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현의 ‘물 따라 가보는 고양’]
(1) 한석규와 일산정수장

1997년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대곡역-일산정수장 명장면 연기
'쉬리'의 무대는 자양취수장
국민배우 송강호도 함께 열연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배우 한석규씨가 대곡역에서 내려 일산정수장이 있는 동네로 걸어가는 모습.

[고양신문] 지금의 배우 한석규를 만든 것이 고양시의 수돗물이었다고 말하면 믿으실까요? 도대체 한석규와 고양시 수돗물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시작부터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꺼낼까요. 먼저 수돗물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이미 아는 분도 많겠지만, 고양시민들이 쓰는 수돗물은 대곡역 부근 일산정수장과 고양정수장에서 만들어 보냅니다. 일산정수장은 1992년 준공되어 당시 건설 중이던 일산신도시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후 고양정수장이 2009년에 준공되어 현재 두 정수장은 인구 100만이 넘는 특례시가 된 고양시 전체의 물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저는 전철 3호선이 일산신도시까지 연장되어 처음 개통될 무렵인 1996년 한국수자원공사에 입사하여 일산정수장으로 첫 출근하면서 고양시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때 대곡역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대곡역은 황량한 벌판에 역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아침 출근길에 내리는 승객이 혼자 밖에 없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철 5개 노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고 인근 역세권에 지식융합단지가 들어서는 것도 확정되었지요. 특히 지난해 말 GTX가 개통되면서 서울역까지 11분 만에 갈 수 있는 교통혁명의 중심지가 되어 많은 승객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서설은 이쯤에서 그치고 본격적으로 한석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연배가 조금 높으신 분들은 1997년 개봉된 이창동 감독의 첫 영화 <초록물고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영화 초반부에, 막동이로 나오는 한석규가 군에서 제대하여 신도시가 된 고양시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다가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미애(심혜진)를 구해주고 봉변까지 당한 한석규가 저녁 무렵 대곡역에서 내려 출구 이정표를 보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논밭 사이의 길을 거쳐 기차 건널목을 건너 동네로 걸어 들어갑니다. 바로 이 장면에 일산정수장이 나옵니다. 저는 심지어 퇴근길에 이 장면을 찍는 것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때 한석규가 출연한 것을 알았다면 멈춰서 구경했을 텐데 지금도 아쉽습니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씨가 대곡역에서 내린 장면.

한석규와 수돗물의 연결고리가 약하다고요? 조금만 더 들어보시면 깜짝 놀랄만한 일이 펼쳐집니다. 지금은 거의 60km 가까이 떨어진 팔당댐의 물을 끌어다가 수돗물을 만들어 보내드리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잠실대교 옆 자양취수장에서 한강물을 끌어오고 있었습니다. <초록물고기>로 인정받은 한석규는 1999년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일컬어지는 영화 <쉬리>에 최민식, 송강호 배우와 함께 출연하여 엄청난 흥행을 거두게 됩니다. 바로 이 영화에 자양취수장이 나옵니다. 초록물고기로 데뷔하여 진짜 깡패를 섭외한 거 아니냐는 의혹이 생길 정도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뒤 국민배우가 된 송강호가 두 영화에 다 출연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고양시 수돗물의 원수를 보내주는 취수장부터 수돗물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정수장까지 모두 한석규의 영화에 등장하다니 깜짝 놀랄만한 일 아닌가요. 

한석규가 영화에서 건너던 그 건널목은 바로 당시 대곡역에서 출발하여 원릉, 일영, 송추를 거쳐 의정부까지 운행되던 교외선 철길의 중대정리 건널목이었습니다. 한석규와 심혜진이 처음 만나게 된 기차도 교외선으로 설정되었고(실제 촬영은 경원선) 나중에 심야 기차 데이트를 하다가 운정역에서 내렸던 그 기차는 경의선(지금의 경의중앙선)이었죠. 이용객이 적어 2004년 이후 중단되었던 교외선은 올해 다시 개통되었고 최근에 하루 20번으로 증편도 되었습니다. 1905년에 개통되어 서울과 평안북도 신의주를 잇던 유서 깊은 경의선은 비둘기호, 무궁화호를 거쳐 2009년에 전철화된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창동 감독의 후속작으로 큰 흥행을 거둔 <박하사탕>에도 기차와 철길 장면이 많은 것도 지금 생각하면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초록물고기' 촬영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는 지금의 대곡역 주변 모습.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독자들을 위해, 일산신도시 초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초록물고기>를 추천합니다(넷플릭스에도 있습니다). 대곡역과 일산정수장이 나오는 명장면도 찾아보신 뒤 서울, 파주 어느 쪽에서 오시던지 경의선이나 GTX를 타고 대곡역에 내리셔서 교외선을 한 번 타보세요. 영화 속 한석규가 건넨 철도 건널목을 지나실 것이고 연인과 가신다면 한석규가 심혜진을 처음 만났던, 나중에 심야 기차 안에서 키스를 나누던 바로 그 기차 안에서 사랑이 무르익을 수도 있습니다. 일영 유원지, 송추계곡의 맛집들과 의정부 부대찌개는 덤입니다.     

조창현 한국수자원공사 경기서북권지사 관리부장
조창현 한국수자원공사 경기서북권지사 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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