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 출간한 송복남 작가

구상하고 다듬고… 20년 만에 선보인 첫 작품  
극단 치닫는 ‘물질만능주의’ 역사적 맥락 추적
초기 고양신문 편집장 지낸 시절, 소중한 경험
“부조리 속에서도 존엄한 존재, 작가적 관심”

[고양신문] 신문사로 두툼한 책 한 권이 도착했다. 강렬한 주홍색 표지에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라는 제목이 적힌, 800쪽에 가까운 장편소설이다. 작가 이름은 송복남. 1989년 창간한 고양신문이 건강한 지역언론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1990년대 초 고양신문 편집장을 맡아 고군분투했던 ‘대선배’이다. 초창기 지면의 ‘편집장 칼럼’ 등을 읽으며 인문적 글쓰기에 탁월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신문사를 떠난 지 삼십여 년 만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한 소설을 보내온 것이다.      

작품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2016년 <현대시학> 신인상에 당선돼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고, 같은 해 '그랑호텔의 투숙객들' 초고가 <창작과비평> 장편소설상 본심에 오르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소설이 다루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한다. 시간적 배경은 120년 전 과거부터 오늘날까지를 아우르고, 공간적으로도 한반도는 물론 뉴욕 맨해튼과 아르헨티나, 영국 런던을 넘나든다. 이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독자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한 것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서면 질문지를 보내자, 구체적인 답변을 담은 회신이 돌아왔다. 고양신문 독자들에게 새로운 소설, 새로운 작가를 소개한다. 

[이미지제공=송복남]
[이미지제공=송복남]

❚ 본인 소개를 해달라.

15년 기자 생활을 했으니까, 언론인 출신이랄 수 있다.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다. 현대시학에 김민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발표한 시인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문자로 뭔가를 하는 일에 평생을 매달려 온 셈이다. 문자를 다루는 사람이어서 내 스스로 만족한 적이 있다. 문자야말로 모든 창조의 시작 아닌가.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하든 처음엔 문자로 뭔가를 적어 이미지화하고 개념화하면서 운율이나 서사를 펼친다. 문자는 관념을 선물한다. 이게 문자의 힘이다. 결국 글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됐다. 

❚ 첫 소설을 출간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사실 썩 특별하달 수 있는 소감은 없다. 나이 탓일 수 있다. 나이가 먹으면 감흥이 점점 사라진다. 웬만해선 잘 안 놀란다. 슬픈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내 젊은 날과 중장년을 지나며 고민하고 담아두었던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내 생각이 옳았다라는 자기 확신 같은 것을 할 수 있어 기쁘다. 

❚ 분량이 꽤 길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역사는 변하지만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소설의 핵심이랄 수 있다. 물질만능은 소유욕을 극단적으로 부추기고 거기서 오는 갖가지 차별과 사물의 물질화, 그리고 그걸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인간의 극단적 물질만능주의를 역사적 맥락을 통해 추적하고 보여주려고 했다. 오죽하면 소설 속 인물들이 영혼이 물질이기를 원하겠는가. 

❚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어떤 뜻을 담고 있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라는 말은 헝가리 문학이론가 지외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거기선 ‘심연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루카치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를 필두로 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비판하기 위해 쓴 용어다. 바다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안전한 자본주의에 몸을 담고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는 문화비평가들을 꾸짖는 말이다. 하지만 루카치 역시 심연의 그랑호텔의 투숙객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 사는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 물질을 추구하되 정도를 걷는 것, 그게 교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안다. 처음 착상에서 출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앞에서 말한 지외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의 ‘심연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 2005년 1월 당시 시사월간 <피플>지 발행인 겸 편집장이었다. 그때 쓴 칼럼이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었다. 20년 전에 구상을 하고 10년 뒤 2015년에 초고를 쓰고 다시 10년이 걸려 소설을 펴냈다. 내 생의 중요한 시기가 다 여기에 들어 있다.

