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주변 산책코스(상) 서울역 광장과 서소문

100년 전 모습으로 복원된 ‘문화역서울284’
서울역 동-서 이어주는 도보길, 서울로7017
깜짝 놀랄 건축·전시, 서소문공원 역사박물관
짬날 때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명소 이어져

100년 전에 지어진 옛 서울역사 건물.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역사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100년 전에 지어진 옛 서울역사 건물.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역사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고양신문] 두 달 전 GTX가 개통된 덕분에 서울 사는 친구와 약속을 잡거나, 볼일을 보러 서울 나가는 부담이 없어졌다. 교통인프라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서울시청 부근에 갈 일이 있어서 GTX를 탔다. 일을 마치고 다시 서울역에 돌아오니, 여유시간이 좀 생겼다. 커피를 한잔 마실까 하다가, 이왕 나온 김에 서울역 주변을 걸어보기로 했다. 여건에 맞게 잠깐 둘러봐도 좋고, 날 잡아서 본격적인 나들이를 계획해도 손색없는 서울역 주변 가볼 만한 코스를 소개한다. 

서울역 광장 건너편 건물은 1977년에 지어진 서울스퀘어다. 애초 '대우빌딩'으로 불렸던 이 건물은 한동안 산업화의 상징적 풍경 역할을 했다. 
서울역 광장 건너편 건물은 1977년에 지어진 서울스퀘어다. 애초 '대우빌딩'으로 불렸던 이 건물은 한동안 산업화의 상징적 풍경 역할을 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옛 서울역사

서울역은 대한민국 수도를 대표하는 기차역답게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KTX가 출발하는 서울역 신역사가 본체라면,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경의중앙선, 그리고 GTX-A역이 지상과 지하에서 복잡하게 가지치기를 했다. 다양한 역사들과 연결되는 역 광장은 늘 시끄럽고 혼잡하다. 정치적 발언과 종교집회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끊이지 않고, 노숙자들 역시 한 풍경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맙게도 광장에서 몇 발만 옮기면, 격조 있는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설 수 있다. 바로 옛 서울역사를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단장한 ‘문화역서울284’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지어진 옛 서울역사는 올해로 준공 100년을 맞은, 사적 284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절충 양식으로 지었다는데, 붉은 벽채와 흰 대리석, 옥색의 청동지붕이 어우러진 외관이 인상적이다.

르네상스풍의 장중한 스케일로 설계된 옛 서울역사 중앙홀. 
르네상스풍의 장중한 스케일로 설계된 옛 서울역사 중앙홀. 

소박한 3등실, 구석구석 화려한 귀빈실

2004년 구역사가 폐쇄된 후 2011년 문화역서울284를 새단장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건 구 서울역사의 원형을 오래된 사진자료를 참조해 최대한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돔지붕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과 르네상스풍 실내장식, 나무로 만든 문과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찬찬히 감상하다보면 100년 전 경성의 핫플레이스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공간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가장 넓은 3등 대합실이 있고, 왼쪽으로는 1·2등 대합실과 부인대합실, 역장실, 그리고 가장 화려하게 장식된 귀빈실로 동선이 이어진다. 각각의 방들은 이름에 걸맞게 서로 다른 수준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에, 앞에 언급한 순서대로 3등 대합실에서 시작해 귀빈실을 마지막에 감상하는 순서로 관람하는 게 좋다.

화려하게 치장된 옛 서울역사 귀빈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이, 해방 이후에는 대통령과 국빈들이 사용했다.  
화려하게 치장된 옛 서울역사 귀빈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이, 해방 이후에는 대통령과 국빈들이 사용했다.  

특히 귀빈실은 화사한 채광과 우아한 벽장식,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 등 무척 화려한 장식으로 채워져 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이, 해방 이후에는 역대 대통령이나 국가 귀빈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서는 전국의 수준 높은 공예품들을 전시하는 <공예행: 골골샅샅, 면면촌촌>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각각의 방마다 다른 콘셉트로 전시를 구성해 관람하는 재미를 더했다. 문화역서울284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되고,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공예품 전시가 열리고 있는 3등 객실. 
공예품 전시가 열리고 있는 3등 객실. 

가까이서 보면 더욱 멋진 숭례문 

문화역사서울284에서 나와 광장 북쪽으로 가면 ‘서울로7017’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서울로7017은 서울역 앞을 횡단하던 고가차도를 개·보수해 걷기 좋은 코스로 꾸민 고가형 보행산책로다. 명칭에 붙은 70은 서울역고가가 만들어진 1970년을, 17은 보행로로 재탄생한 2017년을 뜻한다. 

서울역 앞 고가차도를 보수해 조성한 '서울로7017' 보행산책로. 
서울역 앞 고가차도를 보수해 조성한 '서울로7017' 보행산책로. 

서울로7017은 동북쪽으로 남산과 회현동 방향으로 이어지고, 철길 건너편 동쪽에서는 또다시 중림동 방향과 만리동 방향으로 갈라진다. 서울역 주변의 오래된 동네와 명소들을 연결해주는 편리하고 쾌적한 도보로인 셈이다. 곳곳에 화분과 정원이 꾸며져 다양한 식물들과 만날 수 있고, 작은 전시공간과 카페도 나타난다. 한겨울이라 아직은 풍경이 단조롭지만, 신록이 올라오는 계절이 오면 서울로7017의 진가가 새삼 드러난다. 

