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사람도서관 (22)
김기봉 고양시 사회복지연대 상임대표
[고양신문] 혼란한 시절입니다. 사람들은 연일 삶에 대한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며 꾸역꾸역 삶을 꾸려나가고 간신히 일상을 버텨냅니다. 그러나 약자들은 생존과 직결된 가혹한 문제와 상황에 내몰립니다. 세상의 잔인한 점은 국가와 공동체가 해소하지 못한 문제들이 그 사회 내 가장 취약한 약자들을 통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뚫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우리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영역에서 자신의 곤란함을 호소할 수조차 없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들과 오랜 시간 함께해온 김기봉 사회복지연대 상임대표에게 혜안을 구하고 싶어 금번 인터뷰에 모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풍경은 어땠나요.
58년생입니다. 과거 논밭만 있던 서울 강남과 잠실에 살았는데 아랫동네를 터미널, 윗동네를 성모병원이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인근 목장의 직원으로 일하느라 저는 이 윗동네에 살았습니다. 오늘날 압구정에 자리한 신동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지금도 그 학교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이 20리 정도 됐는데 길옆에는 온통 밭뿐이었습니다. 오이밭, 참외밭, 호박밭 등. 그 긴 등하굣길과 밭의 냄새가 여전히 아른거립니다.
잠실 둑이 생기기 전 비만 오면 항상 물이 차서 그때마다 나룻배를 타고 학교를 왔다갔다 했던 기억도 납니다. 잠실에서 동작구 상도동으로 이사 갈 때는 당시 차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전기도 안 들어올 때라 소달구지를 타고 이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집뿐만 아니라 어느 집에서나 호롱불로 밤을 비추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오늘날 강남과 잠실의 모습은 저의 어린 시절과 무척이나 동떨어진 풍경입니다.
❚간단한 개인소개와 최근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서울에서 종합사회복지관 부장으로 근무하다 고양시에서는 1995년도부터 문촌7복지관 관장으로 일했습니다. 2008년도부터는 고양시장애인주간보호 센터장으로 근무하다 얼마 전인 2023년 12월에 정년퇴임했습니다. 돌아보니 30년 동안 사회복지 영역에서 근무했고 근무하는 내내 제 주요 관심분야는 학교밖 아이들, 청소년 검정고시반, 탈북주민들, 발달장애인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일만하다 퇴임을 해서인지, 작년에는 걷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아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고 작년 하반기부터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의 행정을 담당하며 근무 중입니다. 또한 고양시 사회복지 기관장들과 함께 시장·의원 후보자들에게 각종 복지정책을 공약화해 제안하는 사회복지연대 상임대표로 활동 중인데 일이 쉽지 않습니다. 올해부터는 상시적으로 고양시 사회복지 네트워크를 넓히고 사회복지사의 처우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등 주요이슈까지 다루려 합니다. 현재는 100여명의 기관장들, 라인 워커들과 연대해 다양한 일들을 계획 중입니다.
❚ 고양시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활동 하게 된 계기와 느낀 점이 있다면.
98년 고양시장애인 주간보호센터가 문을 열었는데 문촌7복지관 관장으로 일하며 센터장을 겸직했습니다. 현재 주간보호센터가 있는 장소(일산역 부근)는 과거 우시장 부지였다가 사회복지용지로 용도변경되며 많은 분들의 수고로 지금의 센터가 됐습니다. 이후 복지관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장애인 센터장으로 일했습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복지관 관장이라면 다들 처우를 좋게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장애인 분야로 간 이유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서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목장 직원이었던 아버님이 장애인시설 직원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그런 연유로 장애인시설 사택에서 저의 부모님과 4남매가 오랫동안 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이후 시설부지가 재개발될 때마다 시설이 옮겨지며 사택 역시 상도동, 화곡동을 거쳐 중계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애인과 같이 먹고 자고 놀고 하면서, 장애인들과 가족처럼 함께 자라 거리가 없었을 뿐더러, 사춘기와 학창시절 등 어린 시절 저의 정체성은 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삶을 통해 형성됐습니다.
10~20년 전만 해도 발달장애인들과 당사자 가족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서,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분야, 지역사회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아, 이를 많이 알리려 시설 밖으로 나가 지역활동을 통해 주민들을 도우며 마을 내 다양한 분야와 교류하려 애썼습니다. 발달장애인은 경기도가 제일 많습니다. 고양시 같은 신도시가 생기면서 홀트, 경진학교, 밝은 학교 등 특수학교 3~4개가 생기니 장애인들은 특수학교가 있는 동네 인근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자연스레 다른 시군에 비해 발달장애인들이 많이 살게 된 거지요. 이후 지역 내 다양한 학교와 교류해 덕분에 특수학급도 많이 생겨나는 등 보람된 일들이 많았습니다.
현재는 발달장애인들의 고령화(40세 이후부터)가 많이 진행되면서, 당사자들이 40~50대, 부모님들은 70~80대가 되었고, 보호자들의 연로화, 경제력 저하, 가족구성원들의 사망 등으로 많은 문제를 겪다보니 이용 연령제한이 없는 주간보호센터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졌습니다. 고양시만 해도 사회복지 분야에 장애인 관련 예산이 꽤 많아졌지만 발달장애(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도 여전히 도움이 절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얼까요.
