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국민연금 개혁안 평가와 향후 과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고양신문] 10년 넘게 난제에 봉착했던 국민연금 개혁안이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1998년 이후 27년 동안 동결돼 있던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한 것은 분명한 전환점이다. 하지만 이번 개혁안을 둘러싸고 ‘청년에게만 부담을 떠넘겼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복지정책 전문가로서 꾸준히 연금 개혁 논의를 이끌어온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행신2동 주민자치회장)를 만나 이번 개혁의 의미와 한계, 그리고 향후 과제에 대해 짚어봤다.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종합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개혁이라고 본다. 이번 개혁에서 가장 큰 의미는 보험료율 인상에 있다. 9%로 유지되던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린 건 김대중 정부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인 노무현 정부 개혁안도 소득대체율만 손봤을 뿐 보험료율은 건드리지 못했다. 사실 27년 동안 보험료율이 고정돼 있었다는 건 사회정책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이번 개혁으로 재정 안정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보험료율 12% 정도가 현실적 최대치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걸 넘겨 13%까지 인상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다만 여전히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린 것에는 이견이 있다. 실질적인 급여 인상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오히려 미래세대의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정서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에 일방적 부담을 전가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개혁안만 가지고 평가하면 그렇게 이야기하기 힘들다. 다만 청년층의 불만은 단순히 이번 개혁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의 누적된 불균형에 대한 비판이 이번에 분출된 거라고 봐야 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앞 세대보다 보험료는 더 내고, 실제로 받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 불만은 정당하고, 기성세대는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개혁안에 도입하지 못한 ‘세대별 차등 보험료율’이 매우 아쉽다. 40~50대는 연금 수령까지 남은 기간이 짧기 때문에 보험료를 더 빨리 인상하고, 청년층은 천천히 올리자는 제안이었는데, 이건 단순히 재정 논리를 넘어서 세대 간 형평성과 신뢰를 복원하는 상징적 조치로서 꼭 시행됐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세대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나왔고, 진영 논리에 휘말리면서 결국 폐기돼 버렸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

보험료율보다 ‘가입기간’ 확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는.
국민연금의 급여는 지급률×가입기간으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소득대체율이 40%라면 1년 가입 시 1%를 보장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30년 이상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단순히 지급률만 올리는 게 아니라 가입기간을 늘리는 게 현실적이이다. 가입자가 5년을 더 납부하면 본인이 그만큼 보험료도 더 내고 급여도 더 받게 되니, 재정적으로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금 보장성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선 가입기간 확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꾸고, 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계층에게는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군복무와 출산에 따른 연금 크레딧 제도도 현실화해야 한다.

청년세대의 연금 불신, 특히 기금 고갈 우려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기금 고갈이 반드시 지급 불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도 다른 나라처럼 기금 없이도 운용할 수 있다. 다만 기금이 사라지는 시점 이후엔 그때그때 국가 세금으로 연금을 충당해야 하니 재정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린 건 향후 지출 규모를 키우는 결정이다보니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번 개혁으로 고갈 시점은 늦춰졌지만 불안은 남아 있다. 이걸 해소하려면 다양한 수단을 병행해야 한다. 기금 운용 수익을 높이고, 수급 연령을 점진적으로 늦추고, 필요시 추가 보험료 인상과 국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한 뒤에도 안 된다면, 그때 가서 보험급여 삭감을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여야 합의에서 자동조정장치(자동 삭감 메커니즘)가 도입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논의돼야 한다고 보나.
당초 정부안에는 보험료율 인상에 더해, 재정 불안이 생기면 급여를 자동으로 줄이는 장치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급여 삭감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보장성 수준에서 자동 삭감을 제도화한다는 건 지나치게 선제적이고, 국민 불신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논의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향후 10년간 기금 수익, 인구 구조 등을 지켜보고, 나중에 필요하면 도입 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 보험료 인상이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이제 막 했는데, 연금 수령액 삭감까지 동시에 논의하는 건 국민 설득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연금 구조개혁은 이번에 이뤄지지 못했는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국민연금 하나만 가지고 노후 보장을 논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미 우리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라는 제도를 병행하고 있는 만큼 ‘연금 3총사’를 함께 염두에 두고 논의해야 한다. 먼저 기초연금은 빈곤 노인에게 더 집중적으로 지급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지금은 정액에 가까워서 차별성이 없다. 퇴직연금도 지금처럼 중간 해지가 가능한 방식으로는 연금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퇴직연금은 직장 이동 시에도 계속 유지되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연금 보장은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구조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금기금에 국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증세 논의와 연결되는데 이와 관련해 어떤 대안이 마련돼야 하나.
국가재정 투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미 발생한 연금 적자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 적자는 지금 세대에서 해결해야지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남겨둬서는 안된다. 따라서 ‘세대 형평 과세’를 제안한다.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연금소득세 등의 방식을 통해 세수를 확보하고 이를 기금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이건 단순한 증세가 아니라, 정의로운 재정 조정이다. 또 앞으로 요양·돌봄·기후위기 대응 등도 고려해 목적세 중심의 증세를 확대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설득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대선 국면에서는 여야 모두 증세를 회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감세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진짜 필요한 건 정직한 재정 논의이며,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감세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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