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김민애 기획편집자
김민애 기획편집자

[고양신문] 10여 년 전, 술에 잔뜩 취한 여성을 버스 정류장에서 발견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꽤 많았음에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서겠지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귀가 시간에 쫓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 취객이 남성이었다면 나도 관심을 두지 않았겠지만, 같은 여성이었기에 어떻게든 집에 잘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앉혀 두고 가방을 뒤져 휴대전화를 찾았다. 잠금 상태라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한참 뒤 가족에게서 전화가 왔고, 현재 위치를 알려 주었다. 가족들은 여성을 뒷좌석에 태우고 나에게 택시비로 3만원을 쥐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자, 다음부터는 경찰에 신고하는 정도의 관심만 두라고 했다. 자칫하면 가방 뒤진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며. 틀린 말이라고 생각지 않지만, 나는 지금도 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외면하지 않은 내 진심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남편이 남의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절대로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인다. 추행이나 절도 등으로 오해 사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 호수공원을 뛰는 남편이 어느 날 평소보다 약간 늦게 들어왔고, 집에 오자마자 “여보, 여보” 하고 나를 찾는다. 호수공원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는데, 청년이 그를 돌보고 있었단다. 취객이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청년 혼자서 애쓰고 있는 듯하여 경찰과 119에 신고를 하고 왔단다. 그 상황에서 청년이 떠나지 않고 취객을 돌본 것이 멋져 보인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잘생긴 청년이 마음도 착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에 쓰러진 취객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남편은 청년의 호의를 목격한 것만으로도 만족한 듯했다.

이처럼 사소한 관심이 모이고 모인다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아질까?

어둑어둑한 12월 새벽, 한 남자가 석탄을 실은 트럭을 운전한다. 주문받은 대로 석탄 자루를 배달하다 보면, 어느새 빛이 사그라든 저녁이다. 집에 돌아와 손에 묻은 석탄 가루를 지우고 식탁에 앉으면 다섯 명의 딸과 아내의 따뜻한 온기가 그를 맞이한다. 어쩌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남자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이웃집 남자아이가 부모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늘 배달을 가는 수녀원에 한 소녀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입소하는 장면도 목격한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려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한다. 남자는 아내의 충고에 이웃집 남자아이에 대해 시선을 돌린다. 남자는 이러한 외면에 양심을 가책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석탄 창고에 갇힌 소녀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일상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사소한 관심을 외면했을 때 자신에게 닥칠 양심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과거 자신에게 사소한 관심을 나눠 준 이들 덕분에 지금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소함에는 무게가 있다. 이 작디작은 어떤 것에 개개인이 느끼는 무게가 다르다. 사소함을 무겁게 느끼면, 사소한 것에 관심을 두고 행하는 힘도 강력해진다. 반대로 사소함을 가볍게 느끼고 외면하면 어떻게 될까?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사회악을 초래한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가 1922년부터 1996년까지 은밀하게 소녀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처럼 말이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포스터.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포스터.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소한 것들에 사소한 관심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폭발적인 변화를 보여 준다.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은 개인의 사소한 관심이 나비효과가 되어 사회 변화를 일으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곁들여 보기를 추천한다. 주인공 킬리언 머피의 눈빛이 우리의 양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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