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우리 민족에게 있어 호랑이는 항상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지역별로 설화나 역사적인 사실 하나 정도씩은 가지고 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등이 그것이며 민화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호랑이 이야기는 유네스코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원문에 149회, 『승정원 일기』에 625회나 나온다.
그럼 우리 고양시에는 어떠한 설화나 역사적인 기록이 있을까? 시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고양시 사이버역사박물관(www.goyang.go.kr/ghistory)>에서 검색을 해보니 설화 <효자 박태성 이야기>와 <고양동 호랑이굴> 이야기가 나온다. <효자 박태성 이야기>는 조선후기의 인물인 박태성과 인왕산 호랑이의 우정을 그린 픽션이다. 효자로 한양인근에서 널리 소문이 난 박태성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3년 간 시묘(侍墓)살이를 한 이후에도 거의 매일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고양 땅을 찾아 문안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하루는 무악재 박석고개에서 사람 잡아먹는 인왕산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버지 묘에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야만 한다고 사정했으나 배가 고픈 호랑이는 그를 잡아먹으려 했다. 그러자 박태성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이 모습을 본 호랑이는 죽는 것이 그렇게도 두렵냐며 비웃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제가 죽으면 아버지께 더 이상 문안인사를 드리지 못할 테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박태성의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그의 효성에 감탄한다. 그리고는 넙적 엎드려 그를 등에 태우고 안전하게 아버지의 묘까지 데려다 준다. 그날 이후 인왕산 호랑이는 매일 같이 무악재에서 박태성을 기다리다가 편안하게 아버지의 묘까지 데려다 주었다. 세월이 흘러 40년이 지났다. 박태성도 이제 노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묘 근처에 묻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나 사람들은 박태성의 묘 옆에서 죽어있는 호랑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둘 사이의 우정에 깊은 감동을 받아 호랑이를 박태성의 묘 옆에 묻어준다. 이 이야기는 덕양구 효자동의 지명유래가 되었으며 북한산 아래 제청말(효자동 산15-1번지)에 가면 고양시 향토문화유산인 박태성의 묘와 정려비, 그리고 인왕산 호랑이의 묘와 석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290년 간(1625~1914) 고양군청이 소재해 있었던 고양시 고양동 지역에는 지금까지도 고양향교, 벽제관지, 은행나무 보호수(수령 500년) 등이 남아 있어 그 당시의 번화를 말해 주고 있다. 최근에는 중남미문화원 박물관(미술관)이 건립되어 도보 여행가들에게는 지역 자체가 하나의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 중남미문화원 박물관을 지나 고양향교 동쪽으로 나있는 흙돌담길을 돌아 나가면 대자산으로 오르게 된다. 대자산은 조선 태종의 넷째 아들인 성녕대군이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 대자사(大慈寺)에서 유래한 산의 이름이다. 해발 210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제법 숲이 우거져 곳곳에 혼자서 등산하지 말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고양향교에서 10여 분 산을 오르면 남․서로 갈림길이 나온다. 남쪽으로 가면 산을 넘어 최영장군 묘에 이르고 서쪽으로 가면 호랑이굴이 나온다. 호랑이굴은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막상 현장에 가서 살펴보면 호랑이가 살기에는 굴이 그다지 깊지가 않다. 다만 산세가 깊고 숲이 우거져 사람들의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호랑이가 충분히 살았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고양시는 지난 2019년 고양동 호랑이굴이 선사유적으로서의 가능성이 제기되어 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 뗀석기 30여 점, 빗살무늬토기편 100여 점, 청동기시대 농기구인 굴지구, 갈돌 등과 조선시대 자기, 도기, 기와편이 다수 발견되었다. 비록 호랑이와 관련한 흔적을 찾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다른 동굴유적들과는 다르게 편마암지대 내륙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특이점과 고양시 최초로 신석기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다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향후 추가 발굴을 통해 고양시의 선사유적에 대한 좀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문화인식 속에 존숭과 두려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고양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난 해 연말 이후 지속되어 온 긴 정치․사회적 혼돈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새 대통령의 선거, 국민대화합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다. 게다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를 비롯한 경제적 압박이 점점 강도를 더해가면서 기업과 국민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우리 국민성 속에 잠재해 있는 힘찬 호랑이의 기백과 현명한 지혜가 발휘되어 다시 번영의 시대가 열리길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