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에서 열린 유엔 생물다양성 총회
국가 차원의 생물다양성 전략 제시-점검
생물다양성 목표, 다양한 분야 확산 기대
[고양신문] 출발 전부터 걱정이었다. 남미는 처음 방문하는 것인데, 그것도 마약왕의 고향인 콜롬비아라니…. 인터넷 곳곳에는 치안이 불안하고, 총 든 강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살 떨리는 곳이라 여행자체가 모험이라는 무용담들이 올라와 있었다.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선택한 일정은 인천공항에서 14시간 정도 날아서 뉴욕으로 간 다음 다시 다섯 시간 정도 파나마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탄 뒤 두 시간 정도 더 날아가 칼리(Cali)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비행시간만 장장 21시간, 갈아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이틀은 잡아야 콜롬비아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을 가득 품고 도착한 칼리의 첫인상은 생각과 딴 판이었다. 해발 1000미터 고지의 맑은 공기가 느껴지고, 열대의 강렬한 태양과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란 하늘, 웅장한 산세와 태평양을 끼고 있는 적도의 여느 도시들과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살사(salsa) 댄스의 본고장이라 도시 곳곳에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주말이면 새벽까지도 음악과 춤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살아있는 생명들의 축제, 생물다양성 총회
유엔 생물다양성 총회(CBD)는 2년마다 개최되는데, 당사국들이 주요 의제를 논의하는 총회(COP)와 유전자원의 접근과 이익공유를 위한 나고야의정서(NP), LMO등 생물안전성을 논의하는 카르타헤나의정서(CP), 그리고 이행점검 회의(SBI)가 함께 개최되어 15일~17일간 진행된다. 올해는 10월16일부터 11월1일까지 콜롬비아 칼리(산티아고 데 칼리)에서 개최되고 있다.올해 총회는 16번째 총회로, 특히 지구촌 전체 국가들이 새로운 생물다양성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대한 목표를 설정한 이후 첫 회의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컸다. 이른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라고 한다.
사실 지난 10년간 유엔이 정한 목표는 ‘아이치 타겟’이라고 불리며 매우 주목을 받았으나 결국 초라한 성적을 내며 달성에 실패했었다. 그래서 2022년에 새로 수립된 KMGBF는 2030년까지 23개의 단기목표와 2050년까지 비전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들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는 수치로 확인하기로 하여 핵심지표와 보충지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지구목표를 국가계획에 담아서 제출하고 점검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32개 국가만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이른바 엔비삽-NBSAP)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성적이 초라하지만, 국가 생물다양성전략을 제시한 국가는 그나마 103개국이다.
기준 꼼꼼한 보호지역 달성목표
이번 KMGBF의 가장 야심찬 목표는 당연히 3번의 보호지역 목표이다. 2030년까지 전 지구 면적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자는 것이며, 육상과 해양을 각각 30%씩 지정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생태계가 훼손된 지역의 30%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30×30 목표이다. 얼렁뚱땅 면적을 채울까봐 협약에서는 목표 달성 여부를 지표나 지수를 통해 정량적으로 평가하기로 했다. 그래서 보호지역의 국가별 면적산출 방법, 보호지역 간 연결성에 기여하는 자연공존지역(OECMs)에 대한 선별 방법, 훼손된 지역의 면적산출 방법, 연결성 보전 방법 등이 핵심 주제이다.
풀어야 할 과제, 유전자원 이익공유
생물다양성 총회 기간 내내 생물다양성 부국과 선진국들 간에 기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는 유전자원 이용에 대한 이익 공유의 범위와 방식이다. 생물다양성 풍부(mega biodiversity) 지역을 가진 국가는 식물이 대략 1만5000종 이상이고 어류를 제외한 척추동물이 1500종 이상 되는 지역을 말하는데, 총회가 열린 콜롬비아가 그중 하나이다. 이런 국가들은 특히 토착민과 지역공동체(IPLC)가 보유한 생물자원에 대한 전통지식을 가지고 있다. 생물다양성총회는 이런 전통지식이 다국적 제약기업 등에 의해 이용되고 이윤을 창출하였을 경우 이익을 나누어 줄 것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유전자원의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이며 누구에게 얼마나 나눌 것인가다. 예를 들면 유전자의 염기서열정보(DSI)는 지금까지 디지털화되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이용가능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창출했다면 그 정보의 주인인 생물자원을 보유한 국가나 공동체에게 이익을 공유해야 하는가이다. 이러한 이익공유 문제는 공해(high sea)와 같이 국가의 영토 범위를 넘어서는 지역의 생물자원과 고래나 참치, 바다거북과 같은 ‘고도회유성 동물’에 대해서도 같은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가이다. 이 또한 선진국들과 연안·도서 국가들 간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정의로운 참여’ 목소리 커져
이번 총회 기간 눈에 띄게 목소리가 커진 이들은 여성(women)과 청년(youth), 토착민과 지역공동체(IPLC), 시민과학자(citizen scientist)이다. KMGBF의 목표 중에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당연한 결과다. 다만, 실질적으로 정의롭게 이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가가 핵심이다. 이번 총회에도 정부대표단과 함께 각 분야의 민간대표단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지만, 민간의 의제 결정 참여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국가의 민간에 대한 지원과 역량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KMGBF의 목표에 대한 이행평가지표를 부문별, 계층별로 주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평화 꿈꾸며
이랬거나 저랬거나 지금 콜롬비아 칼리는 생물다양성 축제 중이다. 도심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총회장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 좁은 공간에 1만80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보통은 회의장 주변에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른바 그린존이 설치되어 각종 행사가 진행되지만, 칼리에서는 시내 한복판에 그린존이 설치되었다. 그린존에는 거의 매일 살사공연과 전시체험행사가 진행되고 있고 주변에 각종 먹거리와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다. 칼리 시민들의 손에는 각종 벌새, 앵무새, 코뿔새, 도마뱀, 나비, 야생화 모양의 상품들이 들려있다. 스페인풍의 건물이 곳곳에 눈에 띄는 거리벽화에는 원색의 생물들이 환하게 웃고 있고, 심지어 상점 안에는 생물들로 도배되어 있다. 역시 ‘생물다양성 부국의 국민들’은 다르군, 하고 생각하다가 이들에겐 생물다양성이 곧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물다양성 총회에 콜롬비아가 정한 주제가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이다. 이곳 사람들도 불안한 치안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 왔으니 생태적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고대할 것이다. 지구촌 곳곳이 화약고인 요즘, 자연과 함께 총을 내려놓고 공존하는 평화 시대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램이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KMGBF의 또 하나의 목표인 주류화(mainstreaming)의 실질적으로 달성해야 한다. 농업과 임업, 어업, 관광산업 등에 생물다양성을 고려하자는 목표를 확대하여 정치와 사회에도 이 목표가 달성되길 기대한다. 생물다양성과 함께 하는 정치적 평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