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모 동장으로부터 연말에 통장님들을 대상으로 고양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전문가도 아니고 그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고양시의 향토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5년간 근무한 경험을 믿고 승낙을 했다. 주제는 ‘인물로 읽는 고양의 역사이야기’로 정했다.
고양의 역사 속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인물은 권율과 최영이다. 두 사람 모두 고양출신은 아니지만 이 지역에 큰 흔적을 남겼다. 그 다음에는 누가 있지? 쉽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재직 시에 사업을 추진한 바 있는 ‘고양시사이버역사박물관’에 접속해 이리저리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출신지가 고양인 인물은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기록도 불분명할 뿐더러 시대별로 고양이라는 지역의 범위도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을 한 인물들을 추려보았다.
시대 순으로 보자면 우선 사실과 설화의 중간쯤에 있는 한씨미녀, 한주(韓珠, 생몰연대 미상)가 있다. 그녀는 6세기 초 지금의 고양 땅인 백제 개벽현의 인물로 고구려 제22대 안장왕과의 러브스토리가 『한씨미녀와 안장왕』이라는 설화로 남아있다. 이 둘의 사랑 이야기는 구성이 마치 『춘향전』과 흡사하다. 아마도 구전소설인 『춘향전』의 모태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설화의 내용은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조선상고사』 등 역사․지리서에도 기록이 남아있어 허구가 아닌 사실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본 인물은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의 최영장군이다. 그는 우리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 봤을 고려 말의 명장이자 충절과 청렴의 상징이다. 목숨 바쳐 위기의 고려를 구해냈건만 무리하게 명나라의 요동 정벌을 강행해 이성계 일파에게 위화도 회군의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중과부적으로 이성계의 군사들에게 체포되어 유배를 갔다가 참수 당한다. 그는 아버지 최원직이 잠들어 있는 고양시 덕양구 대자산 자락에 묻힘으로써 고양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다.
세 번째는 우리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된 연산군이다. 의외의 인물일 것이다. 최영장군 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덕양구 대자동 길가에 우리나라 유일의 <연산군시대 금표비>가 서 있다. 기생집단인 흥청을 대동하고 사냥을 즐겨하던 연산군은 고양 땅을 자신의 사냥터로 선언하고 백성들을 다 내쫒아 버렸다. 그래서 고양 땅은 한때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지역이었다.
네 번째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임진왜란의 영웅, 권율장군이다. 금수저 중에 금수저인 권율은 학습은 게을리하고 전국을 유람하며 노는 것에 빠져있었다. 영의정이었던 아버지 권철은 죽음에 이르러 아들의 태만을 호되게 꾸짖는다. 이에 큰 반성을 한 권율은 학습에 전념하여 46세의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한다. 문관이었던 권율은 임진왜란을 맞아 무관으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다. 젊은 시절 전국을 유람하며 얻은 지형적인 지식과 호연지기가 큰 도움을 준 듯하다.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들어오는 관문인 이치고개에서 왜군을 물리침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을 보호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무엇보다도 큰 활약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이다. 3000명의 민관군이 배수의 진을 치고 열 배에 달하는 왜적 3만 명을 물리쳤다. 이 전투는 왜군의 전투의지를 꺾고 1차 임진왜란을 종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자랑스러운 전투가 행주산성에서 있었고 그 중심에 권율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독립운동가 이가순 선생 부자의 이야기다. 선생은 황해도 출신으로 만주, 연해주, 원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로 말년에 고양시 능곡에 정착해 농민운동을 펼친다. 제방을 쌓고 농수로를 만들고 한강물을 퍼올려 황무지를 옥토로 만듦으로써 가난한 고양지역 농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인물이다. 선생의 유지는 의사인 아들 이원재에 의해 완성되고 농어촌공사 설립에 크게 기여한다. 한강변에 설치된 행주양수장에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를 세웠으며 2016년 더 많은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인근 행주산성역사공원으로 이전했다.
강의자료로 살펴본 고양의 역사인물이었지만 지역의 역사도 한 나라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의롭고 진실된 인물들이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대통령의 어이없는 계엄령 선포와 탄핵으로 나라 안팎의 상황이 극한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국민생활 전반에 큰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정권자의 조속하고 현명한 결단을 촉구하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낼 위인의 출현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