초고가 2016년에 창작과비평 장편소설상 본심작에 올려졌고, 얘기가 된다는 소리구나 싶어서 1350여 매의 장편을 고치다 보니 4060매가 됐다. 대한제국부터 현재에 이르는 120년을 오가는 시간적 흐름과 1906년 청계천과 창덕궁, 영국 런던과 뉴욕, 1999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와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 그리고 현재의 팬데믹 시절을 오가며 서사가 이어지다 보니 길어지는 건 당연했다. 장소도 서울 서촌과 단양 도담삼봉, 충주 미륵대원지, 맨해튼, 마이애미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산하르비에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공간 자체가 광활하다. 

[이미지제공=송복남]
[이미지제공=송복남]

❚ 자신의 소설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밝혔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중남미 문학의 독특한 장르가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중남미 작가들이 서구 리얼리즘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그들 특유의 반성문학이 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말 그대로 가상의 시공간이 존재하고 인칭의 다양성과 그 소설에서만 쓰이는 새 개념이 등장한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대표적이고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천명관의 『고래』, 그리고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도 그런 류다.

내 소설 역시 그랑호텔이라는 가상공간을 무대로 한다. 역사적 사실이 등장하지만 사실도 있고 허구도 있다. 또 그들이 탈레스의 주장처럼 영혼이 물질이기를 원한다든가 영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행동양식, 전지적 시점과 3인칭 주관적 시점을 혼용한 것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요소들이다. 

❚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로 말하면.

잘 먹고 잘 살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소설의 메시지랄 수 있다. 이 시대처럼 이기적인 시대도 드물 것이다. 이게 다 물질만능이라는 가치의 획일화가 만든 몰가치 현상이다. 이는 뇌과학이나 물리학 심리학 같은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관계가 있다. 과학의 장점은 증거가 있어 확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찾게 된다. 그것의 대표적인 게 물질이다. 영혼이 물질이어서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획기적인 과학인가. 하지만 과학은 결국 영혼을 밝혀내지는 못 할 것이다. 영혼은 불가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눈에 보이기를 원한다. 이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 초기 고양신문 편집장을 맡기도 했고, 고양과의 인연도 깊다. 고양에서의 삶을 소개한다면.

고양은 제2의 고향이다. 초기 고양신문 편집국장을 할 때가 지방자치 초창기였다. 지방정부도 그렇고 지역언론도 그렇고 지방자치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다 배워갈 때였다. 고양에서 내 삶의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가 내 중장년기였다. 그런 만큼 정신적으로도 이곳에서 성장하고 익었다. 고양은 내가 어른이 된 곳이며, 고양신문은 내가 어른이 되도록 한 곳이다. 아마 나중에 죽더라도 이 근처 어디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일했는데, 굳이 소설을 써야 했던 이유는. 

처음엔 월간지에서 시작을 했고 나중에는 서울의 시사주간지와 시사월간지 <피플> 발행인 겸 편집장을 마지막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굳이라는 말처럼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말이 없는 것 같다. 굳이 소설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했을 때, ‘소설가’라고 써냈으니까 내겐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살고 있다. 
 
❚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사전을 찾으면서 읽었다는 독자가 있다. 소설 속 인상 깊은 아포리즘을 필사했다는 사람도 있고. 고마울 뿐이다. 그 때문에 아르케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의 <소설 속 아포리즘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매주 월, 수, 금요일 카드뉴스 형식으로 SNS를 통해 업그레드가 되고 있다. 사유의 깊이와 인문적 시선을 담은 명징하고 간결한 아포리즘을 골라 텍스트와 함께 싣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무엇보다 독자와 같이 하는 게 목적이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 출간 기념 강연회와 북토크, <인문학으로 읽는 그랑호텔의 투숙객들> 공개강좌가 다 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 어수선한 시대를 같이 읽고 고민하며 사유해 보자는 취지다.

[이미지제공=송복남]
[이미지제공=송복남]

❚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인간의 개별성이 관심사다. 개별성은 시대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 둘은 화합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 그 부조리가 인간에게 고뇌를 안기며 문화를 만들어 나가게 한다. 하지만 그 부조리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존엄한 존재여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차별이 사라지고 평등과 평화를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에 나오는 이과수라는 실존주의 인간형이 여전히 내가 글 속에서 고민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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