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물원 <고전 속의 꽃향기>
『임원경제지』 예원지의 꽃·풀·나무 65종
5월 30일까지, 서울식물원 주제정원
[고양신문] 서울식물원 주제원 한쪽에 한국 전통의 꽃식물 65종을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정원이 꾸며졌다. <고전 속의 꽃향기>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 조선의 대표적 실학자 풍석 서유구 선생이 편찬한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 중 「예원지」에 등장하는 화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단순히 식물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한옥이 있는 정원과 꽃식물들이 어우러지는 풍광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어 더 반갑다.
전시의 원전이 된 책의 제목인 ‘예원(藝畹)’은 ‘넓은 밭에서 화초를 기른다’는 뜻으로, 채소나 약초 등 실용적 목적이 아닌, 미적 감상의 대상인 꽃식물들을 따로 모아 특징과 재배법 등을 꼼꼼한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저작이다. 계절 따라 다채로운 주제의 전시를 열어 온 서울식물원이 2025년 봄을 맞아 야심차게 기획한 프로그램이 바로 <고전 속의 꽃향기>인 셈이다.
전시가 꾸며진 위치는 서울식물원 주제정원 내 ‘사색의 정원’과 ‘추억의 정원’이다. 나지막한 언덕을 지키고 있는 기와집 정자를 중심으로 꾸며진 사색의 정원은 탁 트인 마루에 앉아 자연 경관을 두 눈으로 끌어안았던,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을 재현했다. 이웃하고 있는 추억의 정원은 어릴 적 시골마을 어귀에서 만났던 잊혀가는 식물들을 테마로 삼은 공간이다. 두 곳 모두 「예원지」에 소개된, 옛 선비들이 가까이하며 즐겼던 전통 식물들을 전시하기에 안성맞춤인 정원이다.
사색의 정원 초입에는 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관람객을 맞는다. 실용지식의 선구자 풍석 서유구(1764~1845)의 삶과 업적, 16개 분야를 총 113권에 걸쳐 저술한 『임원경제지』의 구성을 알기 쉽게 요약해 놓았다.
한옥 정자마루에는 마치 풍석 서유구의 집필공간을 재현하듯 서탁 위에 등잔과 화분, 책자 등을 올려놓았다. 한옥 기둥과 처마가 만드는 프레임의 근경에는 초록빛 식물들로 가득한 정원 풍경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빼곡한 빌딩숲이 원경을 채워주고 있다.
꽃나무들을 감상하며 추억의 정원으로 내려서면 더 많은 꽃나무와 전시물들이 관람객의 발길을 붙든다. 「예원지」에 소개된 65가지 꽃식물들의 이름을 책에 수록된 전통 식물명으로 소개했고, 일년 열두 달 월별 꽃달력을 원문과 함께 정리해 놓았다. 5월 꽃달력에 의하면 ‘아욱꽃은 붉어지고, 석류꽃은 눈을 부시게 하고, 자색 오디가 뽕나무에 내린다’고 적고 있다. ‘작약은 가까운 손님, 매화는 맑은 손님, 정향은 소박한 손님, 연꽃은 고요한 손님’ 등으로 묘사한 꽃손님12(花十二客), 꽃친구10(花十友)을 천천히 읽으며 옛 선비의 호젓한 심상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65종의 식물들은 다시 꽃나무(목본 화훼류) 22종, 풀꽃(초본 화훼류) 28종, 관엽식물 15종으로 구분된다. 개중에는 △모란, 동백, 영산홍, 수국 등 익숙한 종들도 있고 △치자, 월계화, 길상초 등 이름은 들어봤는데 생김새는 모르는 종들도 있고 △새깃유홍초, 털동자꽃, 선메꽃 등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종들도 있다. 임원경제지를 집필한 서유구 선생의 관찰과 연구가 얼마나 철저하고 구체적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한다. 책과 글에 나오는 이름들을 머릿속에 기억했다가 정원에 심겨진 꽃나무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특별하다.
분량과 내용이 너무도 방대해 오래도록 번역할 엄두도 못냈던 『임원경제지』는 임원경제연구소(소장 정명현)의 지속적 노력 덕분에 순차적으로 번역·출판되고 있다. 무려 22년 동안 14지 출간을 완료한 임원경제연구소는 조만간 『임원경제지』 16지 전권 완역이라는 대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단순한 번역출간작업에 그치지 않고 『임원경제지』 가 품고 있는 방대한 전통지식을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복원하고 활용하는 작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이번 서울식물원 특별전시 역시 임원경제연구소의 오랜 노력이 어떤 결실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 사례다.
서울식물원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공동주최하는 <고전 속의 꽃향기>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진행된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는 서울식물원 유료 관람구간이기 때문에 전시를 만나려면 티켓을 끊고 주제정원으로 입장해야 한다. 짧은 봄이 가기 전에 고전 속에서 만났던 꽃식물들의 향기를 아름다운 정원에서 오감으로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