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동 이색공간 '강그로느'
손님 90%이상이 몽골인
조이완, 후슈르 등 대표 메뉴
"몸보다 먼저 마음 살리는 음식"
[고양신문] 낯선 풍경이 그리운 날이 있다. 출국장을 거치지 않아도 다른 시간대의 공기를 마시고 싶을 때, 일산 대화동 골목 어귀에 숨어 있는 작은 몽골 ‘강그노르’를 찾게 된다.
노란 간판, 갈색 문 너머로 낯선 언어가 흐르고, 양고기 특유의 누릿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낯익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익숙하지 않아서 더 생생한 향. 누군가는 이 냄새 하나로 고향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이 냄새 덕분에 여행자가 된다.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이국땅의 식탁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넝쿨식물이 올라탄 채광 좋은 창 옆으로 붉은색의 몽골국기와 갖가지 장식품이 벽면을 채우고, 양고기를 삶는 냄비 소리와 함께 몽골 전통 음악이 공간을 감싼다.
익숙한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 이국의 질서. 낯선 언어로 가득한 메뉴판에는 한글이 없다. 이곳은 ‘한국인을 위한 이색 맛집’이라기 보다, 실제 지역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이 고향의 맛을 찾기 위해 매일 들르는 공간으로 ‘현지인들을 위한 식당’에 가깝다. 손님의 90% 이상이 몽골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공간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고단한 노동의 하루를 끝내고 찾아와 혼자 조용히 식사 하고, 그들만의 언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곳. 2019년에 문을 연 ‘강그노르’는 단순한 외식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강그노르'라는 식당 이름은 몽골 서부 자브항(Zavkhan) 아이막에 위치한 호수, 올락친 하르노르(Khar Nuur)에서 따왔다. ’올락친 하르노르‘가 사막과 호수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만큼 ’강그노르‘ 역시 몽골의 전통 식문화, 공동체, 그리고 이주민의 그리움을 품은 하나의 문화적 풍경이 된다.
“음식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살려요. 우리는 냄새로, 고향을 기억하거든요.” 셰프이자 이곳의 안주인, 강수잉크자야씨의 말이다. 9년 전 남편을 만나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그녀는 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 기후와 노동 사이를 건너 한국 사람 못지않은 말솜씨로 적응, 안착해 살고 있다.
“몽골은 유목 생활을 해온 오랜 민족 특성 때문에 기본적으로 ’집밥 문화‘가 강해요. 어릴 적부터 집에서 만들어 먹은 음식들이기 때문에 고향의 맛을 나누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 굴라쉬(고기스튜), 후슈르(튀긴만두), 조이완(볶음면), 호호그(양고기찜), 샤드상 하위르가(구운 양갈비) 등의 메뉴는 그들의 근육에 힘을, 마음에 고향을 채워준다.
강그노르의 식탁에는 몽골의 일상과 명절을 나란히 엿볼 수 있다. 조이완과 호호그는 몽골에서 가정식과 잔치 음식을 각각 대표하는 음식이다. 가정식 조이완은 그녀가 직접 반죽해 손으로 썰어낸 납작한 면과 함께 양고기, 감자, 양배추와 더불어 기름에 볶는다. 조미료 대신 고기 기름과 불맛으로 완성되는 이 볶음면은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고된 하루를 채워주는 몽골의 집밥 그 자체다.
반면, 호호그는 특별한 날에만 오르는 요리다. 양의 다리 하나를 통째로 쪄내는 호호그는 달군 강돌을 고기와 채소 사이사이에 넣어 증기로 익히는 전통 방식으로 만든다. 고기와 감자는 돌의 열기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육즙과 기름, 향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몽골식 잔칫상인 만큼 조리 시간이 제법 소요된다. 돌을 데우는 시간이 있으므로, 호호그를 맛보려면 방문 전 예약은 필수다.
여기에 또 하나, 샤드상 하위르가(구운 양갈비)는 몽골 가정에서 가끔 정성 들여 해 먹는, 특별한 집밥이다. 양고기 중에서도 갈비나 뼈 부위를 기름에 지져내듯 볶아내는 요리로, 불 위에서 익은 고기에서는 특유의 누릿한 향과 묵직한 기름 냄새가 진하게 피어오른다. 양고기라는 중심 재료로 투박하지만, 뜨겁게 지져내는 이 손맛의 음식은 단단하고 거친 몽골의 기후 환경을 닮았다. 한국인의 입맛에 착 달라붙는 양념 된 갈비와는 전혀 다른 결의 고기 요리이니, 호불호가 갈리는 그 점은 꼭 염두에 두시라.
식당이라는 말보다 ‘살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이곳의 음식은 사랑의 유형에 가깝다. 이주민의 정체성이 머무는 힘의 원천, 공동체의 쉼터이자 문화적 경계 밖에 있는 이들에게 열린 식탁인 강그노르. 언어가 다르고 음식이 생소해도, 공간이 전하는 온기는 있다.
여행은 늘 먼 곳에 있는 것만 아니다. 익숙한 동네에서, 낯선 나라의 향기 안에 머물며 이국의 맛을 받아들이는 순간, 누군가의 고향을 조용히 음미하고 존중하며 여행하게 될 것이다.
맛보다 깊은, 사유의 풍경이 되어줄 ‘강그노르’라는 이름 아래, 대륙으로 통하는 문 하나를 조용히 열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