회현동 방향인 동북쪽으로 걷다가 왼쪽 남산공원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고, 시간이 없으면 오른쪽 숭례문만 둘러보고 돌아와도 좋다.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이야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숭례문 주변이 녹지공간으로 연결된 데 이어 앞뒷문이 온전히 개방된 것은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니 일부러 한번 찾아가 가까이에서 감상해볼 만하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숭례문 공원. 
외국인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숭례문 공원. 

옛 시절 그리운 염천교 수제화거리

이번에는 서울로를 따라 기찻길 서쪽 중림동으로 가보자. 중림동삼거리에서 염천교사거리 방향으로 꺾어지면 유서 깊은 수제화거리가 나타난다. 이곳 수제화거리의 역사는 1945년 광복 후 구두 장인들이 미군에서 흘러나온 군화를 수선해 구두를 만들어 팔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화 시기에는 “염천교에서 수제화 한 벌은 맞춰야 멋쟁이로 취급받았다”고 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기성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오늘날에는 댄스화, 무대화 등 특수한 신발들을 찾는 이들이 간간이 찾아오는 정도로 규모가 쇠락했다. 많을 때는 500개가 넘는 상점과 공장들이 염천교 부근에 몰려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십여 곳만 남아 ‘장인의 손기술’이 존중받던 시대의 마지막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소박하게 명맥을 잇고 있는 염천교 수제화거리.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소박하게 명맥을 잇고 있는 염천교 수제화거리. 

성문 밖 처형지에서 세계적 성지로 

수제화거리 건너편은 서소문역사공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복잡한 도심 속의 호젓한 녹지공원이지만, 공원 중앙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던 해인 1984년에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이 우뚝 서 있다. 알고 보니 이 자리는 조선 후기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처형된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지’였다. 이곳에서 처형된 44명의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된 국내 최대 천주교 성지인 것이다.

조선시대 서소문 밖 처형지 자리에 조성된 서소문역사공원. 
조선시대 서소문 밖 처형지 자리에 조성된 서소문역사공원. 

지상 공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조형물은 공원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자를 표현한 ‘노숙자 예수(Homeless Jesus)’상이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는 이 조각상은 홑이불 속 퀭한 눈동자의 예수 얼굴, 이불 밖으로 드러난 못자국 선명한 맨발이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서소문공원 한쪽에서 만날 수 있는 '노숙자 예수' 조형물. 
서소문공원 한쪽에서 만날 수 있는 '노숙자 예수' 조형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경사로. 마치 중세의 카타콤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경사로. 마치 중세의 카타콤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지하에서 마주친 종교건축·미술의 감동 

공원에서 기다란 경사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나타나는데, 평범해 보이는 공원 지하에 이렇게 큰 규모의 공간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휴식공간, 도서관, 역사기념관 등이 이어진다. 가톨릭 예술작품과 함께 서소문 밖 일대의 역사적 사료까지 꼼꼼하게 전시해놓아 종교를 떠나 누구나 방문해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모던한 현대미술관처럼 꾸며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사료 전시공간. 
모던한 현대미술관처럼 꾸며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사료 전시공간. 

지하 3층 중앙에는 하늘을 향해 탁 트인 하늘광장이 관람자를 맞는다. 하늘광장에 세워진 44개의 조형물은 폐 철도침목을 활용해 순교자들의 고통과 소망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건물부터 전시물, 조형물 하나하나에서 상징성과 조형미가 높은 수준에서 만나는 가톨릭 미술과 건축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볼거리도 많고 공간도 멋져서 잠깐 구경해보려고 내려갔다가 두어 시간을 머물렀다. 

지하에서 상부로 탁 트인 하늘광장에 서 있는, 폐 철도침목을 활용해 순교자들을 표현한 조형물. 
지하에서 상부로 탁 트인 하늘광장에 서 있는, 폐 철도침목을 활용해 순교자들을 표현한 조형물. 

‘강우규 의사’의 부릅뜬 두 눈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나와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무려 130년이 넘은 중림동 약현성당이 아랫동네를 굽어보고 있고, 만리동의 손기정체육공원 등 서울역 서부의 오래된 동네 골목길이 이어진다. 이곳들은 날이 좀 풀리는 3월에 다시 둘러보기로 하고 서울역 광장으로 돌아오니,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우뚝한 동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손에 폭탄을 들고 부릅뜬 눈으로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1919년 바로 이 장소에서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려 했던 왈우 강우규(曰愚 姜宇奎, 1859~1920) 의사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시공간이 앞선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며 첫 번째 서울역 주변 산책을 마무리했다.   

옛 서울역사를 배경으로 서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 강우규 의사는 1919년 이 장소에서 신임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기 위해 폭탄을 투척했다. 
옛 서울역사를 배경으로 서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 강우규 의사는 1919년 이 장소에서 신임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기 위해 폭탄을 투척했다. 
서울로7017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오른쪽으로 숭례문, 왼쪽으로 염쳔교 일대가 조망된다. 
서울로7017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오른쪽으로 숭례문, 왼쪽으로 염쳔교 일대가 조망된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가톨릭 건축과 미술의 수준 높은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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