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트럼프 발 거친 파도가 밀려들고 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크지만 안보 질서에 미치는 파급 또한 만만치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시절부터 줄기차게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대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나는 김정은과 잘 지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며 협상을 통해 북핵 위협을 줄이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김정은 위원장이 호응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한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급진전 될 가능성이 높다. 그냥 손 놓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우리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먼저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우리의 안을 마련해야 한다. 힘으로 북한을 굴복시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더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 윤 정부의 정책은 남북 관계 악화, 북한 핵무기·미사일의 양적·질적 고도화로 인한 북핵 위협 증가, 편향 외교로 인한 한중 관계와 한러 관계 악화, 사실상 군사동맹으로 발전한 북러 밀착 등을 야기해 북핵문제 해결은커녕 우리의 안보 환경만 극도로 악화시켰다. 더욱이 윤 정부의 정책은 새로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상충된다. 현재의 정책을 지속시키며 대안 없이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협상 발목만 잡으면 노골적인 무시만 당할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독자적 핵무장론
국민의힘 오세훈, 홍준표, 나경원 등의 핵무장 주장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들은 미국의 일부 정치인 발언을 근거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워싱턴 조야의 대다수 안보 관계자들은 핵비확산체제(NPT) 유지가 미국 국익에 긴요하다고 여긴다. 핵비확산체제를 흔들어 이란 등의 핵무장을 가속시킬 수 있는 한국의 핵개발을 트럼프 행정부가 허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만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가 핵무장 추진을 강행한다면 한미 동맹은 사실상 와해되고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는 불가피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는 국제사회의 혹독한 경제 제재를 감당할 수 없다.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등의 주장도 핵무기 사용 권한이 오롯이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핵무장 주장은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핵확산 불안감을 자극해 한국의 이미지만 실추시킨다. 이는 타 분야에서 국익 훼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의 핵무장은 남북통일에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미·중·러·일 등 주변 강국들이 동북아 국제질서의 중대한 현상변경을 의미하는 핵무장 한 남북 두 군사 강국의 통일을 동의해 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1990년 3월 동독 총선에서 신속한 통일을 공약으로 내건 기민당 중심의 독일연합이 승리해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콜 서독 총리에게 핵무기 개발 포기와 유로화 도입 찬성을 압박했다. 콜 총리는 자신이 서독 총리이지 통일독일의 총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버텼지만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4+2(동-서독-미국-소련-프랑스-영국) 회담을 통해 이를 수용했다.
평화협정 추진이 새로운 대안
새로운 북핵 해법은 한국의 중장기 국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북핵 해법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국제사회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동시 추진’(9.19 공동성명 등 6자회담 합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합의)이다. 이 합의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뿐 아니라 남북한 모든 지역에서 비핵화이며, ‘한반도 평화체제’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핵심 내용이다.
필자는 국제사회의 기존 합의를 바탕으로 북핵 고도화, 미중 패권경쟁 격화, 북러 밀착 등 정세 변화를 반영한 새 대안이 ‘평화협정’ 추진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 남북미중 4자 협의를 거쳐 군사적 긴장 완화, 북핵 동결과 함께 평화협정의 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방안이다. 평화협정 추진은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평화협정은 명분이 뚜렷하기에 관련국 모두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먼저 평화협정 추진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할 뿐 아니라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줄 수도 있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북한도 김정은이 천명한 ‘두 국가론’에 부합되고, 지방발전 20X10 정책 등 경제발전에 전념할 환경이 마련되기에 참여할 것이다. 중국 또한 대화·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이라는 기존의 입장, 대외환경 안정 효과를 감안해 적극 협력할 것이다. 러시아 또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한반도 긴장 격화를 원하는 군산복합체와 국내외 극우세력 반대가 예상되지만 이는 압도적 여론으로 제압하면 된다. 문재인 정부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평화협정 대신 편법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했는데 이는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했기에 반대 세력의 극심한 방해공작을 돌파할 추진 동력이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종전선언과 달리 평화협정은 조약으로서 국내외적 법적 효력을 갖는다.
둘째, 평화협정은 만성적 안보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협상 개시와 함께 북핵 동결, 군비경쟁 중단이 함께 추진되기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돼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거론되는 한국 패싱의 불안감도 해소시킬 수 있다.
셋째,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작년 12.3 쿠데타 당시 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윤석열 일당이 북풍 공작을 시도했는데,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이런 행태는 더 이상 발붙이기 어렵게 된다. 북한 위협론, 색깔론 등 분단체제의 망령이 사라지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은 쟁점이 많아 협상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하지만 기존의 남북기본합의서, 9.19 남북군사합의 등을 활용하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또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한꺼번에 타결하는 방법 대신, 분야별로 나눠 합의가 된 것부터 중간발표를 하며 동력을 이어가는 방법도 있다. 한반도 현실에 맞춘 창의적 방법을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