장애인은 연령대마다 필요한 게 다릅니다. 학교 초령기에는 자녀들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치료와 회복이 가능하다 생각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보호자의 인식을 확장하고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당사자의 조기치료(인지·언어·감각 치료), 신변자립(스스로 밥을 먹는 등 일상생활이 가능한) 훈련이 중요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장애인 청소년들이 사회체험과 현장학습 등 외부환경을 많이 접하는 프로그램이 주가 됩니다. 대중교통 이용이나 영화·전시관 관람 등을 장애의 정도에 따라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경증장애인들에게 직업활동 등 기술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주가 됩니다. 제과제빵, 각종 조립 등의 일자리, 경제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장애인 이용시설은 장애인복지관, 주간보호센터(낮에 이용 가능한), 직업재활시설 등으로 분류되며 여기서 직업재활시설은 또 근로작업장, 보호작업장 등으로 구분됩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성인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신변자립 능력이 퇴화되지 않게 유지하는 꾸준한 훈련 역시 필요합니다.
고양시는 탄현에 위치한 장애인복지관 1곳과 장애인주간보호시설이 10곳 있습니다. 시설당 이용자는 10~15명 정도 됩니다. 고양시는 특수학교의 수는 많지만 현재 복지관 규모와 장애인 관련시설 숫자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파주에 가까운 위치(탄현)에만 시설이 몰려있고 장애와 관련해서 지역 불균형이 있습니다. 덕양구에도 반드시 장애인 복지관이 자리해야 합니다. 지금 행신동에 드림센터를 건립 중인데 내부에 장애인 시설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장애인 주간보호, 평생교육, 치료교실, 수영장 등 약 2000평 규모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시설을 장애인복지관으로 기능전환하면 국고예산을 받을 수 있고, 고양시의 장애인 복지 불균형도 해소될 수 있을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국에는 구에 하나씩 장애인 복지관이 있습니다. 파주에는 이미 1개소가 있고 하나를 더 개관할 예정이며 김포시도 이미 2군데가 넘습니다. 인구가 100만이 넘는 고양시가 장애인복지관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발달장애인 정책으로 인해 장애인시설은 정원을 30인 이상 받지 못하게 됩니다. 장애의 종류와 정도가 전부 다른데 획일적인 장애관련 정책(탈시설 등)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관련 논의와 갈등이 많이 감소됐으나, 중고령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그룹홈(장애인 공동생활가정) 등이 지금보다 적극 설치·운영돼야 하는 등 고양시 안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준비와 계획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장애란 무엇일까요. 복지란 무엇일까요.
장애는 불편한 것입니다. 비장애인들에게도 언제나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장애는 언제든지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사고· 질환 등 후천적인 사유로 중도장애인이 된 경우가 70퍼센트 넘어갑니다. 굳이 장애가 아니더라도 가족들의 노화·노환·치매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언제나 이 불편함을 나와 내 소중한 가족이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시장경제에서 모든 사람의 능력과 수준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 격차와 간극 속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모든 일, 어려움에 처한 구성원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일이 저는 복지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장애인들과 동네의 주민들이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장애인 당사자들의 경우 발화가 안 되거나 인지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의 상점 (카페·마트·분식점 등)에 장애인 당사자들이 이용할 때 사용할 수 있는 AAC(그림안내판) 등을 만들어 배포한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게 동네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주민들이 이 안내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합니다.
이런 소소한 시도가 장애인 당사자들의 선택권과 권한을 확장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실험과 프로젝트들이 가능하려면 미리 지역 내 가게마다 양해를 구해야 하고 동시에 저마다 마을구성원들이 당사자의 기능과 역할을 마을 내에서 어떻게 확장할지 고민해야 가능한 일인데, 이러한 모든 일들이 장애인의 인권을 제고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환경과 담당사회복지사의 깊은 관심으로 어떠한 장애든 장애인들의 증후나 삶이 많이 좋아집니다. 이웃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이웃이라는 단어 안에는 사회적 안정망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복지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능력과 형편이 닿지 않아도 어려운 형편의 누군가와 이웃이 되는 시도 자체가 우리 관계 속에서 몇 번씩만 발생해도 민간의 영역에서 사회복지사 1명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 은퇴 이후의 삶이 요즘 큰 화두입니다. 은퇴 이전과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요.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보고 싶나요.
조금 덜 바쁜 것 말고 딱히 달라진 게 없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좋은 환경, 사회복지사들을 위한 근무환경 개선, 사회복지기관의 건강한 네트워크를 위해 고민 중입니다. 회사에서 했던 일과 고민이 이제는 개인 차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30년 넘게 고양시에서 월급을 받고 살았으니, 남은 시간을 고양시의 장애인과 사회복지 분야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몇 년 전에 라오스, 미얀마로 대학생·사회복지사들과 함께 해외봉사를 간 적이 있는데, 올해에는 개인적으로 틈나는 대로 분기에 한 달 정도 현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갈 예정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11일)에 현지에 일주일 동안 방문할 예정입니다.
❚ 필연적으로 다가올 노화와 죽음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존엄하게 늙어죽을 방법이 있을까요.
저에게는 기독교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필요하다면 빨리 죽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은 제가 좋아서 하는 일도 많았지만, 동시에 사명을 갖고 일한 적이 많아 일하며 힘들다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저의 일이 성취감, 행복감으로 돌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이 찾아온다면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안타까울 수 있겠지만, 저는 저의 죽음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삶이 넉넉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았으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다채롭고 활력 넘치게 살았습니다.
최근 사람마다 개인의 삶이 많이 각박합니다. 존엄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두 이미 알겠지만 이를 일상에서 체험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나와 가까운 가족들이 내 곁에 있다면, 이 2가지만 있다면 저는 존엄을 느끼며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사회복지에 대한 애정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열정과 사회복지사의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나를 아는 사람들한테 “저 사람은 참 열심히 잘 살았어. 어렵고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지 옆에서 말을 잘 들어주고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야” 라는 말이 듣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