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전 <잊혀지지 않은 이름들>
갤러리박영 기획, 작가 6인 참여
3월 31일까지, 오두산 통일전망대
[고양신문] 비극을 기억하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박영(대표 안수연)이 기획하고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이 주최하는 <잊혀지지 않은 이름들> 특별기획전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진행 중이다. 6·25전쟁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회화와 조각 그리고 설치작품 50여 점을 전시했다. 김범수, 심수진, 오흥배, 이준, 전주영, 정재철 6인의 미술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전시장 초입, 강렬하고 파격적인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푸른색의 남성 반신과 빨간색의 여성 반신이 짝을 이뤄 서 있고, 두 남녀는 여러 가닥의 실로 연결돼 있다. 이준 작가의 ‘맹목’ 시리즈 중 한 점이다. 연결된 실은 분단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 간의 혈연적 유대를 상징한다.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느다란 실이 이어주고 있다.
정재철 작가는 윤동주 시인의 초상 2점을 선보인다. 왼쪽 작품은 두터운 마티에르 기법으로 표현하여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오른쪽은 관람자의 시각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렌티큘러 렌즈를 활용한 작품이다. 흐트러진 윤동주 시인의 얼굴에서 고난의 삶과 절절했던 아픔이 묻어 나온다.
김범수 작가는 영화 필름으로 표현한 ‘만남’이라는 설치작품과, 아크릴 패널 50개로 구성한 작품 ‘시네마’를 전시했다. 아크릴 박스 속에서는 윤동주 ‘서시’의 핵심 단어인 ‘별’, ‘밤’, ‘서시’ 등의 글자가 LED 불빛으로 반복적으로 깜빡인다. 잊혀 가지만, 잊힐 수 없는 인물들이 우리의 기억을 입체적으로 소환한다.
오흥배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신작을 선보였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물망초의 꽃말을 주제화한 작품이다. 물망초는 잊힌 존재들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다. ‘보다, 보이다’라는 대형 작품 속에는, 갈색으로 말라버린 꽃들이 투명한 유리 화병 속에 담겨 있다. 현재 진행형으로 시들어가고 있는 꽃과 과거 완료형으로 시들어 버린 꽃이 대비된다. 현재와 과거가 꽃으로 연결된 극사실주의 작품들이다.
심수진과 전주영은 탈북 작가들이다. 심수진 작가는 ‘벽돌 사이에서 피는 생명력’, ‘고난 속에서 피어난 생명력’ 등에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크랙 기법으로 거친 표면을 표현했고, 그 거친 표면을 뚫고 피어나는 꽃의 모습에서 불굴의 힘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고향, 고통스러운 이별, 험난한 탈북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분단된 현실과 남북소통의 어려움을 담아낸 전주영 작가의 작품 ‘스페이스’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북한에서 보던 DMZ와 대한민국에서 보는 DMZ의 기이한 공존을 연작으로 포착했다. 서양의 유화기법으로 동양적인 풍경을 묘사한 그의 작품들은 우리네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일상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수많은 갈등이 숨겨져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박영의 안수연 대표는 “잊혀 가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재조명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면서 “남겨진 흔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자”고 밝혔다.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전시는 오는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주고 통일교육 체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2년에 건립됐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작가 강익중의 상설전시장도 있다. 강 작가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그림들을 한데 모아 작품을 완성하는데, 이는 그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다. 그가 실향민들과 함께 만든 초대형 합동 작품 ‘그리운 내고향’이 2층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실향민들의 글과 그림 1500점을 연결한 이 작품은, 작은 소리들이 모여서 커다란 함성으로 울려 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강 건너편의 산하에도 머지않아 따스한 봄바람이 불 것이다. 이번 전시가 분단과 통일, 이별과 만남, 그리고 남북한의 화합을 염원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소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9
문의 031-956-9600 (월요일 휴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