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마을숲 생태조사 (6) 정발산

솥처럼 넉넉한 품으로 온갖 생물 감싸안아
시민들 가볍게 산책 즐기는 일상의 휴식처
환경 좋고 먹이자원 많아 생물다양성 풍부
가을에 한국산개구리 울음 “기후위기 심각”

정발산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26일 정발산에서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고양신문] 일산신도시의 한복판에 자리한 정발산은 해발 87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장항습지와 일산호수공원을 잇는 일산의 중요한 생태 축이다. 원래 정발산은 고봉산과 산줄기가 이어져 있었지만, 경의선이 생기고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생태축이 단절되어 도심 속의 섬으로 남겨졌다. 
정발산은 가파른 봉우리가 없어 주민 누구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일상의 휴식처다. ‘정발(鼎鉢)’이란 산 이름도 산이 솥처럼 민둥한 모양이고, 아래쪽은 사발처럼 넓적하다는 뜻을 지녔다. 솥과 사발을 닮아 인심이 넉넉한 정발산은 자신의 그릇에 담긴 양식들을 마을 주민에게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정발산 자락에는 일산동구청, 고양아람누리, 고양교육지원청, 마두도서관, 국립경진학교, 국립암센터, 여래사, 정발중학교 등 온갖 종류의 기관과 사람들이 기대어 살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18홀 규모의 파크골프장과 아이들을 위한 유아숲 체험원이 숲속에 둥지를 틀었고, 최근에는 정발산 둘레길 생태학습원 옆에 황톳길이 조성돼 맨발 걷기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제1회 고양시 정발산 맨발걷기 축제’가 열려 200여 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정발산
시민들이 정발산 황톳길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고양시민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양시민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흙길로 된 탐방로는 사방으로 연결되어 진입로가 여럿인데, 어디를 선택하더라도 모든 길은 정상으로 통한다. 정상에 세워진 정자 ‘평심루’는 일산 시가지뿐 아니라 북한산의 주요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정발산 정상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산 거주 당시 즐겨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양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이 휴식을 취했던 벤치에 ‘김대중 벤치’ 표지판을 세웠다가 이동환 시장 취임 이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철거했다. 

탐방객 맞아주는 잣나무 ‘연리근’
지난달 11일과 26일 고양신문 마을숲 생태조사팀은 정발산 생태조사를 위해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에서 출발해 평심루에 올랐다가 둘레길로 접어들어 유아숲 체험원을 거쳐 원점 회귀했다. 개발의 거센 바람을 피해 용케 살아남은 정발산은 도심 한가운데서 많은 생명을 품고 있었다. 
산 들머리에 접어드니, 양쪽으로 줄지어 선 튼실한 잣나무들이 탐방객들을 맞이했다. 얼마 가지 않아 잣나무 두 그루의 뿌리가 서로 이어진 ‘연리근’이 나타났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하는데, 뿌리가 붙으면 ‘연리근(根)’, 줄기가 붙으면 ‘연리목(木)’, 가지가 붙으면 ‘연리지(枝)’라 부른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사랑나무’로도 불린다.

정발산
생태조사원들이 바닥에 떨어진 잣송이를 관찰하고 있다. 

다람쥐와 청설모에게 맛있는 잣을 내어주는 토종 잣나무 곁에는 잎이 가늘고 수피가 매끈한 스트로브잣나무도 눈에 띄었다. 북아메리카산 스트로브잣나무는 줄기가 곧고 가지가 보기 좋게 고르게 뻗어 관상수로 인기를 얻고 있다. 
잣나무들 사이로 햇볕을 최대한 받기 위해 붉은색 줄기를 늘어뜨린 토종 소나무도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줄기에 맹아가 발달하고 잎이 엉뚱한 곳에서 돋아나는 북아메리카산 리기다소나무도 자주 선보였다. 생김새가 비슷한 소나무류와 잣나무는 잎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토종 소나무는 잎이 2장, 리기다소나무는 3장, 잣나무는 5장이다. 박평수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은 “리기다소나무와 아까시나무는 일산신도시 조성 당시인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시행사에 의해 인공 조림된 것”이라며 “토종 소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리기다소나무에 대한 간벌 관리와 수종 변경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발산
김경숙 숲해설가가 참나무들의 잎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참나무 6형제 당당한 모습 드러내 
침엽수에 맞서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 6형제’도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의 참나무류는 도토리 모양이 제각각인데, 깍지 모양에 따라 도토리가 털모자를 썼으면 ‘상굴떡’(상수리, 굴참, 떡갈나무), 뚜껑모자를 썼으면 ‘갈신졸’(갈참, 신갈, 졸참나무)로 구분된다. 정발산에는 깍지가 새끼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도토리가 가장 작은 졸참나무가 다른 산과 견줘 유난히 많았다. 참나무들은 서로 교잡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떡신갈나무, 갈졸참나무, 물참나무 등 다른 산에서 보던 참나무 잎과는 조금 다른 모양의 잎을 달고 있는 낯선 참나무들도 눈에 띄었다. 

