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미공개 원고 소장 미래도서관 숲을 가다
[고양신문] 한강 작가는 2019년 5월 노르웨이 미래도서관 숲에서 자신의 미공개 원고를 흰 천에 정성스럽게 쌌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라는 제목의 이 원고는 미래도서관에 봉인됐다가 2114년 출간된다. 한강 작가는 그날 “하얀 천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배냇저고리, 결혼할 때 웨딩드레스, 무덤으로 돌아갈 때 수의”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은 2014년부터 매년 1명의 작가를 선정, 미공개 원고를 봉인했다가 100년 후인 2114년 책을 발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래도서관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100년간 나무를 심고 있다. 2114년 작가 100명의 책은 이들 나무 1000그루로 만든 종이로 낸다. 미래도서관 프로젝트에는 숲과 선정작가 미공개 원고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막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초 주말 아침,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북부 노르마카 미래도서관 숲을 찾았다. 지난 가을을 살아온 노르카마 숲은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가 어깨동무하며 푹신푹신한 이끼와 블루베리, 링콘베리 친구들이 더불어 숲을 이루고 있다.
첫눈 내린 첫 주말 아침, 이끼 낀 바위들이 마치 북유럽 신화의 트롤(Troll)처럼 이방인을 반긴다. 숲길 곳곳에 이끼 쓴 바위들이 마치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는 듯하다. 흙과 바위로 빚은 몸, 눈 덮인 심장, 얼음 같은 뼈대, 한번 본적 없는 트롤들이 오늘은 신비한 동화를 품은 듯하다.
따뜻한 어머니 품, 노르웨이 숲에서 맞이하는 늦가을의 칼바람은 나무들이 잠재우고 있다. 노르마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나무 밑마다 걷는 길, 스키 타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하늘색 이정표 따라 미지의 숲속을 걷다 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숲속을 빠져나와 나무와 흙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지붕에서 풀이 자라고있는 노르웨이 전통 주택을 만나게 된다. 긴 겨울을 이겨내려고 지붕에 자작나무 껍질 예닐곱 겹을 층층이 깔아 방수를 하고, 흙을 두 뼘 이상 두껍게 덮은 지붕 위에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 주택들도 오슬로 피오르드(Fjord)를 품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듯하다. 이 집들은 온전히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신비한 숲속에 접어들수록 고도가 올라갈수록 안개 낀 숲의 신비함은 더해만 간다.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 길 따라 1시간여 자연과 하나되다 보면, 짧은 백 년을 생각하는 미래도서관 숲에 도착한다. 고요한 숲에는 원주민 나무들과 곤충, 새들의 천국이다. 아직은 어린 가문비나무 묘목들이 사춘기 아이들처럼 몸통에도 가시를 품고 있다. 미래도서관 숲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청년 가문비 나무를 살포시 안아본다.
미래도서관 숲 여정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 노르웨이 가문비나무들이 거센 바람을 잠재우고 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한 그루의 나무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는 노르웨이 속담처럼 짧은 백 년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숲 어린 나무들의 나이테는 올 겨울에도 옹골지게 차오르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들처럼 온 인류가 함께 뿌리내리며 평화롭게 살아가라 하는 듯하다.
숲 향기 더욱 짙어지는 숲길 사이로 새로운 이정표가 보인다. 노르웨이 최북단 땅끝마을 노드캅(Nordkapp)까지 1951㎞, 북극(Nordpolen)까지 3358㎞, 달(Månen)까지 38만4400㎞…. 같은 지구 하늘 아래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의 오늘을 생각하며, 다시금 짧은 백 년 후 미래세대를 생각하며 희망찬 내일을 그려본다. 안개 자욱한 노르웨이 숲처럼 미스테리(Mystery)한 오늘의 삶속에서 희망찬 미래의 나의 삶(My Story)를 만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