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가족의 모양』 (전민화 지음. 창비)

[고양신문] 누군가 하얀 종이를 주고 거기에 ‘가족’의 이미지를 떠올려 그려보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아마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 한두 명을 그리지 않을까? 또는 조금 더 나이 든 남성과 여성이 더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번에는 또 다른 종이를 주고, 거기에 ‘우리 가족’을 그리라고 하면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가족의 모양』(전민화 지음. 창비)은 제목 그대로 다양한 가족의 모양이 담긴 그림책이다. 할머니, 엄마, 아빠, 고모, 그리고 동생 둘과 사는 아이로 시작해 외동인 아이,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두두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아이, 장애인 오빠와 사는 아이, 엄마와 둘이 사는 아이, 입양가족 아이, 이모 둘과 사는 아이, 위탁 가정 아이, 북에서 온 아이, 전쟁을 뚫고 다른 나라로 와서 사는 아이 모습 등이 그려진다. 모두 다르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그림책 속 아이들의 표정은 따뜻하다.

그림책 속이 아닌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떨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비친족 가구 수는 51만을 넘어섰다. 여기서 말하는 비친족 가구는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과 함께 사는 5인 이하의 가구’를 의미하는데 여기 속하는 가구원 수는 110만 명에 이른다. 또한, 2021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결혼이나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연구에서도 ‘가족의 정의는 혈연 중심에서 점점 생활 공동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가족의 개념이 더 이상 전통적인 틀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적으로도 새로운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혼 관계의 이성 커플을 ‘생활공동체 관계’로 보고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생활동반자와 비슷한 개념의 시민 결합을 인정한 사례가 확인되는데 ‘팍스(PACS)’라 불리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제도가 대표적이다. 1999년에 만들어진 이 제도는 ‘성별에 관계없이 2명의 성인이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체결하는 계약’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팍스 당사자들은 혼인한 부부와 동일한 사회보장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독일 또한 2021년 ‘등록된 생활동반자관계법’을 통해 혼인과 유사한 공동체를 법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법적 제도와 사회적 인식 사이의 간극이 크다. 21대 국회에서는 성인 2명 합의로 동반자 관계를 성립했다고 보고 동거 부양의 의무와 가사 등 연대 책임을 지며 혼인에 준하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내내 계류되다가 22대 국회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2024년 6월 12일 KBS뉴스 보도 인용) 

흔히 ‘법적인 혼인 관계’이거나 ‘핏줄이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관계를 ‘가족’이라 여겨왔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초리는 아직 따뜻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가족 행사’ 홍보물에는 엄마, 아빠, 자녀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단순히 홍보 포스터에서만이 아니라, 행사 자체도 ‘엄마 아빠와 함께’라는 전제를 두고 기획되고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틀 안에서 ‘아직은 그런 가족이 일반적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틀에서 벗어난 가족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한’ 혹은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간주된다. 사회가 ‘다수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다수결’이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면, 결국 가족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 또한 인정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만 우리의 삶이 작동하게 된다면, 진정으로 다양한 가족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가족에 대해 아이들이 말한 문장이 담겨 있다. 신기하게도 가족의 모양은 각각 다 다르지만, 가족에 대해 말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가족은 나한테 행복을 주는 사람’이고, ‘아프면 안아주는 사람’이고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슬플 때 달래준다’. ‘서로 웃긴 이야기를 많이 하고’ ‘무섭지 않게 해주고’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 주고’ ‘힘들 때 응원해 주고’ ‘칭찬을 잘해 준다.’ 가족은 형태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다시 하얀 종이를 내민다. 이번에는 어떤 가족을 그려볼까? 그 가족은 어떤 색깔을 띠고, 어떤 숨결을 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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