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고양신문] 인류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전환을 이룬 제도를 꼽으라면, 나는 ‘세금’이라고 답한다. 인류 사회는 출발부터 불평등체제였다. 힘이 센 사람, 땅이라는 한정 자원을 소유한 사람들이 사회를 지배했다. 이들은 힘으로 혹은 지주라는 이유로 민중들이 거둔 생산물을 가져갔다. 일하는 사람들이 땀으로 이룬 열매를 가혹하게 빼앗아가는 ‘착취’였다. 이 착취 수단의 이름이, 역사적으로 지대 혹은 공물 등 다양하지만, 바로 ‘세금’이다. 이렇게 인류사에서 세금은 지배계급의 착취를 의미했다.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등장하면서 세금의 DNA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버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낸다. 이 세입은 과거에는 오로지 지배계급의 금고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복지국가 재정으로 사용된다. 세금이 ‘버는만큼 내고 필요한만큼 지급’하는 재분배 제도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착취의 수단에서 ‘연대’의 상징으로!, 우리 인류가 이룬 소중한 성과이다.

물론 위 설명은 일부 북유럽 나라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세금이 연대를 온전히 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 세금 앞에 빨간불이 커졌다. 한해 국내총생산 중 세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인 조세부담률이 급락하고 있다. 2014년 GDP 16.3%였던 조세부담률은 꾸준히 올라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에는 22.1%까지 도달했었다. 이러한 추세면 조만간 OECD 국가 평균인 25%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기대도 생길 만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조세부담률이 낮아지더니 작년에는 17.7%까지 떨어졌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부진으로 법인세 등 일부 세입이 감소하기도 했지만,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가업승계상속세, 금융투자소득세 등을 깎아주거나 폐지한 결과이다. 모두가 고가의 집, 대기업 이윤, 5000만원 넘는 주식차익 등 자산과 수익이 많은 ‘부자’들에게 적용되는 세금이다. 조세부담률 하락폭 4.4% 포인트를 2024년 GDP 금액(2549조원)으로 계산하면 무려 112조원에 달한다. 작년 중앙정부 재정적자 105조원이니 사실상 조세부담률 하락으로 줄어든 세금만큼 나라 곳간에 적자가 발생한 셈이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재정을 망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새 정부가 희망을 만들어내면 된다. 부자, 대기업에게 세금 책임을 다하게 하고 국가재정도 튼튼히 채워가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대선에 나선 유력 후보들을 보면 앞이 깜깜해진다. 현재 상태로는 매년 수십조원의 재정적자가 예상될만큼 나라 곳간이 부실함에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심지어 지난 부자감세를 되돌리기는커녕 추가 감세를 약속한다. 지금까지 집부자, 대기업, 주식부자에게 세금을 깎아주었고 다음은 상속부자를 향해 감세 경쟁을 벌인다. 정치권은 상속세 감세를 ‘중산층 감세’라고 포장하지만, 전체 피상속인 중 상속세를 내는 사람의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세금 부담을 덜고 싶은 개인 심리를 악용하여 감세의 내용까지 왜곡하는 혹세무민이다. 이러다간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는커녕 감세국가, 불평등 방치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민생을 약속할 것이다. 유권자로서 우리 시민들이 물어야 한다. 그 재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고? 어쩌면 대선후보가 시민들에게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은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냐고? 여기가 갈림길이다. 결국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그래, 좋다, “더 내겠다” 대답하자. 구체적 방안도 제안하자. 시민들이 증세에 머뭇거리는 건 세금을 사용하는 정부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명확하게 민생에 사용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목적증세’ 하자. 국방에만 쓰는 방위세, 교육비로만 지출되는 교육세처럼, 복지에만 쓰는 세금 ‘사회복지세’를 도입하자고 요구하자. 이 세금은 소득과 자산에 따라 누진적으로 거두고 복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지출되는 복지목적세이다. 누진과세를 통해 부자감세를 되돌리는 효과를 거두면서 시민 다수가 책임 주체로 나서는 ‘시민참여 복지증세’이다. 우리도 세금에서 사회연대를 구현해 가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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