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연천 DMZ 평화의 길 ‘연강나룻길’ 걸어보니 

임진강 상류 조용히 걷기좋은길 
군남댐~필승교 천연기념물 지정
"옥녀봉 정상 자동차 쌩쌩 질주
댑싸리 대신 물억새길 검토할만" 

임진강 상류 물줄기를 따라 걷는 연강나룻길은 군남댐 위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출발한다.
임진강 상류 물줄기를 따라 걷는 연강나룻길은 군남댐 위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출발한다.

[고양신문] “한반도의 모든 길은 연천에서 시작된다.” 
한탄강 지질공원 홈페이지에 실린 ‘연강나룻길’에 대한 설명이다. 북에서 흘러내린 임진강의 물줄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과 처음 만나는 길이 연강나룻길이다. '연강(漣江)’은 연천에 흐르는 임진강을 일컫는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다양한 야생동식물의 보금자리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연강나룻길은 군남면 선곡리 두루미테마파크와 로하스파크, 중면사무소에서 출발해 옥녀봉을 찍고 원점 회귀하는 세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군남댐이 내려다보이는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출발해 개안마루, 옥녀봉을 거쳐 삼곶리 두루미마을까지 약 9km 길이의 연강나룻길을 걸었다.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이사와 최성욱 사무국장이 동행했다. 

미수와 겸재가 사랑했던 개안마루
임진강 남쪽 구간의 최북단에 자리한 군남댐은 상류 쪽 북 황강댐의 무단 방류에 대비해 2010년 완공한 홍수조절용 댐이다. 댐 공사가 진행되던 2009년 북이 황강댐 물을 방류해 연천에서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예정보다 1년 앞당겨 공사를 마쳤다. 홍수 조절이 주목적이지만 겨울철에 물을 가둬 농번기에 농업용수로 공급하고, 연천 주민의 상수원으로도 사용한다. 2500만 수도권 주민 가운데 팔당댐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 연천이다. 

연강나룻길 능선길에는 율무밭이 넓게 펼쳐진다.
연강나룻길 능선길에는 율무밭이 넓게 펼쳐진다.
수확이 끝난 율무밭에 낙곡이 떨어져 있다.
수확이 끝난 율무밭에 낙곡이 떨어져 있다.
버드나무 쉼터를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면 개안마루가 나온다.
버드나무 쉼터를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면 개안마루가 나온다.

확장공사가 한창인 연천군 맑은물사업소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단숨에 오르니 임진강 상류의 유려한 물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윤슬이 눈부신 강물 위에는 기러기와 오리류가 둥둥 떠 아침햇살을 즐기고 있었고, 강 건너 강내리 쪽에는 두루미 몇 가족이 한적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북 강원도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한반도 중부를 관통해 파주 교하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총 길이 254km로 한반도에서 7번째로 큰 강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차례로 대치했던 국경하천이었고, 지금은 남북한이 80년째 대치하고 있다. 태풍전망대를 지나 임진강의 중상류 구간 70%는 북한 땅에 속한다. 
능선 전망대에서 여울길을 따라 참나무 숲을 지나면 추수가 끝난 율무밭과 콩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농기계가 접근하지 못한 척박한 곳이라 농사를 포기하는 땅도 많이 눈에 띄었다. 연천 두루미는 주로 율무를 먹는데 율무 값이 비싼 데다 수확량이 갈수록 줄어 두루미를 사랑하는 지역주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평원 한가운데 자리한 버드나무 쉼터를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면 ‘경치가 워낙 뛰어나 장님도 눈을 떴다’는 개안마루가 나타난다. 

