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책 속에 꽂아둘 것을 생각하며 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빗자루를 쥔 차가운 손을 잊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 간 적이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오면서 전에도 만났던 몸이 다소 불편한 아저씨가 계단 한 복판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어느 곳이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경기 침체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서민들은 겨우살이 걱정에 한숨만 절로 나오고, 길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들도 부쩍 늘어났다.

분주한 역전앞에는 저마다 추운 날씨에 두꺼운 겉옷을 움츠리며 따뜻한 곳으로 바쁜 행보가 교차되고 잠잠해지면 비로소 노숙자들의 공간으로 채워진다.

그들이 생각하는 내일이란 한 끼라도 때 울 수 있을 지 고민하는 대답없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까 메뉴를 고르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역 앞에 보이던 노숙인 쉼터가 작지만 참 따뜻해보였고 비록 어렵지만 작은 부분을 내놓는 이들의 손길이 있어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이다.

한편 대조적으로 먹을 것이 많아도 스스로 굶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다. 관습처럼 행해지는 단식농성은 어떤 주장에 대해서 자신만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겠다는 수단으로 일삼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폭넓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사람이라면 그 방법에 대한 효과를 짐작할 수 있기 마련이다.

최근 보안법 폐지에 동의하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날을 정하여 자발적으로 굶는 릴레이식 단식농성이 시작됐는가 하면, 반환경 개발정책 철회 등을 요구하는 환경단체의 대표들도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고 한다.

개인과 단체의 주장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사회 속에 나 혼자가 아닌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벌거벗고 나체 시위를 하거나 사탕안주면 밥 안먹겠다고 울어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저 내버려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 노숙자들을 외면한 채 먹을 것이 있어도 노골적으로 단식을 선택하는 농성자들에게 연민과 관심을 보이는 이상한 나라의 국민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찬희 / 회사원>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