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에세이 『사월에 부는 바람』
4·3의 비극, 성장기 기억, 시대적 통찰…
대작가의 삶과 문학 아우른 자전적 글들
“희망을 위해, 회의하고 질문해야죠”
[고양신문] “에세이집에 새 글을 보태기 위해 과거 독재정권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기억을 글로 쓰고 있는데 윤석열의 12·3 계엄이 터졌어요. 믿어지지가 않았죠. 계엄은 권력자가 체포와 고문과 투옥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전제하는 것이에요. 내가 바로 증인입니다. 다행히 시민과 국회가, 그리고 양심 있는 군인들이 윤석열의 계엄을 막았지만, 국민들이 긴장을 놓아버리면 언제든지 이런 사태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깨우쳐줬어요.”
제주4·3 제77주년인 지난 3일, 추념식이 열린 청계광장 인근에서 만난 현기영 작가는 하루 앞으로 예고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에 대해 “8인 전원일치 인용을 확신한다”면서 “우리 역사는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깨어있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정적 감성과 날선 비판의식
현기영 작가와 약속을 잡은 건 신간 에세이 『사월에 부는 바람』(한길사 刊)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1941년생인 현기영 작가는 4·3을 맨 처음 세상에 알린 대표작 『순이 삼촌』(1978년작)을 비롯해 구한말 제주에서 발생한 민란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 일제강점기 제주해녀들의 항쟁을 그린 『바람 타는 섬』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폭력적인 역사에 반복적으로 내몰린 제주 사람들의 상처와, 그를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삶을 장대한 서사 속에 담아냈다. 2년 전에는 4·3을 3권의 장편으로 엮은 『제주도우다』를 발표해 한국문학사에 또 하나의 역작을 상재했다.
『사월에 부는 바람』은 작가의 삶과 문학을 아우르는 자전적 에세이로, 작가 내면에 공존하는 서정적 감성과 날이 선 비판의식을 입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4부로 구성됐는데, 1부 ‘문학의 길’에서는 글쓰는 사람 현기영, 2부 ‘사월의 노래’에서는 4·3의 증언자 현기영, 3부 ‘나를 부르는 소리’에서는 제주의 자연이 키운 현기영, 4부 ‘우리는 누구인가’에서는 지금 여기 한국사회를 고민하는 현기영을 만날 수 있다. 오래 전 발표했던 글과 최근에 쓴 글들이 함께 들어있는데, 시대를 초월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통찰하는 작가의 시선으로 인해 모든 글들이 당대적 문제의식으로 읽힌다.
고난에 맞서는 제주사람 닮은 나무
책은 표지부터가 인상적이다. 나뭇가지가 한쪽 방향으로만 비틀린 나무 한 그루가 제주의 들녘에 서 있는데, 작가는 “제주도 특유의 강한 바람을 견뎌내고 있는 오래된 팽나무”라며 “억세고 굳세게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다시 힘차게 살아가는 제주 사람을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제주 사람의 고난은 단지 4·3만이 아니다. 작가는 4·3을 제주가 숙명적으로 겪어온 기나긴 수난사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제주는 ‘탐라’라는 어엿한 국호를 지닌 독립국이었는데,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한반도 통일국가에 복속됐습니다. 하지만 육지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제주를 나라의 동등한 백성으로 편입한 것이 아니라, 가혹한 수탈과 착취의 대상인 내국 식민지로 취급했어요. 그러다보니 도탄에 빠진 제주민들의 민란이 주기적으로 일어났죠. 그 과정에서 민란에 앞장선 장두들 서너 명이 수탈 완화를 약속받은 후 뭍에서 온 관군 앞에 자진 출두해 참수당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목숨을 대가로 제주라는 공동체의 삶을 지켜낸 것입니다.”
분단 반대와 절박한 생존 투쟁
작가는 4·3 역시 앞서 말한 제주의 저항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았다.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무려 3만여 명의 민간인이 처형됐지만, 사실상 이들의 요구는 단순하고 명료했다는 것이다.
