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회 고양포럼] 이종수 연세대 교수 초청 
‘12·3 비상계엄과 대한민국 헌법’ 

[고양신문] 1980년 비상계엄령 이후 44년 만인 지난해 12·3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그날 밤 국민들은 계엄군의 국회 난입을 TV를 통해 혹은 현장에서 생생히 지켜봤다. 이날로부터 80일 가까이 지난 현재,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와 구금이 이뤄졌고, 탄핵심판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일련의 과정에 대해 헌법 위반 여부에 관심이 몰리던 초기와 달리 차츰 진영싸움으로 번지면서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여론이 전개되고 있다.

진영을 떠나 헌법 연구에 평생 매진해온 학자는 12·3 비상계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12·3 비상계엄이 지난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러한 문제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이 그 한계성을 드러내는 것일까. 현재 개헌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이 현상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

지난 17일 고양신문·고양포럼 주최 114회 고양포럼은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를 초청했다. 주엽동 사과나무의료재단 닥스메디빌딩에서 열린 이날 고양포럼은 12·3 비상계엄령과 관련한 여러 질문에 대한 헌법학자로서의 시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이종수 교수는 “우리 정치사에서 비상계엄의 오남용 사례를 확인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가  현행 헌법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펼쳐진 이종수 교수의 강의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현재 헌법재판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법제처 국가행정법제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종수 교수는 22년 동안 정발산동에서 살아온 이웃이기도 하다.
현재 헌법재판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법제처 국가행정법제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종수 교수는 22년 동안 정발산동에서 살아온 이웃이기도 하다.

세계 대부분의 헌법 국가들에서 비상계엄같은 국가긴급권을 가지고 있다. 국가긴급권은 전쟁·내란·경제공황, 대규모의 자연재해 등 평상시의 입헌주의적 통치기구로써는 대처할 수 없는 국가 비상사태(예외상태)에 작동될 수 있다. 국가 비상사태에서는 비상적 수단을 동원해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긴급권을 헌법 내에 포함시켜 놓은 것이다. 문제는 국가긴급권을 발동할 수 있는 자가 오용 또는 남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일 국가긴급권 남용, 히틀러 시대 문 열어줘 
계엄(戒嚴)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곳을 병력으로 경계함’이다. 계엄령을 독일어로는 'Kriegsrecht '인데 직역하면 ‘전쟁법’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국가긴급권의 하나인 계엄은 병력이 동원되는 가장 극단적인 비상적 조치이고, 이는 정상적인 헌법 정치의 잠정 중단을 뜻한다. 한마디로 군사통치를 합법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다. 계엄을 포함한 국가긴급권은 헌법학에서 그간 오랜 난제이자 고민이었다. 

1933년 1월 힌덴부르크 바이마르공화국 대통령은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1933년경 히틀러와 악수하는 힌덴부르크 대통령. 
1933년 1월 힌덴부르크 바이마르공화국 대통령은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당시 히틀러와 악수하는 힌덴부르크 대통령. 

이러한 고민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독일 패망 후 서독의 헌법인 기본법을 제정할 때였다. 1919년에 들어선, 독일 최초 민주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 제48조에는 제국대통령에게 국가긴급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국가긴급권을 남용했고, 남용 사례의 가장 마지막이 나치당의 지도자였던 히틀러를 제국 수상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러한 부정적 경험 때문에 전후 1949년 서독은 기본법 제정 당시 고민 끝에 결국 국가비상사태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이는 1968년 국가비상사태 규정에 해당하는 ‘방위사태’ 규정을 숱한 논란 끝에 삽입하는 기본법 개정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방위사태 규정을 두는 대신 국가긴급권 남용에 대비한 ‘저항권’ 또한 기본법 안에다 두었다. 전 세계에서 초실정법적인 권리로 인정되는 저항권이 헌법상 기본권으로 규정되고 있는 예는 지금의 독일 헌법이 유일하다. 

이종수 교수는 "계엄을 포함한 국가긴급권은 헌법학에서 그간 오랜 난제이자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권에서 줄곧 불거진 개헌론의 이면에는 그간 반복돼온 정치의 실패를 헌법의 실패로 덮으려는 불손한 의도가 깔려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종수 교수는 "계엄을 포함한 국가긴급권은 헌법학에서 그간 오랜 난제이자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권에서 줄곧 불거진 개헌론의 이면에는 그간 반복돼온 정치의 실패를 헌법의 실패로 덮으려는 불손한 의도가 깔려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계엄발동 요건·절차적 요건 못 갖춘 채 계엄 선포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행위는 중요한 국정행위이자 법률행위다. 모든 법률행위는 그 요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효력을 갖는다. 1987년에 개정된 우리나라 현행 헌법 제77조에는 1항에서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 군사상의 필요에 의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며 계엄의 발동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4항에서는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고, 계엄법 제2조 5항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러한 조항은 우리 정치사에서 비상계엄의 오남용 사례를 확인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다.  

그런데 12·3 비상계엄이 일어나던 날 밤에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할 일이 일어났는가. 비상계엄 선포 이전에 국회에 통고하거나 국무회의 심의를 제대로 거쳤는가. 12·3 비상계엄은 헌법이 정하고 있는 계엄 발동요건이나 절차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선포된 것이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는 ‘대통령, 피고인 등의 행위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 국회의원, 선관위를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행위, 즉 국헌문란에 해당함’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서해교전(1999년), 연평해전(2002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2010년) 등 수차례 국지전 혹은 군사적인 대치국면이 벌어졌지만 군 내부의 경계태세가 강화됐을지언정 비상계엄이 선포된 적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통치행위이고, 이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긴급재정명령 등 이른바 ‘통치행위’ 관련 판례를 보면, 긴급재정명령이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   

개헌논의, 정치실패 덮으려는 수단되어선 안 돼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이유가 헌법이 취약해서 그런가. 그렇다면 개헌이 필요한가. 헌법학자로서 정치권에서 줄곧 불거진 개헌론의 이면에는 그간 반복돼온 정치의 실패를 헌법의 실패로 덮으려는 불손한 의도가 깔려있다고 여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가 헌법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개헌 논의는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전개되어 왔다. 또한 모든 이슈들을 다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개헌론이 한번 불거지면 이 사회에서 이해관계를 가진 각 집단들이 일제히 개헌과정에 참여해 이익과 주장을 담으려고 한다. 

정부형태 개헌이 능사일 수도 없다. 가령 의원 내각제는 의회 다수가 총리를 선출하고 행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의원 내각제에서는 국민들에게 있는 유일한 국민 주권의 참여 방법이 의회 선거밖에 없다. 일본의 자민당처럼 1당 독재 체제로 굳어질 수 있다. 

대통령 4년 연임제는 어떠한가. 현직 대통령이 현직으로서의 프리미엄을 가지고 재선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중립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생긴다. 관권선거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년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국면이 아니었다면 과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 아마 선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총선 결과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견제하라는 국민들의 의사가 집약됐던 것이다. 그런데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대통령이 제기한 부정선거 주장은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이날 고양포럼에는 정발산동에 거주하는 김훈 작가도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이종수 교수의 강의 후 질문을 하고 있는 김훈 작가.
이날 고양포럼에는 정발산동에 거주하는 김훈 작가도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이종수 교수의 강의 후 질문을 하고 있는 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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