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전 주독일대사
정범구 전 주독일대사

[고양신문] 지난해 12월 3일 이후로 독일인 지인들로부터의 안부 문자나 전화, 이메일이 부쩍 늘었다. 성탄절이나 신년인사 같은 통상적인 인사에서도 한국 상황과 나의 안부에 대한 걱정들이 물씬 묻어난다. 정치 상황뿐 아니라 연말에 있었던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치다 보니 위로 인사까지 끊이질 않는다.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외국 지인들의 인사를 받다 보니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나, 왜 외국인들이 걱정하고 안타까워 해야 하는 나라가 됐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독일인들에게 한때 한국은 놀라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가 대사로 재임하던 기간인 2018년 초부터 2020년 말까지 사이에도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이어 K-pop과 한류가 독일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기생충>, <오징어 게임> 같은 문화 콘텐츠들이 독일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20년 초 코로나가 독일에서도 많은 사상자를 내며 급속히 번져갈 때 독일 정부는 한국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감염자 추적 시스템과 방역 시스템을 배우고자 긴급 도움을 요청해 오기도 했다. 

하루는 독일 외교부 아시아 담당 국장이 급한 전화를 해 왔다. 메르켈 총리 긴급지시로 총리 안보 보좌관 얀 헥커를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한국에 급파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독일 측 방역전문가들과 함께. 그러나 이미 한-독 간 항공편도 대폭 축소되고 우리도 비상상태에 있던 참이라 이 요청은 우리가 독일 측과 화상회의를 통해 우리 측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2020년 4월 3일의 이야기이다. 이 이후에도 내각 각료회의 석상에서 메르켈이 왜 우리는 한국처럼 코로나 대응이 신속하게 안 되느냐고 질책했다는 이야기가 독일 대중지인 빌트(Bild) 지에 실릴 정도로 한국의 코로나 대응은 주목 대상이었다.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 대응은 독일 정부뿐 아니라 독일 언론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다. 여러 매체가 특집으로 한국의 다양하고 기발한 코로나 대응책을 다루었다. 특히 자동차를 탄 채 백신 접종을 받는 방식은 아주 기발한 것이었는데, 독일에서도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독일인들이 특히 주목했던 것은 그런 팬데믹 와중에도 한국인들은 국회의원 총선거 같은 대형 행사를 치러냈다는 것이다. 2020년 4·15 총선 당시 독일뿐 아니라 유럽은 거의 셧다운 상태에 있었는데 말이다.

대사 부임 인사차 찾았던 쇼이블레 당시 독일 국회의장은 내게 “한국은 아시아의 등대 같은 나라”라는 덕담을 해 주었다. 산업화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민주화도 모범적으로 달성했던 한국에 대한 헌사였던 것이다. 몇 백만이 모인 ‘촛불항쟁’이 단 하나의 폭력사태도 없이 평화적으로 완성됐다는 것이 유럽인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대한민국이었는데….

[사진제공=정범구]
[사진제공=정범구]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4, 5일 밤 사이에 많은 시민들이 한남동 길 위에서 내리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꼬박 밤을 새웠다. “내란 수괴 체포”를 외치면서. 그 전쟁터 같기도 하고, 폐허 같기도 한 풍경들 사이로 몇 사람이 부여잡고 있는 깃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깃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우리나라 정상 영업합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그래! 이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나라인데, 여기서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지. 손바닥에 아무리 임금 왕(王)자를 그리고 다닌다고 제왕적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희생으로 만들어 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이제 시대착오적인 계엄령 하나에 다시 겨울 공화국으로 돌아갈 순 없다. 새삼 지난 12월 3일, 소위 계엄사령부가 내놓았다는 포고령 제1호의 앞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맞다! 민주공화국 내부에서 암약하면서 대한민국을 쓰러뜨리기 위해 전쟁도발까지 불사하려 했던 저 내란 획책 세력! 이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들을 단호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계속 정상 영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YTN 화면 캡처]
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YTN 화면 캡처]

 

[1월 15일 오전 9시 20분 상황. [MBC화면 캡쳐]
[1월 15일 오전 9시 20분 상황. [MBC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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