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고양신문] 유년 시절 엄마에게서 자주 듣던 몇 가지 말이 있다. 
“고향 친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아들을 낳았잖아.” “아들만 낳고 말라 했는데, 애 아빠가 하도 딸 하나만 낳아 달라고 하는 거야.” “아들과 달리 딸은 속도 안 썩이고 얼마나 순한지 몰라.”

뜻대로 안 되면 설사를 해대는 오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빠듯한 살림살이가 버거워 지친 엄마 때문이었을까? 대여섯 살 때쯤 작은아버지 손에 이끌려 나는 부산 친가로 보내졌다. 워낙 여자 손이 귀한 집이라, 나를 귀애하던 할아버지 품이 선명하다. 여름밤, 할아버지는 달고 달 수박을 마음껏 먹였고, 할아버지 품에서 자던 나는 이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옷까지 푹 적실 정도로 오줌을 쌌다. 다음날, 호되게 나무라는 할머니를 향해 손녀는 야무지게 되받아쳤다. “내가 싸고 싶어서 쌌나? 할아버지가 수박 먹여서 그런 거잖아!” 할아버지는 되바라진 손녀를 무릎에 앉히며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갓 태어난 사촌동생 똥기저귀를 버리라는 말에 싫다고 바락바락 대들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할아버지 무릎 덕분이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든든한 뒷배였다. 

몇 해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나의 권력은 짧게 끝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나는 그저 덤으로 낳은 순한 딸일 뿐이었다. 가족 중 서열이 가장 낮았기에 관심과 애정을 받으려면 기대치 이상으로 뭔가를 해내야 했다. 지금도 엄마는 예전의 나를 착하고 순한 딸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그런 딸이 되기 위해 애를 썼던 과거의 내가, 나는 한없이 안쓰럽다. 

지난 겨울, 영어 원서 읽기 모임에서 클레어 키건의 『Small things like these』(이처럼 사소한 것들)를 읽었다. 원서와 번역서, 영화를 모두 접할 만큼 울림이 깊어서 전작 『Foster』(맡겨진 소녀)를 이어 읽는 중이다. 다섯째 아이의 출산이 임박하여 셋째를 먼 친척에게 맡기기로 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아침에 엄마가 촘촘하게 땋아 준 머리는 담배를 피우느라 창문을 연 아빠 때문에 흐트러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척집에 민폐를 끼치러 가는 소녀의 입장에서는 잘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할 텐데, 아빠는 그저 귀찮은 일을 빨리 해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인 듯하다. 아이의 짐가방을 차에서 내려 주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버릴 정도로 무신경하다. 

집안일에 무신경한 아빠와 육아와 살림살이에 지친 엄마 사이에서 눈칫밥을 먹고 자라난 아이는 눈에 띄게 말이 없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게 되는 법이고, 그럼 꾸중도 따라올 테니 소녀가 터득한 생존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을 하지 않게 되면 당연히 비밀이 따라오는 법. 이 말 없는 소녀의 입을 열기 위해 에드나 아주머니는 ‘비밀이 있는 곳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이 집에서는 비밀이 없다고. 

낯선 집에서 지내는 첫날 밤, 화장실 위치와 요강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는데도 소녀는 침대를 적시고 만다. 이런 적이 처음이 아니기에 소녀는 이 실수를 계기로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를 은근히 바란다. 눈칫밥 먹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에서는 대처하기가 쉬운 법이다. 그런데 에드나 아주머니는 매트리스가 습기가 찬 것뿐이라며 소녀의 실수를 모른 척한다. 오래전 할아버지가 수박을 먹인 자신의 탓이라며 무릎에 앉힌 손녀의 등을 가만히 쓸어 준 것처럼. 

김민애 출판편집자

이것을 시작으로 소녀는 부모에게서 느끼지 못한 온기를 느끼며 말 없는 소녀에서 말하는 소녀가 되어 간다. 그러나 여름 방학은 너무나도 짧았다. 소녀는 다정함이 주는 기쁨을 알았기에 이별이 주는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에드나 아주머니 집에서는 비밀이 없었지만, 돌아온 집에서는 다시 비밀이 생겼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내 엄마, 아빠였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가만히 삼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온 집은 앞으로 계속 축축하고 차갑겠지만, 소녀의 마음속에 심어진 그 찬란했던 여름의 기억이 힘들 때마다 따뜻한 온기가 되어 주기를 바라본다. 내가 할아버지가 함께했던 그 여름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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