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예전에 비교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초저출산, 초저출생을 이야기한다. 그런 가운데 혼인 건수, 출생아 수 등이 증가하고 결혼할 의향이 있는 청년 수도 늘어났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커다란 흐름의 변화일지 일시적 현상일지는 지금 속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과거에 비해 ‘선택과 집중’에 따른 임신ㆍ출산ㆍ양육 지원정책의 효과가 어느 정도 나온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다양한 생각을 하고 다양한 삶을 시도하며 산다. 결혼이나 출산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 와중에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국가정책의 저출산 대응정책의 변화는 ‘고민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 결혼이나 출산의 반짝(?) 반등 현상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조금만) 지원해주면 (결혼ㆍ출산을) 선택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수백 조원 쓰고도 소용없다.” 선동적이고 무지한 발언들이 힘을 얻을 만큼 개념도 애매모호한 채 지난 20년 가까이 방만하게 지출했던 저출산 예산이 결혼ㆍ출산ㆍ양육이라는 선택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에 따른 지원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현상이 점점 보일 듯하다. 지금 쏟아져 나오는 단기 대책들의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연애, 결혼, 출산, 양육을 포기해야 하거나 거부하는 커다란 사회적 흐름을 되돌리기에 지금 대책들이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부모의 일ㆍ가정양립이 가능하려면 모든 근로자의 일ㆍ생활 균형을 향한 노동시장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일ㆍ생활 균형의 틀 안에서 부모로서 일ㆍ가정양립도 가능할 수 있다. 아이 키우는 비용 부담을 줄이려면 이른바 SKY 대학교를 정점으로 구축되어 있는 대한민국 교육체계의 근간을 뿌리째 뽑고 바꿔야 한다. 최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학교 다니면서 부모가 지출해야 할 비용 부담은 엄청나게 감소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비용부담을 이제 국가가 거의 다 해준다. 그런데 왜 비용 부담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가? 기본비용 부담은 사라져가지만, 우리의 교육체계와 경쟁문화가 요구하는 압박비용 지출 부담은 여전하기도 하고 오히려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 등록금을 내지 않지만, 사교육비 지출은 늘어간다. 노동시장 개혁과 교육개혁 없이 부모의 일ㆍ가정양립과 비용부담 감소는 어림도 없다. 

여성의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은 또 하나의 커다란 산이다.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부부 간 평등돌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 가능성이 줄어들고 민주적 가족관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부장적 사회문화에 뿌리를 둔 성별역할분리 규범이나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등을 하고 있는 성별임금격차 수준이 사라지려면 가족관계의 민주화에서 시작하는 성평등 사회로의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피로사회에서 일ㆍ생활균형 사회로, 경쟁과 불안에 가득한 사회가 연대와 복지사회로, 차별사회가 성평등하며 다양한 사회로, 박탈사회가 공정사회로 바뀌는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의 시작 없이 초저출산ㆍ초저출생 현상의 도도한 흐름을 바꿀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적 변화가 갖는 의미는 크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기 대책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개조하는 프로젝트는 정치적 차원의 선택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편 가르기 틀로써 대중을 호도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의 붕괴를 전제로 하는 선택이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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