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작가
이인숙 작가

[고양신문]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 집회에 적극 참여하여 목소리를 낸 젊은 여성들이 화제가 되었다. 국회 앞에서 각양각색의 응원봉을 흔들던 빛의 시위, 한남동에서 추운 밤에 은박 담요를 둘러쓰고 눈을 맞으며 밤을 새웠던 키세스 시위, 농민들의 상경 시위가 경찰에 막히자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달려간 남태령 시위 등. 여성청년들이 농민들의 어려움이나 농정의 문제를 깊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약자인 농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혹한의 날씨에 함께 밤을 새웠다. 세대와 신분을 뛰어넘는 2030 여성들의 연대는 자신도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들의 연대는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다른 약자들에게로 확장되고 있다. 

  여성청년들이 힘을 모아 불의에 항거하고 약자들의 연대를 실천하는 동안 2030 남성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뉴스타파의 자료에 의하면 여의도 집회 참석율은 20대 여성이 제일 높았고 다음이 30대 여성이었다. 반면에 60대 이상을 제외하면 20대 남성의 참석율은 제일 낮았고 다음이 30대 남성이었다. 다른 연령대는 남녀 비율이 비슷한데 유독 2030만 남녀가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반면에 서부지법을 공격한 폭도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체포된 사람의 51%가 2030 남성들이었다. 탄핵반대 집회에도 젊은 남성들이 많이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도 20대 남성의 보수당 지지율이 70대와 비슷하여 남성청년들의 보수화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7·80년대에 민주화에 앞장섰던 2030 남성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2010년대 초반부터 누적된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들 수 있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에게 치이고, 남자들이 병역을 치르는 동안 여학우들은 자기 경력을 쌓고 있다. 그런데도 진보 세력은 여성이 성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여성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중장년 세대의 남녀차별을 자신들이 대신 갚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젠더 갈등은 이제 젠더 이슈를 넘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 2030 남성은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보수적인 세대가 되었다. 근본적 원인은 고성장 시대에 어렵지 않게 사회적 입지를 다진 부모 세대에 비해 저성장 시대에 경쟁은 치열하고 미래는 불안한 데 있다. 그런데 이들의 분노는 이러한 현실을 낳은 구조적인 측면보다 더 이상 커지지 않는 파이를 나눠야 할 같은 세대 여성에게 향하고 있다. 이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진보진영에 대한 적대감과 이를 이용해 젠더 갈라치기를 노골화하는 보수진영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2030 여성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는가. 그들도 똑같이 취업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며,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직장에서의 성차별도 여전하다. 결혼과 육아, 직업전선에서 하나를 포기해야 할지고 모른다는 또 다른 스트레스도 있다. 그럼에도 여성청년들은 다른 약자들의 모습이 언제든 나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그들과 연대하려고 한다. 함께 목소리를 내고 연대의 힘으로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버텨낸다. 

  남성청년들도 약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거나, 극소수이긴 하지만 극우 커뮤니티나 아스팔트 극우에 휩쓸려 들어가 또 다른 약자를 공격한다. 그것은 연대가 아니다. 분노와 혐오의 배설일 뿐이다. 연대의 언어는 혐오의 언어가 아니다. 혐오의 언어를 뱉는 집단은 젊은이들을 이용하여 이익을 꾀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같이 목소리를 낼 연대가 필요하다. 자신의 허약함과 불안을 인정하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 같은 세대의 여성이나 다른 약자를 공격하기보다 시야를 넓혀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을 바라보면 좋겠다. 나의 미래만 생각하는 좁은 이기심을 버리면 시야가 넓어질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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