“4·3에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분단 반대예요. 어렵사리 일제에서 벗어났는데, 미군정과 이승만은 나라를 반토막내려고 하고 있으니, 안된다는 거죠. 또 하나는 더 명료한데,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예요. 해방 이후의 혼란기에 흉년과 콜레라까지 겹친 상황에서 일제 때 치를 떨었던 강제 공출이 미군정에 의해 되살아납니다. 그것도 친일파들을 앞잡이 삼아서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되나?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일어섰던 게 4·3인 것입니다.”
한편으로 작가는 책에서 “제 한몸 바쳐 민중을 살리고자 했던 전통적 민란의 지도자들과, 항쟁의 뜻은 거룩하나 결국 민중을 파국에 몰아넣고 만 4·3의 젊은 지도부는 서로 비교할 수 없다”는 일부의 견해도 언급한다. 책의 2부에 실린 ‘4·3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길고 묵직한 에세이는 4·3의 실체를 올바로 바라보고 싶은 이라면 필독해야 할 글이다.
문학적 감성 가득한 3부의 글들
작가의 감성이 두드러지는 글들은 3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담겼다. 작가 스스로도 “아마도 ‘바다와 술잔’이라는 글이 가장 재밌게 읽힐 것”이라고 말한다. 현기영 작가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청춘이라 말하니 꽃다운 생기가 가득 묻어날 것 같지만, 글의 주된 정서는 작가의 성장기에 만났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에 대한 아련한 회고다. 지금도 작가의 꿈에 사춘기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는 그들은 좌절된 꿈, 이른 나이의 알코올중독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을 등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알게 모르게 우리 세대보다 10여 년 전 선배들이 줄줄이 죽어나간 4·3의 후유증을 그런 방식으로 앓았던 것 같아요. 나 역시 그런 허무주의적 정서에 감염돼 어리석은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생명의 욕구가 되살아났고, 자기 학대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자가 흥미롭게 읽은 또 하나의 글은 ‘탈중심의 변방에서’다. 지역신문 기자가 품을 수밖에 없는 변방적 자의식과 공명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심은 우리 사회의 주류 이데올로기인 물질주의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작은 단위의 변방들만이 그걸 거부할 수 있지요.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종이책을 읽는 행위, 도시농장에서 생명의 감각을 만나는 행위, 동네책방에서 취향이 비슷한 이들이 모임을 갖는 행위 등이 바로 탈중심의 움직임이지요. 주류에서 보면 왕따 같은 사람들인데, 자발적 왕따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왕따는 왕따끼리 커뮤니티를 만들면 됩니다.”
작가 입 빌려 말하는 4·3 원혼들
현기영 작가는 스스로를 ‘회의주의자’라고 말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현대사회와 물질문명에 대한 뿌리 깊은 회의가 반복해서 드러난다. 하지만 그 회의는 자기 소멸적 허무주의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집요한 회의주의가 적확한 비판과 전망의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회의주의자가 아니면 질문을 던질 수가 없어요. 역설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희망을 말하기 위해 먼저 회의해야 하는 거죠. ‘냉소주의도 힘이 된다’는 글에 그런 생각을 조금 담았습니다.”
앞으로의 창작활동에 대한 질문에 현기영 작가는 “모색 중”이라며 “자연에 대한, 풀과 나무에 대한 교감을 기록하고 싶고, 4·3에 대해 더 해야 할 이야기들도 콩트와 에세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써볼까 한다”고 밝혔다.
다시, 탄핵심판 선고로 화제가 이어지자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내내 이어져 온, 강력한 힘에 영합하거나 매혹당하는 부류들이 결국은 윤석열이라는 반 역사적 정권을 만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민주주의를 말 많고, 귀찮고, 한칼에 베어버릴 장애물로 여기는 세력들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폭력적인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77년 전 제주의 산야에서 눈감은 수많은 원혼들이 스스로 ‘4·3의 무당’임을 자처하는 작가의 입을 통해 가까스로 말하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