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종교적 신앙에 기대어 사는 당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계급의식을 촉구하기 위한 주장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설연휴 때 가족들끼리 싸움은 없으셨는가? 아마 예전처럼 싸우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가족 친지들이 모였을 때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그래서 이른바 설 민심, 추석 민심 하는 것들에 정치인들이 민감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설이나 추석 때 정치 관련 민심을 엿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왜? 아예 입을 다물고 살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결국 가족 간 싸움이 된다. 그래서 아예 이제는 정치 관련 말조차를 꺼내지 않기 때문에 설 민심, 추석 민심도 사라졌고 가족 간 겉보기에 평안한 긴장감(?)이 감도는 연휴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틀이 자리잡고서 내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악마화하고 혐오하려는 경향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정치를 바라보는 기준으로서 “나는 진보, 너는 보수 혹은 나는 보수 너는 진보다”라는 인식으로 가르기에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자. 당신은 어떤 면에서 보수인가? 당신은 왜 진보라고 생각하는가? 민주당이 진보적 정당인가?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인가? 필자 개인은 양당의 성향을 진보적, 보수적이라고 나눌 자신이 없다. 우파 혹은 좌파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이념정당이 아니라, 특정 개인을 중심으로 갈라진 패거리 정치만 보이기 때문이다.

흔히 아는대로 진보는 변화를 추구하고 보수는 가능한 한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상식을 바탕으로 질문을 좀 던져보자. 정치체제에 있어서 민주와 반민주 구도가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진행된 민주화 과정은 그런 이중 구도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진보를 자처하든 보수를 자처하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선거민주주의는 이제 확실히 정착하였다. 반민주적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에 대하여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등을 돌렸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국회의 입법 독재에 대한 반감, 민주당의 무능, 법적 절차 등에 대한 반감의 결과다. 그런 경향을 “윤석열 독재정치에 대한 지지”로 묘사하는 사람은 여전히 7080 민주투사로서 갖는 특권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거대정당이나 언론이 좌지우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 생태계가 다양해지고 그 결과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행동, 추구하는 생활 양식이 다양해진 사회가 되었다. 성평등,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 이주배경인구의 증가, 기후변화, 급변하는 산업 생태계 등은 기존 두 거대정당의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를 던지고 있다. 불과 5~6% 내외의 표 차이로 전체 의석 수의 3분의 2 가까운 국회의원들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지난 21대에 이어 지금 22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주도는커녕 목소리를 낸 개혁 의제가 무엇이 있는가? 민주당이 탓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개혁 의제를 냈는가? 

공수가 바뀌면 차지할 대통령 자리이고 그 대통령이 임명하는 수만 개의 일자리를 바라보는 정치꾼들의 교체가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대중은 진보로서 민주, 보수로서 국민의힘이라는 허상만 바라보면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외면하며 심지어 혐오하는 대립만 계속한다. ‘나의 조그만 목소리’가 변화의 힘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체험을 대중이 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되어야 한다. 내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는 진보 혹은 보수라는 약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알게 되는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을 때 세상은 지금과 다르게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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