정발산
정발산에서 유아숲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덩굴식물로는 꼭두서니과의 계요등이 정발산을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넓게 퍼져 있었다. 계요등(鷄尿藤)은 잎이나 줄기를 잘라 문지르면 닭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구렁내덩굴’이라고도 부른다. 계요등의 고약한 냄새는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악취를 내뿜는 스컹크처럼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계요등의 꽃은 여름 끝에 볼 수 있는데 10월 말까지도 하얀 종 모양의 작고 앙증맞은 꽃이 일부 남아 있었다. 원래 충청 이남의 양지바른 곳이나 물가에서 자생하는 식물인 계요등이 북상해 늦가을까지 꽃을 달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작은 포도송이처럼 익어가고 있는 댕댕이덩굴 열매와 세 조각으로 갈라지는 노란 열매껍질에 싸인 주홍 노박덩굴도 열매도 먹음직스러운 색으로 새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가시를 온몸에 장착한 음나무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개옻나무도 더러 보였다. 세 갈래로 벌어진 가지가 고기 잡을 때 쓰는 작살을 닮은 작살나무와 좀작살나무도 동시에 선보였다. 좀작살나무는 보라색의 자수정 구슬 같은 작고 귀여운 열매가 열리는데 영어 이름이 ‘Beauty berry’다.

자수정 구슬 같은 좀작살나무 열매.
자수정 구슬 같은 좀작살나무 열매.
정발산
하트 모양의 계수나무 잎.

생태연못을 지나면 달고나 냄새 비슷한 달콤한 향기가 코로 스며든다. 향기의 주인공은 하트 모양의 예쁜 노란색 잎을 발아래 수북이 떨군 계수나무다. ‘계수나무 아래서 고백을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김경숙 숲해설가(도란도란 대표)는 “계수나무 하면 흔히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라는 윤극영 선생의 동요 <반달>을 떠올린다. 하지만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토끼가 방아찧는 달나라에 산다는 계수나무는 이 달콤한 향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목서’라는 다른 나무를 지칭하며, 우리의 계수나무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정발산에서는 지난달 생태조사에서 식물 42과 72종이 관찰되었다. 

습지 많아 수생식물, 곤충도 다양
습지와 연못이 있는 정발산에서는 연꽃과 수련, 가시연꽃, 부들, 갈대, 노랑꽃창포 등의 습지 식물과 수생식물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연꽃은 잎이 갈라진 데가 없고 수면 위로 쑥 올라오는데, 수련은 잎에 갈라진 부분이 있고 수면에 비교적 붙어 있는 점이 다르다, 수련의 ‘수’를 물 수(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밤에는 꽃잎을 오므린다는 이유로 잠잘 수(睡)를 쓴다. 연못에서는 봄에 울어야 할 한국산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 이 또한 기후변화의 여파로 해석되었다. 

정발산
정발산 숲길은 일산 주민들의 일상적인 휴식처다.

습지와 풀밭, 관목과 교목이 우거지고 유실수도 풍부한 편이어서 곤충 역시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두 차례 조사 결과, 다리무늬침노린재와 장수허리노린재 등의 노린재류와 큰멋쟁이나비, 흑명나방, 끝짤룩노랑가지나방, 배저녁나방 등 곤충 18과 23종이 관찰되었다. 거미류는 말꼬마거미, 꼬마호랑거미 등 2과 7종이 발견되었다.

도심에 출현한 큰기러기 왕새매
수종이 다양하고 먹이자원이 풍부한 정발산에는 10월 조사 결과, 멸종위기종인 큰기러기와 왕새매 등 조류 13과 23종이 관찰되었다. 작은 산림성 조류들은 특히 산 아래 공원에서 많이 관찰되었는데, 식재된 나무들의 씨앗, 눈, 열매들을 먹고 맹금류의 표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발산
어치

텃새들은 번식기에 예민해 있던 경계심을 한 겹 풀고, 먹이 구하기에 전념하고 있었다. 박새,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등 박새과 4종이 비슷한 장소에서 관찰되었고 쇠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아물쇠딱다구리, 청딱다구리 등 딱따구리과 4종도 나란히 선보였다. 딱다구리들은 사람이 많은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눈으로도 관찰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먹이활동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오목눈이가 분주히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는 가운데,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연못 부근에 주렁주렁 매달린 좀작살나무 열매를 열심히 따 먹고 있었다. 
학명이 ‘도토리를 좋아하는 시끄러운 새’인 어치는 ‘꿱꿱꿱’ 큰 소리를 내며 도토리를 저장하기 위해 땅을 뒤지고 있었다. 어치는 겨울이 되어 먹이를 구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가을에 도토리를 물어다 땅속에 묻어두거나 나무껍질 틈에 끼워놓는 습성이 있다. 정발산에는 참나무류가 많아 월동 전 어치들이 많이 찾아온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류 조사원 김동원(삼육대 동물자원과학과 3) 씨는 “가을철 이동 시기에 보이는 나그네새인 울새도 관찰할 수 있었다”며 “먹이자원이 풍부한 정발산에 되새과와 멧새과 조류들이 찾아오게 되면 종 다양성이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발산
지난달 15일 정발산 평심루에 나타난 너구리.
정발산
청설모

한편, 지난달 15일 정발산 평심루 앞에서 두 귀에 표식을 부착한 너구리가 발견되어 눈길을 끌었다. 정발산에서는 지난 2022년 6월 수컷 너구리가 1마리 발견되었고, 한 달 뒤 새끼 3마리를 포함해 너구리 다섯 마리가 관찰된 바 있다. 이 밖에 포유류로는 청설모와 두더지가 확인되었다.
생태조사에 참여한 신인선 고양시의원은 “작은 산이라 기대를 많이 안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야생생물이 숨 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정발산이 앞으로도 잘 보전되어 시민들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서식처와 먹이가 필요한 야생동물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취재지원: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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