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나의 부모님은 내 뺨을 때리려 하고, 몇 시간 뒤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xxx’이라고 욕하고, 나를 안아줬다. 통금시간을 강제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마침내 아버지가 폭력을 저지르고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왔을 때, 나는 민법 상 청소년이었다. 부모님은 경찰에 신고해 위치를 추적했고, 내가 머무르던 거처에 일방적으로 찾아왔다. 핸드폰을 끄고, 교통카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던 주변 동료들의 조언을 실감했다. 한동안 이사를 가더라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고, 캐리어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짐을 유지하며 살았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집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집을 떠난 청소년은 '불법인간'이 된다. 부모의 동의 없이는 주거계약을 맺을 수도,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국가는 국민의 적절한 생활수준을 보장할 의무가 있지만, 청소년의 빈곤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가구를 기준으로 한 사회보장제도는 가구 바깥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청소년에게 존엄을 보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탈가정 청소년 보호를 위해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조차 부모의 동의를 요구한다. 여성가족부 업무지침에 따르면,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72시간 내에 부모에게 입소 사실을 알려야 한다. 부모와 함께 살 수 없어 집을 나온 청소년들에게 "부모한테 허락 받고 오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보호가 이뤄질 리가 없다. 그 결과, 탈가정 청소년들은 쉼터 밖으로 내몰리며 그 어떤 보호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다.
청소년복지법은 탈가정 청소년을 '사회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보호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집을 나온 청소년을 '불법인간'으로 만드는 법률과 제도부터 고쳐야 한다. 청소년 쉼터 등의 공공시설에서 부모에게 탈가정 청소년의 위치를 함부로 노출시키지 않도록 법률을 정비하고, 한계가 명백한 부모 연락 지침의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집을 나온 청소년이 '실종아동'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도록 실종아동법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소년법 상 우범소년 규정의 폐지도 절실하다. 우범소년은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 소년에게 인신을 제한하는 등의 보호처분을 부과하는 규정이다. 소년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것'을 우범소년의 사유로 삼고 있어, 사회적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탈가정 청소년이 처벌과 낙인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소년법에서 우범소년 규정을 삭제하고, 소년복지 대책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으나 법무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이 집을 나와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부모의 학대와 폭력을 거절해도, 부모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두렵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말 안 들을 거면 집을 나가"라는 부모의 협박이 청소년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된 탈가정 청소년 보호 및 지원체계를 수립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