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서명 4천명 돌파
이용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 반발 거세져
시의회 민주당 '폐관 반대 결의안' 통과
[고양신문] “저희 같은 시니어 이용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도서관이예요.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다가 다리가 아프면 와서 쉬면서 책도 한 시간 보고, 매주 정기적으로 동아리 활동도 하고... 정말 행복한 공간이거든요. 갑자기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다 나려고 했어요. 도대체 어느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결정인지 한번 만나서 따져보고 싶어요.”
17일 호수공원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이용민(69세) 어르신은 갑작스런 시의 폐관 통보를 접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곳 작은도서관 초기멤버 중 한 명인 이 어르신은 10여년 전 이곳을 알게 된 뒤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씨는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인문학 강의도 듣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는 게 너무 좋았다”며 “주변에 규모도 크고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시립도서관도 있지만 이곳 작은도서관만이 갖고 있는 관계성과 따뜻함을 채워주진 못한다. 오히려 이런 시설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없애겠다고 하니 너무 화가 난다”고 이야기했다.
제2의 인생 보낸 곳인데... 폐관 통보에 '막막'
앞서 지난 11일 고양신문 취재 결과, 고양시는 공립으로 운영 중이던 호수공원, 모당, 삼송, 고양 작은도서관 4곳에 대해 내년부터 운영지원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민간단체인 책과도서관이 위탁운영 중인 호수공원작은도서관은 올해 위탁계약 종료와 함께 내년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경기도 작은도서관 운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을 정도로 이용률과 만족도가 높은 곳이지만 시는 “인근 시립도서관과 역할이 겹친다”는 이유로 폐관을 강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에 문을 연 호수공원작은도서관은 공원 내 위치한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타 작은도서관과 달리 시니어 회원들의 참여가 활발하다는 점도 이 도서관의 특징이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동아리만 9개에 달하는데, 길게는 10년 넘게 이어져 올 정도로 끈끈함을 자랑하고 있다.
신인숙 어르신(69세)은 친구 손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다가 작은도서관의 매력에 반해 7년 넘게 시짓기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다. 신 씨에게 이곳 도서관은 ‘제2의 인생’을 살게해 준 소중한 공간이다.
“처음에 인문학 강의가 너무 좋아서 계속 왔는데 같이 있던 분들이 ‘시를 같이 써보자’고 해서 얼떨결에 시작했죠. 난생 처음 시를 써보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살면서 처음 경험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제 제 하루일과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됐는데 갑자기 없어진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잡겠어요.”
지난주 폐관 소식을 접한 호수공원작은도서관 이용자들은 현재 시에 운영 중단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용민 어르신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용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주변에 공립 작은도서관 폐관소식을 알리면서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며 “엉뚱한 곳에 시 예산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얼마 들지도 않는 작은도서관 운영비로 쓰는 게 훨씬 더 시민들을 위한 공공서비스 취지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립작은도서관이 특혜? 시 입장 납득 안돼
고양동 또한 공립작은도서관 폐관 소식을 접한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해 17년째 운영되고 있는 고양공립작은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여하는 시설을 넘어 학부모와 아이들, 청소년들이 함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일종의 ‘동네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다.
이곳 도서관을 이용하는 박지영씨는 “고양동 특성상 학원 수도 적고 아이들을 맡길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이곳 공립 작은도서관의 역할이 매우 크다”며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맡기면서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동아리 모임도 하면서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간인데 단순히 행정적 효율성을 이유로 일방적인 폐관 통보를 한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고양 공립 작은도서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애착이 남다른 이유는 지난 10여년간 이 공간을 이용자들이 자원활동을 통해 함께 일궈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양동 복지회관 내 자리한 이곳 도서관은 시가 배치한 사서 한 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지만,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원 활동을 통해 모범적인 운영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모이는 공간이기 때문에 인근 중부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재능기부를 통한 무료 학습프로그램들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건 고양공립작은도서관은 이용률이 낮은 것도 아니고 인근 시립도서관보다도 활성화가 더 잘되어 있는 시설인데도 없앤다는 거죠. 이유를 물어봤더니 다른 공립작은도서관들도 다 폐관하는데 여기만 남겨두면 특혜가 되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는 거에요. 대체 작은도서관 하나 운영하는 게 얼마나 많은 돈이 든다고 그걸 특혜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곳 작은도서관은 고양동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공간이다. 7살 때부터 이용해 온 이가은 학생(고양초 6)은 “도서관을 다니면서 선생님들과 같이 영어를 배우고 논술수업도 들으면서 학교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며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추억을 쌓았고 책 읽는 습관도 생겼는데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한번 문닫으면 재활성화 어려워” 반대서명 본격화
이처럼 고양시 공립작은도서관 운영중단 소식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이용자뿐만 아니라 고양시 전체적으로 폐관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폐관 예정인 호수공원, 모당, 고양, 마상 작은도서관 이용자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고양시 공립 작은도서관 폐관에 반대하는 시민 모임’에는 현재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립 작은도서관을 살리기 위한 예산 수립, 공론화 촉구 등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4일부터 시작된 해당 온라인 서명에는 현재 4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시민모임 관계자는 “작은도서관이 한번 문을 닫게 되면 책도 대부분 폐기 처분되고 이용자들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기 때문에 설사 되살린다고 해도 재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일방적인 폐관결정을 막고 시민들의 충분한 소통과 공론화를 통해 작은 도서관 정책방향을 재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의회 또한 고양시의 공립 작은도서관 폐관을 막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시의회는 17일 민주당 의원들의 주도로 ‘고양시 공립작은도서관 폐관 계획 철회 촉구 결의안’(최규진 의원 대표발의)을 상정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최규진 민주당 시의회 대표는 “작년 고양시가 아파트 단지 공립작은도서관 5곳에 대한 보조금 지원 중단에 이어 올해 4곳에 대해 폐관 계획을 세운 것은 독서문화 활성화 정책에 명백히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시의회 민주당 차원에서 책임지고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