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 소장
[고양신문]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일반적인 관점과 본질적인 관점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관점은 국회(의회)가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기능을 수행하는 핵심적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국회(의회)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관점은 본질과 부분의 차이에 있다. 부분은 중요하지만, 부분이 없어도 전체는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에 본질이 없으면 다른 존재가 된다. 국회(의회)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관점이 본질적인 관점이다.
국회(의회)가 민주주의의 본질인 이유는 국회(의회)의 민주적 구성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 둘을 결합한 준대통령제가 있다, 세 유형 모두 공통된 점은 국회를 민주적으로 선출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에서도 지방의회가 본질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18조는 지방자치단체에 ‘지방의회’를 둔다고 명시하고, 지방의회는 ‘선출’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단체장은 ‘선임’한다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단체장은 선출할 수도 있고, 지방의회가 임명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국회(의회)의 민주적 운영 원리에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몽테스기외의 삼권분립 원리에 따라 입법, 행정, 사법으로 국가권력을 분리한다. 그런데 행정부는 대통령(수상) 1인에 의해 지배되는 조직이다. 법관(대법관)으로 구성하는 사법부는 법관 1인 혹은 3인 혹은 9인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구성하여 결정하므로, 소수자가 지배하는 조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다스리는 사람의 수에 따른 분류에 의하면, 행정부는 군주정, 사법부는 귀족정이다.
국회(의회)는 다수가 지배하는 조직, 민주정이다. 민주정치가 무엇인가? 다수가 다스리는 정치(rule by the people)이다. 다수란 이론적으로 국민(시민) 전체이고, 현실적으로 과반수다. 국민(시민)이 일치된 견해를 갖기는 어려우므로 현실적으로는 과반수로 결정한다. 국회(의회)에서 의원은 동료의원의 동의를 받아 법안을 제출하고, 상임위원회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기 위해 동료의원을 설득한다. 정책적 생각을 공유하는 의원들과 교섭단체를 만드는 것, 그래서 다른 정당과 협상하고 타협하는 장이 의회이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다면, 국회(의회)를 경험한 정치인을 대통령이나 시장으로 선출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경험한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김영삼 대통령은 1954년 제3대 국회에 당선되어 1992년 제14대 국회까지 9선의 국회의원을 경험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61년 제6대 국회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1992년 제14대 국회에 당선되기까지 6선을 경험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선이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제19대 국회의원을 경험했다.
반면에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원 경험이 없다. 세 명의 대통령은 모두 독재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비상계엄과 유신헌법으로 국회를 해산시켰고, 전두환은 1979년 12월 12일 비상계엄과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국회를 해산시켰다. 윤석열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비상계엄으로 국회를 해산하려 했고, 지금은 내란의 수괴로 정치적 혼란과 민주주의 쇠퇴를 주도하고 있다.
국회(의회)는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을 설득해 다수를 형성해야 지배할 수 있는 민주주의 학습장이다. 한국 대통령들의 경험만을 보아도, 국회의원 생활을 경험한 대통령과 그렇지 않은 대통령이 가져온 결과가 이것을 증명한다. 국회(의회)를 부정하는 자, 국회(의회)를 우회하는 자가 독재자이다. 국민과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회)는 다수가 지배해야 하기에 시끄러울 수 있다.
그런데 시끄럽다고 국회(의회)를 비난하는 시민들이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자가 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국회(의회)의 시끄러움을 인정하고, 국회의 시끄러움 속에서 규칙과 절차를 지키는 자, 다수의 지배인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치인을 골라내야 할 것이다. 국회(의회)가 민주주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