개안마루 위에 새로 조성된 대형 전망대.
개안마루 위에 새로 조성된 대형 전망대.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고요히 흐르는 임진강 줄기와 삼곶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고요히 흐르는 임진강 줄기와 삼곶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 중기 문신인 미수 허목은 고향인 연천에서 집을 가꾸고 지인들을 초대해 임진강 뱃놀이를 즐기며 많은 글을 남겼다. 주로 개안마루 주변 징파나루나 웅연나루에서 뱃놀이를 즐겼는데 추석 전날 여섯 명이 배를 타고 달을 감상한 ‘웅연범주기’가 그의 문집 ‘기언’에 남아있다. 개안마루 뱃놀이는 허목을 흠모하고 풍류를 즐기던 조선 사대부들의 버킷 리스트였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1742년, 개안마루에서 뱃놀이를 한 뒤 ‘우화등선(우화정에서 배를 타다)’과 ‘웅연계람(웅연나루에 배를 대다)’이란 작품을 남겼다. 당시 양천 현령이었던 정선은 경기관찰사 홍경보의 초대를 받아 연천 현감으로 있던 시인 신유한과 함께 임진강을 유람했다. 흥이 오르자 홍경보가 노래를 부르고, 신유한은 시를 짓고, 정선은 그림을 그렸다. 정선의 두 작품은 ‘연강임술첩’에 실려 있다. 
남북 접경지역이 된 개안마루는 오랫동안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개발에서 비켜나 지금도 당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안마루보다 더 높고 조망이 좋은 곳에 새로운 전망대가 들어섰는데,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현대적이어서 미수와 겸재가 즐겼던 옛 임진강 뱃놀이의 정취를 상상하기 어렵다. 

옥녀봉에 그리팅맨을 세운 까닭  
개안마루를 지나 임진강 건너 북녘땅과 4km 떨어진 곳에 옥녀봉이 있다. 옥녀봉은 해발 207미터로 야트막한 봉우리지만 주변에 막힘이 없어 탁 트인 데다 임진강 줄기를 조망할 수 있어 삼국시대부터 쟁탈전이 벌어졌던 요충지다. 옥녀봉 정상에는 10미터 높이의 조각상 그리팅맨(Greeting Man)이 세워졌다. 알루미늄 주물 4.5톤을 사용해 탄생한 푸르스름한 빛의 알몸의 거인은 북쪽을 향해 15도 각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1. 연강나룻길은 군남댐 위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출발한다.사진2,3,4  연강나룻길 능선길에는 율무밭이 넓게 펼쳐진다.사진5. 개안마루 위에 새로 조성된 대형 전망대.사진6.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고요히 흐르는 임진강 줄기와 삼곶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사진7.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이사가 임진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8. 옥녀봉 정상에 우뚝선 그리팅맨.사진9. 연천군은 최근 옥녀봉에 도로를 확장하고 콘크리트 포장 공사를 마쳐 정상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 운행이 가능하다.사진10. 댑싸리공원 근처 하천가에 두루미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사진11. 댑싸리공원 주변에 조성된 주차장들이 차 한 대 없이 방치되어 있다. 
옥녀봉 정상에 우뚝선 그리팅맨.
사진1. 연강나룻길은 군남댐 위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출발한다.사진2,3,4  연강나룻길 능선길에는 율무밭이 넓게 펼쳐진다.사진5. 개안마루 위에 새로 조성된 대형 전망대.사진6.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고요히 흐르는 임진강 줄기와 삼곶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사진7.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이사가 임진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8. 옥녀봉 정상에 우뚝선 그리팅맨.사진9. 연천군은 최근 옥녀봉에 도로를 확장하고 콘크리트 포장 공사를 마쳐 정상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 운행이 가능하다.사진10. 댑싸리공원 근처 하천가에 두루미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사진11. 댑싸리공원 주변에 조성된 주차장들이 차 한 대 없이 방치되어 있다.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이사가 임진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팅맨 작가 유영호씨는 고양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은 자신을 낮춰 상대를 존중하고 마음을 연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천 옥녀봉에 그리팅맨을 세운 것은 남북이 소통하며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이어 “북쪽 산봉우리에도 같은 크기의 그리팅맨을 세워 남북이 서로 마주 보며 인사하도록 작품을 구상했지만, 남북 관계 경색 때문에 북쪽 설치 작업은 숙제로 남겨뒀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전쟁의 고통을 겪었거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그리팅맨을 계속 세워나갈 계획이다.
연천군은 최근 옥녀봉 정상까지 가는 길을 왕복 2차로로 확장하고 콘크리트 포장 공사를 단행했다. 옥녀봉에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하지만 걷는 사람과 자동차가 뒤섞여 번잡하고 사고 위험이 커진 데다 연강나룻길의 의미를 살리기도 어려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 보였다. 옥녀봉에서 만난 홍모씨는 “차로 정상까지 씽씽 달려 휘리릭 둘러본 뒤 사진 몇 장 찍고 금방 내려온 관광객이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과 그리팅맨을 보고 무얼 느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사진1. 연강나룻길은 군남댐 위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출발한다.사진2,3,4  연강나룻길 능선길에는 율무밭이 넓게 펼쳐진다.사진5. 개안마루 위에 새로 조성된 대형 전망대.사진6.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고요히 흐르는 임진강 줄기와 삼곶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사진7.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이사가 임진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8. 옥녀봉 정상에 우뚝선 그리팅맨.사진9. 연천군은 최근 옥녀봉에 도로를 확장하고 콘크리트 포장 공사를 마쳐 정상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 운행이 가능하다.사진10. 댑싸리공원 근처 하천가에 두루미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사진11. 댑싸리공원 주변에 조성된 주차장들이 차 한 대 없이 방치되어 있다. 
연천군은 최근 옥녀봉에 도로를 확장하고 콘크리트 포장 공사를 마쳐 정상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 운행이 가능하다.

