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지난해 말,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관한 국민동의청원 2건의 청원자가 5만 명을 넘겼다. 현행법상 강간죄는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어야만 성립된다. 피해자는 폭행과 협박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고 저항해야만, 피해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및 협박에서 상대방의 동의로 바꿔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다.
'죽을 때까지 저항하지 않으면 강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한국 사회는 청소년에게 더욱 가혹하다. 2019년, 10세 여아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보습학원 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받아 논란이 되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경찰의 ‘그냥 손을 누르기만 한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점을 들어 “몸을 누른 행위를 피해자의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적 청소년 상'에서 벗어났을 때, 청소년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입증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탈가정 경험이 있는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때 만난 여성 청소년들은 원치 않는 성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가출 청소년'이라는 신분 때문에, 성관계를 댓가로 주거 공간이나 현금을 지원받아서, 이전에 성관계를 한 경험이 있어서, 주변에서 인정해주지 않거나 비난받을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자신의 경험을 '피해 경험'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폭행 및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으로 인정하는 현행법이 지금도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를 법의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폭력을 판별하는 기준은 폭행이나 협박,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동의 여부가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은 성관계는 그 자체로 '성폭력'이라는 당연한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 장애인 등 소수자들이 성적 동의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많은 여성 청소년이 성적 행위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욕구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그러나 청소년이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미성숙함'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 온 사회 때문이다. 청소년이 폭력을 구별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청소년의 욕구를 없는 양 취급해온 제도와 문화 때문이다.
이제는 소수자들이 성으로부터 격리되는 게 아니라, 장벽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성적 권리는 '원치 않는 성적 행위를 거부할 권리'를 넘어, '성적 행위 전후에 어려움을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과 조력을 받을 권리'다.
향후 국회가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대한 국민동의청원을 엄중하고 신속하게 다루기를 촉구한다. 또한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