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넷 월요시민강좌 – 이영아 고양신문 대표
인간유전자, 자연에 의지토록 설계
숲을 통해 ‘나의 정체성’ 회복해야
생명의 존엄성 살리는 제도 필요
기후위기시대, 선택 아닌 필수요건
[고양신문] 그윽한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숲으로 가기 위해 배낭을 챙기는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다. 숲은 싱싱한 공기, 푸르름, 꽃과 열매, 그늘, 그리고 심리적 안정감까지 우리에게 안긴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숲과 자연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어서 ‘도시숲’의 형태로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기계화되고 상품화되는 환경에서 이제 도시 숲과 도시 생활의 조화는 현대 도시 환경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의 일부로서, 그리고 생명체로서 인간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비교적 쉬운 통로가 바로 도시 속 ‘마을숲’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건강넷, 고양신문, 사과나무의료재단이 함께하는 월요시민강좌에 이번에 초대된 이는 평소에도 숲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영아 고양신문 대표였다. 지난 28일 사과나무교육센터 대강의실(닥스메디빌딩 지하 1층)에서 이영아 대표는 ‘숲에 의지하며 사는 도시만들기’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펼쳤다. 이 대표는 “숲과 자연에 의지하며 사는 도시를 만드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한 주제다. 기후위기시대에 생존을 위한 제도이자 AI시대에 인간정체성을 위한 제도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의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자연의 일부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 식물,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생성됐다가는 언젠가 소멸하고 순환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은 자연의 구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뭇가지와 우리 몸 폐속 기관지 가지의 모양이 매우 흡사하고, 나뭇잎의 섬세한 잎맥이 우리 몸속 신장 동맥과 모세혈관과 닮아있다. 고체물질을 관통하는 전기의 흔적 역시 같은 모양이다. 이는 자연의 모든 구조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모양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식물과 동물,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공생하는 관계다. 이렇게 공생하는 관계를 인간이 인정하지 않으면 지구 생태계 전체에 위험을 초래한다. 앞으로 인간의 선택은 지구에 생존하는 식물과 동물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인류 역사 200만년 중에 99.7%의 시간 동안 인간은 숲과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이에 비해 인간이 도시를 이루며 살아온 역사는 찰나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유전자는 자연에 의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본능이 인간에 깊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우리가 숲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연과 분리됐을까.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 도시화, 산업화되면서 우리는 숲과 자연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자연과 우리 인간 사이에 상품이 끼어들게 되자 자연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위축됐다. 의식주 모든 분야가 상품화되고 심지어 건강마저도 상품화되면서, 과거에 우리가 가졌던 ‘나의 정체성’으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우리 각 개인에게는 상품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상품 소비자로서의 정체성 형성은 매스미디어(Mass Media)도 거들고 있다. 가령 알고리즘은 개인적 편향을 강화하고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요한다. 매스미디어는 우리를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기도 한다. 제도는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정치와 미디어가 나의 삶과 제도 사이를 가로막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연의 일부로서 나의 정체성을 회복할까. 개인의 변화, 문화의 변화, 제도의 변화에 기대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제도의 변화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태아는 1000억개의 뉴런(신경세포)을 가지고 태어난다. 뉴런은 또한 최대 1만5000개의 시냅스를 통해 다른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환경으로부터 자극받는 시냅스는 활성화되지만 자극받지 않는 시냅스는 제거된다. 이처럼 ‘신경망 가지치기’를 통해 점차 신경망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환경의 자극에 따라 자신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교육을 받는가, 혹은 어떤 제도에 영향을 받는가에 따라 인간의 뇌 활동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이다. 달리 말해 교육과 제도에 따라 인간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가진 생명으로서 가치발현에 도움을 주는 제도, 쓸모·구분·차별을 없애는 제도,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제도, 소비자가 아닌 생명으로서 존엄성을 살리는 제도가 자연의 일부로서 나의 정체성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연의 일부로서 나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제도가 성공한 사례를 싱가포르에서 찾을 수 있다. 싱가포르는 도시녹화사업을 통해 인구의 90%가 걸어서 10분 안에 숲이 우거진 공원에 도착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했다. 하루 1만보 걷기를 달성하면 레스토랑, 영화관, 대중교통 사용 바우처로 교환하는 ‘헬스포인트’를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 덕분인지 싱가포르는 건강 수명 1위의 국가가 됐다.
자연의 일부로서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고양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로당 마을숲 친구들’이라는 사과나무의료재단과 고양신문이 함께하는 치매예방을 위한 숲 치유 프로그램이다.
고양시에는 경로당이 1050개 정도 있다. 그렇지만 복지공간으로서의 경로당 역할은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경로당 마을숲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은 마을마다 있는 경로당과 마을마다 있는 마을숲을 연결하고, 치매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숲 치유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은 숲길을 걷고, 체조와 명상을 하고, 차를 마시며 서로 담소를 나누게 된다. 우선 경로당 마을숲 친구들 프로그램을 시범운영하는데 그 대상은 160개 경로당이고, 시범운영 후 자발적 운영을 위한 ‘마을숲 친구들 활동가’를 육성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