세계를 돌아다니는 만큼 김우중 회장처럼 들어올 때마다 뭔가 가방이라도 채워 들어오는 것일까?

문제는 이런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던 시청사 이전 문제를 갑자기 뒤집어 평지풍파를 일으켜 놓고, 거기다 불필요한 일산-덕양간 지역 갈등까지 부추겨 놓고도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아무런 해법도 내놓지 않은 채 홀로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CJ라이브시티가 무산되고, 많은 상인들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원마운트’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지역경제가 휘청대고 있는데도 시장은 해외만 떠돌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해외투자유치’ 명목으로 나간 해외 출장에서 고작 현지 공관을 방문하여 공관장과 사진 하나 찍고는 그것을 주요한 투자유치 노력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고양시가 8월 9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동환 시장은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최재철 주 프랑스 대사와 간담회를 갖고 고양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첨단산업 육성 등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필자도 독일 대사 재임 중 국내로부터 나오는 숱한 정치인들과 단체장들을 만났지만 그것은 대부분 의례적인 예방 수준이었다. 양국 간 주요 현안이 걸린 경우 중앙정부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을 도와 업무 협의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수많은 지방자치단체 업무까지 대사관에서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동환 고양시장은 해외투자유치 명목으로 나간 해외 출장에서 고작 현지 공관장을 만나는 의례적인 행보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주 애틀란타 총영사관 방문 모습.
이동환 고양시장은 해외투자유치 명목으로 나간 해외 출장에서 고작 현지 공관장을 만나는 의례적인 행보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주 애틀란타 총영사관 방문 모습.

투자유치를 하러 갔다면 현지 기업을 접촉하는 것이 우선인데, 이렇게 하려면 오랜 사전 교섭기간과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동환 시장의 해외 출장에 그런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즉흥적’으로 의심받는 출장계획들, 그리하여 시의 내부 출장 규정을 위반한 사례도 여럿 보인다. 고양시 공무 국외출장 규정에 따르면 국외출장은 출국 7일 전까지 허가신청을 제출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도 9건의 해외출장이 이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환 시장은 정말 왜 자꾸 밖으로만 나도는 것일까? 혹시 고양시 내에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낼 자신도, 의지도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외국에 나가서 좋은 것 보고, 대접받고 하는데 재미 들려 하는 것은 설마 아닐거라 믿는다. 그러나 고양시청 내부 통신망 익명게시판에까지 시장의 잦은 해외출장을 비꼬는 게시물이 올라와 폭발적인 조회수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의심을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범구 주 독일 대사
정범구 주 독일 대사

바야흐로 추수의 계절이다. 이동환 시장은 과연 무엇을 추수할 것인가? 가뜩이나 고물가에, 이래저래 사는 것이 팍팍한 시절에, 추수할 것 없는 빈손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너무 짜증나는 일이다. 시장의 빈손은 결국 시민들의 빈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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