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수집』(빅투아르 드 샹기 글, 파니 드레예 그림)

[고양신문] 매일 오늘의 기쁨을 찾아 기록한다. 기분이 바닥을 쳐서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는 이상 소소한 기쁨을 찾는다. 예쁜 스티커, 맛있는 커피, 아기자기한 문구용품 등. 물성이 있는 보물을 획득하면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 둔다. 이 보물 상자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건 마스킹 테이프다. 다양한 무늬가 인쇄된 마스킹 테이프는 죽을 때까지 다 못 쓸 만큼 양이 많다.

필자의 일상을 기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보물들.
필자의 일상을 기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보물들.

매년 구입하는 A4 크기의 다이어리는 일정 체크용이라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로도 다 쓰지 못한다. 그래도 예쁘고 특이한 마스킹 테이프를 보면 참지 못한다. 문구점에서 신상을 털어오는 방식의 수집은 아니다. 전시장이나 카페에서 기쁨을 발견하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소품을 구입한다. 나의 기쁨을 예상하고 보물을 선물하는 이들도 있다. 노트, 펜, 스티커, 책갈피, 마스킹 테이프 등.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소소한 기쁨으로 그 순간이 빛나고 반짝인다.

무섭게 뜨거웠던 지난 여름, 새벽녘에 잠이 깨어 SNS 알고리즘에 휘둘리다가 블록 장난감에 꽂혔다. 레고였다. 레트로 감성의 라디오 디자인에 눈이 번쩍 뜨였다. 1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흠칫 놀랐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링크를 보여 주었다. ‘나 이거 갖고 싶어.’ 남편은 평소와 달리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선물이라며 결제해 주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이틀 뒤 배송이 되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조립을 시작했다. 습한 날씨에 류마티스 관절염 통증이 무척 심했던 시기였는데도 꼬박 4시간을 앉아서 블록을 조립했다. 눈이 시리고 목과 허리가 아팠다. 그런데 힘든 줄도 모르고 배시시 웃으면서 계속했다.  

어린 시절 그토록 갖고 싶었던 레고였다. 오빠가 블록을 좋아했다면 눈치껏 껴서 만져 보았을 텐데, 1988년 컴퓨터를 갖게 된 오빠에게 블록 장난감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내가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를 핑계 삼아 레고 시리즈를 수집했을지도 모르겠다. 꼼짝 않고 한 자세로 십여 시간을 투자해서 라디오를 완성했다. 완성품을 거실 한쪽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닫는다. 난 이 완성품보다 설명서를 읽으며 손으로 블록을 하나씩 조립해 나가는 과정을 좋아한다는 것을. 내게 보물은 레고가 아니라,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만지는 물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림책 『보물 수집』 속 아이들도 나처럼 자신만의 보물을 수집한다. 가을을 좋아하는 오마르는 가을 땅에 떨어진 것들을 수집한다. 클레오는 매해 커가는 손을 찍어 남겨 놓는다. 정원을 갖고 싶었던 피오는 매일 새로운 꽃을 꺾어 말린 후 공책에 끼워 놓는다. 수잔은 지구에서 오랜 시간 머문 돌을 모은다. 리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나무말을 수집한다. 뤼시앵은 각양각색의 조약돌을 모으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알아간다. 루이즈는 유리병에 조가비를 모으며 그 빛을 관찰한다. 크리스티앙은 좋아하는 것을 만난 아이들의 심장 소리를 수집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을 노트에 기록한다. 0.28㎜의 젤펜으로 손바닥만한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간다. 이 노트에는 그때그때의 단상과 책을 읽으면서 정리한 메모, 백과사전 검색을 통해 이해한 철학·과학 지식들이 적혀 있다. 이렇게 정리한 글들의 쓰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똑 부러지게 해 줄 답이 없다. 이 노트 속 보물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호기심뿐일 테니.

“이 볼펜, 너무 귀엽지 않아요?”, “이 스티커는 이렇게 쓰는 거예요!”, “테이프를 이렇게 붙여서 꾸밀 수 있어요.” 나는 수시로 보물을 자랑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기록이 담긴 노트도 보여 준다. 나의 소박한 기쁨이 다른 이가 보물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조잘조잘 떠들고 SNS에 기록한다. 상대의 동의는 나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쓸데없는 걸 모은다고 구박해도 나의 수집 욕구는 꺾이지 않는다. 나에게만 보물인 이 수집품들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기에. 

오늘도 나는 보물을 만지고 기록하고 자랑한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보물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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