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하는 이웃_ 윤인혁 작가
벽제초교. 제17회 졸업생
중학교 체육교사로 퇴직
틈틈이 볼펜 그림 그리며
개인전 열고 모교서 전시
[고양신문] 오래된 친구들의 반가운 웅성거림으로 1층 교실에 활기가 넘쳤다. 종이컵이 놓여 있는 원형 탁자에 앉아 옛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오랜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1965년 2월 졸업한 벽제초등학교 17회 졸업생들이다. 주변에는 이젤에 기댄 네모난 액자가 흑백 그림을 담고 전시실 네 면을 휘감고 있었다. 볼펜화가이자 벽제초 동문인 윤인혁 작가의 ‘인혁이의 볼펜 그림전시회’다.
동문체육대회가 열린 지난 6일 윤인혁 작가는 친구들, 후배 동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볼펜 그림에 감탄한 갤러리(동문)들의 사진 요청으로 그의 얼굴에는 활기가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는 여전히 따스했고, 친구들의 언어도 어린시절 그대로였다. “그림을 보면서 감탄했어요. 너무 섬세하고 볼펜으로만 그렸다는 게 신기해요”라며 동문 후배들이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윤 작가가 흔쾌히 응했다.
이튿날인 7일 만난 윤 작가는 “후배들에게 정서함양에 도움이 될까 해 작년에 교장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이번 모교 전시를 진행하게 됐어요. 60년 전 교정에서 전시를 하는 영광도 가지고 싶었고, 그림이 판매되면 학교에 도움이 되자는 마음으로 준비했고요. 오늘이 6일째 되는 날인데 손주뻘 되는 어린 후배들이 들어오면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이쁘고 기특하고 천진난만함은 60년 전의 친구들과 다를 게 없네요”라며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미소로 말했다.
1층 전시실을 찾은 초등생 후배들은 당당하게 들어와 가끔 묻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려요?” “어떻게 이렇게 그렸지?” 혼잣말을 하고 그림에 가까이 가 관찰을 한다. 어떤 학생은 뽑은 지 시간이 지난 풀을 가지고 와 “이게 무슨 풀이에요?”라고 묻기도 한다. 이것저것 질문이 많기도 하다. 작가에게 고생하신다며 사탕 두 개를 내밀며 응원도 한다.
윤인혁 작가는 1952년 7월 당시 고양군 벽제면 사리현리에서 7남매에 넷째로 태어났다. 지금 벽제초에서 직선거리로 3.8리(1.5㎞)되는 거리다. 학창시절에 유독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대회와 서예대회에 나갈 만큼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는 그냥 그림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평범한 초교 시절을 보낸 그는 중·고등학교는 모두 서울 학교로 진학했다. 서울 인창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때는 역도선수로 활동했다. 다부진 체격에 골격이 남달라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다양한 대회에 참가하며 대학도 체육교육학과(중앙대 사범대)로 진로를 정했다. 10여 년의 서울 학교 생활에서도 그림은 손에서 떠나지 않았고 생각나는 대로 꾸준히 그렸다. 충청도 태안반도 군 생활에서도 그림 그리기가 이어졌고, 목탄으로 바위스케치를 하며, 손에서 그림도구를 놓지 않았다.
“왠지 손에서 그림을 놓지 않게 되더라고요. 풍경을 보면 그리고 싶고, 그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작품이 나왔어요. 그때마다 저의 그림이 좋다는 말은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렇게 그림을 그릴 줄은 몰랐습니다”라며 취미로서의 그림을 말했다.
군을 제대하고 학교를 졸업한 그는 교사로 임용돼 영등포여중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의 여러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도 충실했고, 시간이 되는 한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치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90년대 중반, 그의 예술적 열정은 국민대 대학원 디자인 공예과 진학으로 이어져 학업에 열중했다. 교직생활도 즐거웠고, 그림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림에 몰두하겠다는 생각으로 2년 앞당겨 퇴직을 선택했다.
2012년 퇴직 후 그는 고향인 사리현동에서 320리 떨어진 강원도 횡성 둔내면에 터를 잡았다. 그림에 몰두하고 싶어 전통을 좋아하는 그답게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자리를 잡았고, 현재도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동네 주민으로 마을 체육대회가 있으면 탁구선수로 면대표로 출전도 한다. 크고 작은 마을행사에도 참여해 둔내면 주민으로 정착했다. 부인과 딸 아들은 모두 서울에서 살고 혼자만 그곳에 머물며 전시가 있을때는 왔다갔다 한다.
“작업하기에 최적의 조건이고 조용해서 좋습니다. 산세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모두 보니 그것 또한 그림에 영감이자 소재가 되기도 하고요. 가끔 친구들도 가족들도 찾아와 쉬기도 합니다. 저는 모든 일상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고 봅니다. 저는 동양화·산수화도 좋아하고 한지공예도 좋아합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하는데 앞으로 어떤 것에 몰입할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볼펜화가 윤인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정을 떠난 후 3년여 동안 그림을 그리며 2016년 7월 첫 개인전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었다. 처음에 대중과의 만남이라 많이 떨렸다. 전시를 하려고 했던 그림과 그동안 그렸던 작품을 전시했다. 미술가로서 첫 전시는 벅참이 컸다. 대중과의 만남으로 용기를 얻게 됐고, 17개월 만인 2017년 11월 두 번째 개인전을 같은 미술관에서 열었다. 처음보다는 기분이 좀 달랐지만 여전히 떨렸다. 이후 그룹전 등으로 자주 참가하고 전시하며 작품세계와 이름을 알렸고, 미술가들과 교류로 다양한 정보와 미술세계를 알아 갔다.
“제 그림은 주로 화랑의 주인과 외국인들이 많이 구매를 하더라고요. 한국의 전통이 좋아서인지 한두 점부터 시작해 전체를 다 구매하는 분도 계시고요. 그분들에게는 고맙습니다. 저의 미술이 세상과 교류하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것이 제일 행복합니다”라며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말한다.
그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400여 점의 작품을 그리며 0.7㎜ 볼펜을 셀 수 없이 사용했다. 딱 두 개의 브랜드만 사용했는데 모나미볼펜과 문화볼펜이다. 한 작품에 약 4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그리는데 오직 그림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 순간에는 흰 종이와 볼펜, 그만 있을 뿐이다.
그의 그림에는 산과 강, 사찰, 민속촌 등의 풍경과 가까이 다가선 그림들이 유독 많다. 직접 가지 못하는 곳은 아는 사진작가나 기자, 지인들에게 풍경을 사진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직접 찍은 사진이 그림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볼펜화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며, 후배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전하는 윤인혁 작가. 그는 볼펜그림으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의 노력과 열정이 쌓여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듯, 윤 작가는 후배들에게도 인생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길 것을 당부하며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점이 모여 선이 됩니다.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그림이 됩니다. 지금의 하루하루가 모여 여러분의 인생이 됩니다. 후배 여러분의 매일매일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