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준 극지연구소 남극장보고 과학기지 총무

고양시 초중고 졸업, 청소년위원회·청정넷 활동
풀뿌리자치 관심, 정치학도에서 남극정책전문가로
“쇄빙선 타기 전 계엄령 뉴스, 남극난민될까 걱정도”

극지연구소 남극장보고 과학기지 11차 최영준 총무
극지연구소 남극장보고 과학기지 11차 최영준 총무

[고양신문] 장성초, 장성중, 대진고등학교 졸업. 중학생 때 고양시차세대청소년위원회, 청소년기자단을 시작으로 2003년부터 2013년까지 고양시청소년정치네트워크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고양신문 편집자문위원도 지냈다. 고양시에서 청소년, 청년 시절을 활발하게 보냈던 그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11차 총무’ 자격으로 남극 장보고기지에서 2023년 11월부터 1년 동안 지내다가 작년 12월말 귀국했다. 지역, 정치, 풀뿌리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기자, 청년 네트워크 활동에 참여했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부를 거쳐 대학원에서는 남북관계에 대한 논문을 쓰며 연구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누가 봐도 문과, 지역, 정치에 비전을 갖고 있던 그는 어떻게 남극, 극지연구소의 전문가가 됐을까. 인천 송도의 극지연구소에서 최영준 총무를 만났다. 

❚고양시에서 청소년 시절을 활발하게 보냈는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86년생인데 중학교 때 차세대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신정현 전 경기도의원을 비롯해 같은 생각을 하는 청소년들과 청정넷을 만들었어요. 청정넷 활동을 대학원 때까지 10년 했습니다. 지방선거, 정치에 청소년들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청소년모의국회도 열고, 청소년들이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었죠.  
원래 정치외교 전공을 희망했고, 지역의 풀뿌리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고 단체, 사람들을 만나 조직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 정치와 생활, 삶이 일치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도 같은 생각을 가진 교수님들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왜 갑자기 극지연구소에 입사하고, 남극 북극 전문가가 됐을까요.

그러게요. 저도 어떻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인생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웃음). 대학원 졸업하고, 결혼을 준비하며 세종시에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취직을 했어요. 극지연구소엔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해 2009년부터 남극에 가기 전까지 극지정책 관련 정책개발 실장으로 일을 했고요. 극지에 대한 정부전략, 정책 수립에 참여했고, 2021년에 극지활동 진흥법 입법 과정에 지원하고, 입법 후에는 법정 기본 계획 수립 총 책임자로 일을 했죠. 5년 동안 우리나라 극지활동 방향을 수립하고,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도 참여하고, 정책 파트에서 주로 일을 하다가 현장 상황을 배워보고 싶어 장보고기지 총무로 지원했고 2023년 11월 장보고기지로 파견돼 2024년 12월말에 돌아왔습니다.

❚남극과학기지 총무는 어떤 일을 하나요.
장보고기지에는 18명이 파견되는데 그중 대장과 총무만 연구소 소속이고 나머지 연구자들은 매번 공모로 모집합니다. 대장님이 월동연구대 채용과 전체적인 기지 운영의 방향을 잡고, 총무는 실무적인 운영 모두를 담당해요. 식자재구매부터, 보급품 관리, 한국과의 업무연락과 각종 문제해결을 위한 조율까지 모두 총무의 일입니다. 기지에는 대기·해양·생물 등 각 분야의 연구자, 중장비 기기, 의사, 조리대원 등 총 18명이 근무해요. 한 회차가 1년씩 운영돼 지금은 12차 운영진이 가 있습니다.

❚남극에서 국가 간 관계는 어떤가요.
실제 현장에 가서 연구자·파견자들이 춥고, 척박한 곳에서 고생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남극기지 현장에서는 국가 간 협력, 데이터 공유가 잘 돼요. 남극조약은 남극에 군사적 접근, 자원개발, 핵무기 도입이 안되고, 오로지 평화와 과학연구로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한 조약입니다. 이에 근거해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협력 모델이 작동되는 곳이 남극이에요. 조약에 따라 영유권 주장이 동결되고, 자원 개발이 금지됐으며, 오직 과학연구와 평화적 목적으로만 활동이 가능한 지역에서 어떻게 국가들이 협력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예로 우리나라는 남극까지 가는 항공기가 없어서 이탈리아 항공기를 이용해요. 우리에게는 쇄빙선이 있어 이를 이용해서 이탈리아의 짐을 옮겨주고, 이탈리아가 바다 위 얼음인 해빙에 활주로를 닦는 일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중국도 2024년 2월에 5번째 기지를 장보고 기지 인근에 건설하여 운영을 시작했는데 중국 쇄빙선이 우리 과학자들이 극지 관문도시로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줬어요.
극지연구 관련 정책업무는 바쁘고 힘들지만 적성에도 맞고, 무엇보다 보람이 큽니다. 남극조약 당사국회의에 우리 정부 대표단으로 참여해 지원을 하고, 남극·북극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극조약에는 현재 58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중 29개국이 남극에서 실질적으로 과학연구와 활동을 수행하는 협의 당사국입니다. 우리나라는 1986년에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1988년 세종과학기지을 건설 후 89년에 협의당사국 지위를 획득했고, 2027년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를 한국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남극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장보고기지에는 10월말부터 3월 초중반까지의 하계에 추가 연구자들이 도착해서 평균 60~80여명이 머물고, 동계 기간에는 파견된 18명만 있어요. 기지의 350㎞ 인근에는 아무것도 없고,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해요. 겨울에는 약 100일 정도 해가 안 뜨고 밤만 계속됩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하면서 기지운영과 연구활동을 수행하지만 그래도 개인 시간이 많아서 보통 연구를 하거나 책을 봐요. 저도 한국에서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햇던 극지 관련 자료를 보거나 대원들을 위해 떡볶이, 피자, 수제비, 김치찌개, 식빵 등 간식을 만들면서 대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동계기간에는 아무래도 해도 안 뜨고 실내 생활도 많으면서 신선한 식품도 부족해지기 때문에 다들 쉽게 예민해지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제45차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 대표단 참여 당시 최영준 총무.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제45차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 대표단 참여 당시 최영준 총무.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한국의 12·3 계엄령 뉴스를 보고 다들 황당했을 것 같아요.

