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보수 엘리트들의 선민의식과 특권의식, 그리고 이로 인한 문화 지체가 한국 민주주의 헌정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빠르게 이행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권력 중심부에서 다수 국민들의 주권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   

보수 엘리트의 국민주권 침해

전당대회를 거쳐 당원들이 선출한 대통령 후보를 소수의 당 지도부가 교체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0일 새벽 국민의힘 지도부는 3차례의 경선을 거쳐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문수 후보를 강제로 대선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국무총리직을 사퇴한 한덕수를 새로운 대선 후보로 선출하려 했다. 쌍권(권영세, 권성동) 등 지도부의 이런 시도는 전 당원투표에서의 부결로 무산됐지만, 정당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쿠데타였다. 비슷한 사례는 과거 민주당에서도 있었다. 김원길, 김영배 등 ‘후단협’ 소속 인사들이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경선을 통해 뽑힌 노무현 후보를 끌어내리고 무소속 정몽준 후보로 교체하려 했던 것이다.      

사상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 시도를 주도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오마이뉴스, ⓒ 남소연]

사법부에서도 국민 주권을 짓밟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일 조희대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서울 고법의 항소심 판단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신중해야만 할 대법원이 군사작전 하듯 빠른 속도로 제1당 대통령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는 선고를 내린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4월 22일 대법원 2심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을 이례적으로 2시간 만에 전원합의체로 돌리고, 통상 한 달에 한 번 열리던 합의 기일을 이틀 간격으로 두 차례나 열어 심리한 뒤 8일 만에 선고를 내렸다.

사건을 건네받은 서울 고법이 거센 국민적 반발을 의식해 파기환송심 재판을 당초 5월 15일에서 대통령선거가 끝난 6월 18일로 연기하며 논란은 잦아들었지만, 자칫하면 국민 주권이 박탈될 뻔했던 심각한 사건이었다. 조희대 대법원 입장에서는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주장하겠지만, 서울중앙지법의 김주옥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 전체게시판에서 “조희대 대법원은 재판으로 이재명 후보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거나, 적어도 유권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쳐 낙선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에 사법부의 명운을 걸고 과반 국회 의석을 장악한 정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와 승부를 겨루는 모험에 나섰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보수 엘리트들은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국민 주권의 헌정체제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우월성과 특권을 관철하려 한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이용해 권력을 얻지만, 일단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를 무시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파동 직후 페이북을 통해 이번 대선이 “자유와 법치의 길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무책임한 선동과 무질서에 국가의 명운을 내어줄 것인가”의 기로에 선 선거라며,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기 위해 보수세력의 단결을 호소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을 ‘자유민주주의자’로 믿고 있으며 탄핵당한 후에도 ‘자유와 법치’의 전사로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윤 전 대통령이 집권 때 했던 일은 ‘12.3 비상계엄’ 선포 등 자유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자의적 권력 행사였다. 윤석열 부부는 각종 선거에서 정당법상 엄격히 금지돼있는 공천 개입을 수시로 저질렀으며,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권을 선택적으로 남용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군대로 하여금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을 본회의장에서 강제로 끌어내려 했던 시도는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다. 더욱이 계엄 포고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정지시키는 무시무시한 조치들로 가득 차 있다.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계엄 당국이 자의적으로 체포, 구금, 압수수색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자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신체의 자유가 쉽게 짓밞힐 수 있는 암흑 세상이 펼쳐질 뻔 했던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자칭한 사람이 저지른 짓이다.      

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지키는 방안

민주주의(democracy)는 1인1표 방식으로 다수(demo)가 지배하는 정치 체제를 말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은 모두 1인 1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인간 모두가 동등하다는 이념에 입각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 정치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60년 ‘4·9 의거’에 의한 이승만 권위주의정부 퇴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에 의한 전두환 군사독재정부 퇴출, 2017년 촛불 시위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24년 12월 시민들에 의한 윤석열 친위쿠데타 저지 및 2025년 4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등 험난한 과정이었다. 

6월 항쟁 당시 국민의 염원은 대통령 직선제 도입이었다. 독재자가 임명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의 거수기 투표가 아닌 국민들이 직접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국민주권 시대를 갈망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규정이 명목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국가의 모든 의사 결정과 권력행사에서 최종 결정권을 국민이 갖는 정부를 원했던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오늘의 ‘87년 체제’이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빠르게 이행한 한국 사회에서 보수 엘리트들은 문화 지체를 겪고 있다. 이들의 사고방식과 행태가 국민 대중과 동떨어지게 된 건 출세 지향의 한국사회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특혜를 받는 걸 당연시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소수지만 정치, 사법 등 주요 권력기구의 목을 장악하고 있기에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백장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백장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민주주의 교육 강화 등 근본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민주 헌정체제를 지키기 위해 긴요한 조치들은 즉각 시행해야 한다. 군대 엘리트 일탈을 방지할 문민통제, 대법원의 민주적 통제,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통제 등은 특히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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