댑싸리 공원 썰렁한 주차장 부지 
옥녀봉에서 내려와 삼곶리 두루미마을 가는 길목에 임진강 댑싸리공원을 지난다. 돌무지무덤 앞 3만㎡에 조성한 댑싸리공원은 2021년부터 2만여 그루의 댑싸리를 심어 9~10월 두 달간 무료 개장하며 10월에 축제를 연다. 시즌이 끝난 축제장은 스산했고, 자동차가 빽빽이 들어찼던 주차장은 차 한 대 없이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단풍 든 댑싸리를 보려고 몰려든 관광객은 대중교통이 없다 보니 너나없이 승용차를 끌고 왔다. 주말이면 교통혼잡이 극심해 공원보다 더 넓은 면적의 주차장이 필요했다. 연천군은 물억새밭 습지를 메워 주차장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는 애초 이런 상황을 내다보고 댑싸리공원의 확장을 반대했다고 한다. 김경도 이사는 “1년에 한두 달 이용하기 위해 10개월을 준비해야 하는 댑싸리공원 보다 임진강에 자생하는 물억새 군락을 살려 걸을 수 있게 해주면 비용도 적게 들고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좋아하는 관광객이 연중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가볼 만한 명소라는 평가와 함께 임진강변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댑싸리 공원이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파주 시민 유모씨는 “고즈넉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알록달록한 나무를 심어 생뚱맞고 부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댑싸리공원 근처 하천가에 두루미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댑싸리공원 근처 하천가에 두루미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1. 연강나룻길은 군남댐 위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출발한다.사진2,3,4  연강나룻길 능선길에는 율무밭이 넓게 펼쳐진다.사진5. 개안마루 위에 새로 조성된 대형 전망대.사진6.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고요히 흐르는 임진강 줄기와 삼곶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사진7.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이사가 임진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8. 옥녀봉 정상에 우뚝선 그리팅맨.사진9. 연천군은 최근 옥녀봉에 도로를 확장하고 콘크리트 포장 공사를 마쳐 정상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 운행이 가능하다.사진10. 댑싸리공원 근처 하천가에 두루미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사진11. 댑싸리공원 주변에 조성된 주차장들이 차 한 대 없이 방치되어 있다. 
댑싸리공원 주변에 조성된 대형 주차장들이 차 한 대 없이 방치되어 있다. 

삼곶리에서 상류 쪽으로 더 나아가면 두루미류가 수천 마리 월동하는 장군여울과 망제여울, 필승교 여울이 차례로 나온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단의 현장인 연천 임진강 상류 지역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두루미들이 먹이터와 잠자리로 이용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꼽힌다. 정부는 2022년 군남댐~필승교 구간을 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지난 겨울 연천 임진강을 찾은 두루미는 614마리, 재두루미는 2113마리로 철원평야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민통선 출입이 간소화되고 산지 밭 경작지와 논 습지가 인삼밭으로 바뀌어 두루미 취식지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조류 사진가와 지역주민들이 두루미류 잠자리와 취식지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는 등 두루미류 위협 요인이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DMZ 보전 정책 토론회에서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은 “우리나라를 찾는 두루미 개체수는 늘고 있는데 두루미의 먹이터인 산지 율무밭과 농경지는 파편화되고 줄고 있다”며 “두루미서식지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연천 임진강 망제여울 위를 날고 있는 재두루미 무리.
연천 임진강 망제여울 위를 날고 있는 재두루미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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