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울금 가공이 끝나면서 한 해의 농사가 모두 마무리 되었다.
지난 십여 년간 나는 울금가루와 울금환을 판매해서 무탈하게 겨울을 났다. 그래서 고되기 짝이 없는 울금 수확과 가공작업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경기침체가 심각하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면서 울금 주문도 뚝 끊기기 시작했고, 결국 적잖은 재고가 남으면서 생활전선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울금 농사는 대풍을 맞이했고 나는 울금을 수확하는 내내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대신 가공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속을 끓여야 했다. 고심 끝에 나는 몇몇 농장 회원들에게 사정 얘기를 한 뒤 내년 텃밭 분양비를 미리 당겨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울금 가공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울금 가공을 마쳤는데도 주문이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경제적 난관에 봉착했다. 원래대로라면 십이월이 되면 울금 주문이 죽 이어지면서 적잖은 목돈이 들어왔고 나는 농사가 시작되는 삼월까지 별다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겨울을 났다.
그러는 와중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쿠데타가 터졌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나 역시도 토요일이면 광장에 나가서 열심히 구호를 외쳤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막걸리를 홀짝이며 생계 걱정에 시달려야 했다. 울금도 울금이지만 집필하는 내내 내심 기대를 품었던 작은 소설집 『마이카시대』도 판매가 중단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생계를 해결할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나는 고심 끝에 임시방편으로 오랫동안 대리운전을 해온 선배와 함께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픽업하는 일을 하기로 했는데, 그 속에는 대리운전은 밤에 하니까 낮에는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선배와 함께 하는 대리운전은 저녁 일곱 시에 시작해서 새벽 세 시를 넘겨 끝나는데 집에 돌아오면 여간 피곤하고 허기지지 않았다. 그럼 주섬주섬 밥상을 차려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여가며 식사를 끝낸 뒤 씻고 침대에 누우면 창밖이 희붐하게 밝아오기 시작했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오후 두세 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일어나서 찬물에 세수하며 정신을 차리고 식사를 마치면 오후 다섯 시가 되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글쓰기는 고사하고 산책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입은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여하튼 당분간 나는 대리운전을 이어갈 생각인데 대리운전을 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대리기사 대부분은 육십을 전후한 중년들인데 그 숫자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선배와 나는 주로 라페스타와 백석동과 정발산동에서 콜을 잡는데 일산의 유흥가마다 백 명이 넘는 대리기사들이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추위에 맞서 싸워가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오토바이로 새벽까지 음식을 배달하는 기사들을 합치면 도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선배와 나는 고양시 전역을 돌아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지역상권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다. 농장 회원 중에 외식업을 하는 후배가 있는데 그는 자기 역시 대리라도 뛰게 될 판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과연 이 어둠의 터널은 언제쯤 끝나게 될지 생각해보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