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고양신문] 며칠 후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된다.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치러지게 된 이번 선거의 의미는 무엇일까? 선거를 1주일가량 앞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단순히 내 한 표를 넘어서서 이번 선거가 갖는 시대적 의미랄까, 이 선거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어떤 것인지 정리해 보고 싶었다. 나는 왜 투표하는가?

우선 이번 선거는 앞선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한 탄핵으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윤 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가리는 게 순서일 것 같다. 

나는 윤석열의 가장 큰 문제로 그가 하루아침에 우리 사회를 온갖 비정상적인 주술과 무속에 휩싸인 음습한 사회로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통령 선거 기간, 손바닥에 조잡한 펜글씨로 임금 왕(王)자를 쓰고 나왔을 때부터 설마설마했던 무속 논란은 그의 3년 집권 기간 동안 온 나라를 휘감았다. 수천억원이 드는 용산 관저 이전을 치밀한 사전 논의나 계획 없이 OO법사니 △△법사의 조언에 따라 했다는 말이 사실처럼 떠돌았다. 영국 여왕 장례식까지 가서, 막상 고인을 직접 보고 조문하는 절차는 건너뛴, 이해 못할 외교적 참사의 뒤에도 무속인들의 조언이 있었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무속의 완결판이 바로 12·3 쿠데타였다. 그 군사 쿠데타의 기획, 집행과정에 핵심 역할을 했던 것도 바로 무속인인 노상원 아니었던가? 현역 신분도 아닌 그의 명령을 현역 지휘관들이 듣고 있었다는, 나라를 이렇게 거꾸로 서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무속에 휩싸인 윤석열이었다. 망해가던 19세기 조선의 궁궐 한쪽에서는 민비가 불러온 무당 진령군의 굿 푸닥거리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던데,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나라가 그 꼴이 되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망가진 나라를 정상화 시키는 데에 이번 선거의 시대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둘째로, 책임 정치의 실종이다. 윤의 집권 초기인 2022년 10월에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다친 초대형 참사의 주무장관이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오래 그 자리를 유지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강바닥에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채수근 해병을 밀어넣은 사단장은 윤석열의 비호 아래 무사했고, 오히려 그 사건을 법대로 처리하려 했던 박정훈 대령이 온갖 핍박을 받았다.

전 세계 청소년 수만 명을 초대해 3683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던 2023년 여름 잼버리 세계대회는, 한국을 세계적으로 망신시킨 대회였다. K-pop, ‘한류’의 매력을 따라 한국을 찾아온 청소년들을 기다렸던 것은, 숙소는 물론 식수, 위생시설조차 부족하고 행정은 엉망인 새만금의 허허벌판이었다. 영국 대표단 4500명이 철수하는 등 대참사로 끝났지만 누구 하나 여기에 책임졌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무책임 사태 극치는 2023년 11월, 119대 29표라는 어이없는 표차로 나타난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서 드러난다. 5744억원을 유치 경비로 쓰고, 경영에 바쁜 재벌 총수들을 행사장인 파리까지 데리고 가 폭탄주에 절게 만든 대가치고는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역시 아무도 여기에 책임을 진 사람은 없다.

셋째,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맞는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대통령은 한 나라의 최고 외교관이다. 그 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대통령이 멋있게 보여야 국민도 멋있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이 집권 초부터 보여줬던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것 뿐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이든”과 “날리면” 사건이다. 정상회담장에서 상대국 정상인 바이든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대통령 부인의 행태는 차마 부끄러워 입에 담기도 조심스럽다.

자. 이제 내가 나 스스로의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왜 투표하는가?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굴러갔던 나라가 다시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는 것을 간절히 보고 싶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서 “이게 나라냐?”고 울부짖던 시민들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시즌2’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