저희가 남극에서 쇄빙선을 타기 직전에 뉴스를 봤어요. 처음에는 다들 가짜뉴스라고 생각하다가 사실이라는 걸 알고 가족들 걱정도 했지만 우리가 영화 <터미널>처럼 공항 난민이 되거나 남극바다를 떠도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어요.

❚남극에서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2004년 준공한 장보고기지 시설이 많이 노후됐어요. 남극기지에 대한 연구 수요도 늘어 2022년에 시설보수와 확장공사를 계획했다가 기지 주변 해빙(바닷물이 얼어 생긴 얼음)이 갑자기 깨져 못했어요. 그동안은 바다가 얼어 얼음 두께가 2미터 정도 되면 그 위에 배를 대고 하역을 했거든요. 하지만 얼음이 깨져 하역을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그해 공사를 못해 2024년 해상하역 방식으로 건설자재를 가져왔어요. 저희 차대가 한달 동안 쉼 없이 해상하역을 실시하고 자재를 기지로 옮겨 두었습니다. 이제 12차에 건설팀이 와서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한 달의 하역기간 동안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마무리 된 점이 기지 생활 중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극지연구소 소개도 부탁드려요.
극지연구소는 해양수산부 소관 과학기술분야 출연연구소입니다. 490여명의 연구원·직원들이 있는데 대기·생물·천문·환경·물리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이 있어요. 저는 기지에 파견 전까지 정책개발실에서 극지 관련 입법 지원, 연구소 연구 전략 수립, 정부 극지 정책 수립 등의 업무를 4년 정도 수행했습니다. 다른 과학기술 출연연구소들과의 차이는 정책 분야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남극조약을 이해하고 그에 근거해서 활동해야합니다. 국제정치적 이슈와 최근 관심이 높아진 기후변화에도 민감한 편이라 그에 따라 판단 근거, 전략수립도 해야하죠. 그동안은 국제정치적 관련 연관이 크지 않았는데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두 국가 모두 남극조약 협의당사국이라서 최근 회의에서 매우 민감했습니다. 최근에는 칠레의 보리치 대통령이 국가 정상으로는 최초로 남극을 방문했는데 다들 혹시나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어요.

❚듣고 보니 이슈도 많고, 뜻밖에 민감한 지역이군요.
기후변화로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남극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거든요. 최근에는 남극 해빙 면적이 역대 최소를 기록하고, 이상 기온이 관측되는 등 현장에서는 기후변화를 정말 민감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남극 관광 이슈가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에 남극조약 이슈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위자가 거의 없어요. 이슈들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연구할 학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이 기회를 빌려 전달하고픈 말은 남극과 관련한 오해예요. 2048년에 남극의 광물 자원을 개발할 수 있다고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남극은 ‘남극조약환경보호의정서’에 의해 자원 개발이 금지되어있습니다. 극지정책 수립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남극활동은 단순히 미래 자원을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기후변화 대응과 미지의 지역을 개척하는 데 있어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만큼 우리가 국제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활동이라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남극, 북극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우선은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겠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학, 취직이 사실 마음대로 되지도 않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 분야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남극과 북극은 알았지만 극지연구소가 있다는 걸 잘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극지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정책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전공과 적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더 큰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극지연구는 대기, 해양, 생명, 빙하, 지구, 원격탐사 등 다양한 분야와 연관된 많은 청소년들이 미래의 과학자로서 관심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극지 기후변화는 청소년들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청소년들이 분야와 상관없이 극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참여해주면 좋겠습니다.

기지 앞 해빙(바다얼음) 활동.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기지 앞 해빙(바다얼음) 활동.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활주로 운영을 위한 해빙 두께 측정과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활주로 운영을 위한 해빙 두께 측정과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해빙활주로 비행기 착륙 후 연구자, 보급품 수송을 위해 대기하는 모습.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해빙활주로 비행기 착륙 후 연구자, 보급품 수송을 위해 대기하는 모습.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해빙활주로 관련해 이탈리아 기지 관계자와 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해빙활주로 관련해 이탈리아 기지 관계자와 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기지 앞에서 바라본 해빙과 멜버른 화산.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기지 앞에서 바라본 해빙과 멜버른 화산.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장보고기지 전경.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장보고기지 전경. [사진제공=최영준 총무]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