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보후밀 흐라발의 『시끄러운 고독』을 보면 하수구 청소부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수구에서는 쥐들이 매일 오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생사를 건 전쟁을 벌이는데, 어느 쪽이 살아남든 그들도 이내 둘로 분열되어 결국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치 우리네 정치인을 보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시궁창에서 정치인들이, 아니 쥐들이 두 패로 나뉘어 서로 물고 죽이는 동안 지하실에선 추락한 천사들이 읽고 씁니다. 비둘기가 역사를 거닐고 표정 없는 중년 남성이 두 개 만원짜리 무릎 보호대를 파는 지하철 1호선에서 이 글을 읽던 저는 마치 제가 추락한 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천사라니! 쓴다는 것은 이렇게 누구도 패배시킬 수 없는 정신의 철옹성을 쌓는 일이므로 삶에 불행이 많이 깃든 사람일수록 쓰는 것이 좋습니다.

지하철 좌석에 앉은 김수지 작가의 무릎 위에 잭과 키보드가 올려져 있다. [사진=김수지]
지하철 좌석에 앉은 김수지 작가의 무릎 위에 잭과 키보드가 올려져 있다. [사진=김수지]

책에는 후렴구처럼 이 말이 되풀이되어 나옵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에 던져졌다가 이후엔 소련에 점령당하고 연방이 붕괴된 후엔 슬로바키아 지역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체코의 작가가 하는 말이어서 그런지, 이 문장이 어쩐지 삶의 정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한 사람에게 일상에서 벌어지는 웬만한 사건은 별스럽지 않게 여겨질 겁니다. 그래서 보후밀 흐라발은 차라리 작은 것들에 집중합니다. 폐지, 생쥐, 기차, 유골 그리고 똥 같은 것들. 그러나 이 사소한 것들 안에서 작가가 펼쳐 보이는 세계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재잘대는 작은 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독자는 어느덧 핵심적인 질문에 가닿습니다. ‘운이 바닥까지 내려간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온 비둘기. [사진=김수지]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온 비둘기. [사진=김수지]

노숙 생활이야말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삶의 형태 중 가장 불운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침 얼마 전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무상 급식을 식탁도 의자도 없는 거리에서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땅바닥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그런 것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습니다. 하루 한 끼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 노숙 생활을 할 땐 그런 ‘인간적인 것’에 대한 관성 때문에 끼니를 거르기 일쑤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자연스럽게 식당 뒤편의 쓰레기통을 뒤지게 되는데, 사람이 사나흘씩 굶으면 그까짓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치는 배가 채워진 후에나 오는,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이런 인간적인 것들의 경계를 더듬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적인 것들이 사라진 삶에는 무엇이 남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런 인간적인 것들을 얼마나 잘 부양하고 있는지 등을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야기 쓰기의 본질일 겁니다. 

저는 요즘 인간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간 여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삶에서 고작 두어 번의 불운이 겹쳐졌을 뿐인데, 여자의 수중엔 어느덧 한 푼도 남지 않게 됐습니다. 배가 무척 고팠지만 차마 음식물 쓰레기 통을 뒤질 수 없었고, 노숙인 텐트촌에선 인간성을 벗어버린 짐승 같은 이들을 보게 됩니다. 그때 여자는 결심합니다. 차라리 산으로 들어가자고.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화엄사 홍매화가 있는 지리산으로.

여자는 과연 산속에서 인간적인 것들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렇게 지켜낸 인간적인 것의 실체는 무얼지, 저도 아직 그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하실의 추락한 천사처럼 묵묵히 쓰다 보면 언젠가는 답에 가닿게 될 겁니다. 그날이 오면 저는 더 이상 바닥에서의 삶이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저만의 인간적인 것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무릎 보호대를 파는 아저씨. [사진=김수지]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무릎 보호대를 파는 아저씨. [사진=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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