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방학

[고양신문] 3월의 학교에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 어울리는 인사말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어색한 교실의 공기를 반전시킬 청아한 바람 같은 나의 소개를 꿈꿉니다. 우리의 만남을 환대하며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칠판에 적어 놓고 싶습니다. 

서클로 둘러앉아 마음을 녹이는 활동을 먼저하고 각자의 감정과 기대를 나누며 연결과 소통의 공동체를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수업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교과서를 펼쳐 놓고 아이들의 경험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싶습니다. 동료 교사와 차 한잔을 마시며 유튜브 숏츠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서사와 맥락을 맛보게 하려면 어떤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똘똘한 인공지능으로부터 언제든 원하는 것을 꺼낼 수 있는 지식 자판기 시대! 원하는 것을 질문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수업에 담고 싶습니다. 

학급과 번호로 인식되지 않고 하나의 생명과 하나의 존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만남, 소통, 동료성, 깊이 있는 수업이 3월의 학교에 꼭 필요합니다. 꼭 필요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3월의 학교에는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교사 전용 메신저는 하루에도 100번 이상 서둘러 입력하고, 제출하고, 동의하라는 메시지를 토해냅니다. 각 부서에서 업무와 관련하여 전달하는 내용은 말 그대로 글자의 홍수입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할 수 없을 정도라서 해야 할 일을 체크리스트로 정리하기도 하지만, 이내 곧 포기하고 맙니다. 

교직원회의에서 교육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 싶지만, 학교폭력예방교육, 청렴교육,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안내, 아동학대예방 교육 등을 하고 나면 회의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됩니다.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학부모에게 전달하라는 교육청 공문은 하루에도 수십 개가 내려와 가정통신문을 보내야 하고, 법적으로 꼭 만들어야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절차와 규정이 중요한 학교는 반드시 협의회를 열고 그 결과를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자료의 양으로 따지면 법원 기록보다 더 많습니다. 제가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교 내 위원회 만해도 10개 남짓 됩니다. 하루 1500명 중에서 학교를 오지 않는 아이, 조퇴하는 아이들에 대한 출석 증빙 서류의 양은 1년이 지나면 문서이관용 상자 기준으로 70개 가 넘습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은 하고 싶은 일을 잊게 만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절차와 규정, 매뉴얼과 시스템이 없다면 각자 다른 방식의 일 처리로 혼란을 가중할 수 있고 누적되면 구성원 간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위원회를 통한 협의와 결과에 대한 기록은 사실 관계에 대한 오류를 줄일 수 있고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까요. 공문에 의한 일 처리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가져와 공직사회의 신뢰를 높일 수 있으니 무조건 비판할 일도 아닙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목적 전치 현상이지, 제도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 존재하는 많은 업무처리 방식은 사실 학교 민주주의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산물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해야 할 일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하고 싶은 일을 잊게 한다는 사실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각자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과 연결되어 더 힘 받으며 해야 합니다.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지난 3월 18일, 큰 아이가 군 입대를 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러 갔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을 하러 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높은 분들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이들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을 하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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