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점과 선과 새』 (조오 지음. 창비)
[고양신문] 얼마 전, 방배숲환경도서관에 다녀왔다. ‘환경 특화’ 도서관의 좋은 사례를 살펴보려는 목적이었다. 도서관은 가운데 큰 중정을 두고, 사방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중정을 중심으로 좌석들이 배치되어 있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도서관이 일상 속에서 환경 문제를 다각도로 다루고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유리창에 새 충돌 방지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도로의 방음벽에서 볼 수 있는 맹금류 이미지는 새 충돌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야생 조류는 천적으로부터 도망치는 본능이 있지만, 정적인 맹금류 그림은 위험 요소로 인식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새들은 이러한 이미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새들에게 중요한 것은 점과 선이다. 즉,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맹금류 그림은 인간의 시각에서 탄생한 것일 뿐, 실제 조류 충돌 방지에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도시는 유리창 속에서 빛을 반사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나 새들에게 그 유리는 단지 하늘의 또 다른 연장선일 뿐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억 마리의 새들이 투명하거나 반사된 유리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다. 이는 고층 빌딩의 유리창만의 일이 아니다. 주택가의 작은 창문, 버스 정류장의 유리, 심지어 방음벽마저도 그들에게는 죽음의 벽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의 단면이다.
그림책 『점과 선과 새』 (조오 지음. 창비)에는 우정을 나누는 작은 새와 까만 새, 두 마리의 새가 등장한다. 한참을 놀던 작은 새가 내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날아가다 유리창에 부딪힌다. 까만 새는 작은 새에게 오랫동안 구상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의 유리창에 작은 점을 찍어 넣으면, 그 점들이 선이 되고, 선들은 예술적인 그림이 되어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유리창마다 그런 작품들이 그려진다면, 새들은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결국 작은 새는 유리창에 부딪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난다.
인간과 새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는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새의 시각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된다. 방배숲환경도서관의 사례처럼 창문에 간단한 무늬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새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캐나다, 미국 등에서는 새 충돌을 방지하는 유리 디자인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마련되었다. 캐나다 토론토는 조류 친화적인 건축 가이드라인을 도입했고, 미국에서도 2019년 ‘조류 보호를 위한 건축법(Bird-Safe Buildings Act)’이 발의되어 공공 건축물에 조류 친화적인 디자인을 적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2년 5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건축물, 방음벽, 수로 등의 인공구조물이 야생동물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의무화했다.
서울시 구로구는 2019년 8월 전국 최초로 ‘조류 충돌 저감 조례’를 제정했고, 이후 청주시, 충주시, 창원시, 광주광역시, 서산시, 충청남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조례를 도입하며 조류 충돌 방지 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환경부는 ‘건축물·투명 방음벽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 지원 사업’을 통해 충돌 방지를 위한 노력을 지원하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인식 부족과 지원 규모의 한계로 인해 참여가 저조한 실정이다.
우리가 만든 도시는 결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그곳은 새들의 하늘이기도 하고, 바람의 길이기도 하며, 모든 생명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작은 점과 선을 놓을 때, 비로소 그 도시에서 진정한 ‘공존’이 시작될 것이다.우리가 만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 질문의 답은 함께 살아갈 존재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새들도, 인간도, 그리고 모든 생명이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