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접경지역 테마여행] 백령도·대청도 생태평화탐방
2박 3일, 두 섬에서 들른 장소만 20여 곳
해안마다 색다른 풍광과 신기한 지질명소들
생태 풍요롭지만 남·북 대치 긴장감도 여전
“좋은 이웃과 함께여서 더 행복했던 여행”
[고양신문] 누군가는 벼르고 벼렸는데 배가 못 떴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내 해무에 갇혀 아무것도 못 보고 왔다고도 했다. 인천에서 바닷길로 220km 떨어진, 쾌속선을 타고 4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우리나라 영토 최북단 섬 백령도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건넨 얘기다. 고맙게도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백령도·대청도 고양신문 생태평화탐방’ 2박 3일 일정 내내 봄날의 바다는 잔잔했고, 바다 안개도 슬그머니 밀려왔다가 물러났다. 33명 참가자 모두 날씨 요정에게 은덕을 쌓은 이들이었나보다.
지도를 펼쳐보면 백령도, 대청도는 대한민국 영토라는 게 새삼 신기한 섬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코앞의 장산곶과 장단반도는 북한 땅으로,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남한 영토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상황이 이렇다 보니 휴전 이후에도 어선 납북, NLL 분쟁, 중국어선 침범, 서해 교전과 천안함 폭침이 연이어 터진 긴장의 섬이기도 하다. 여행을 설계하고 안내한 박경만 고양신문 발행인을 빼고는 모두가 초행길, 설레는 기대를 안고 흰날개(白翎) 섬에 발을 들였다.
배 타고, 차 타고, 걷고, 구경하고
3일간의 일정은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백령도에서는 첫날 △심청각 △끝섬전망대를 들른 후 △하늬해변에서 물범을 관찰했고 △특별한 지질명소인 감람암포획 현무암 분포지도 둘러보았다. 이어 △고봉포구 앞바다 사자바위와 △인근 철조망 뒤편 갈매기 서식지를 구경한 후 △두무진으로 향해 유람선 관광과 트레킹을 즐겼다.
둘째 날에는 △화동습지에서 아침을 맞는 새들을 관찰한 후 △담수호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명소전망대에 올랐다가 △맨발바닥에 닿는 질감이 완전히 다른 콩돌해안과 △사곶해안을 차례로 거닐었고 △백령도 기념비 △천안함 위령탑도 들렀다. 이어 △조선인이 세운 두 번째 교회 중화동교회를 구경한 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용틀임바위와 남포리 습곡절벽을 산책하며 갈매기들의 번식 둥지를 관찰했다.
멋진 일정은 대청도로 건너간 셋째 날에도 이어졌다. △옥죽동 해안사구에서는 해송숲에 둘러싸인 모래사막을 만났고 △농여해변에서는 나이테바위를 구경하고 모래 풀등을 밟으며 탄성을 터뜨렸다. 이어 △모래울해변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울창한 적송숲을 산책한 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완주한 서풍받이 트레킹으로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섬 곳곳에서 만난 놀라운 비경
“해외여행보다 더 멋진 풍경” “지인들에게 무조건 추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돌아가며 남긴 소감에 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무진의 웅장한 비경, 하늬해변의 현무암 절벽, 콩돌해안의 우아한 곡선, 사곶해안의 탁 트인 개방감, 용틀임바위의 비현실적 조형미, 옥죽동 해안사구의 이국적 풍광, 나이테바위의 믿기지 않는 무늬, 농여해변 풀등의 순도 높은 단순함, 서풍받이의 현기증 나는 시야…. 기억나는 최고의 절경을 꼽아보니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순환도로를 차로 한 바퀴 돌면 30분 남짓이면 원점으로 돌아오는 작은 섬에 이토록 다채로운 경치가 숨어있을 줄이야. 여행의 첫 기대가 특별한 풍경과의 만남이라면, 이번 탐방의 점수는 주저 없이 100점 만점이다.
일정마다 적절히 섞인 트레킹과 맨발걷기도 흐응이 좋았다. 쑥향기 은은한 습지를 따라 산책했고, 콩돌이 깔린 해변을 걸었고, 단단한 모래바닥을 밟았고, 찰랑이는 잔물결에 발목을 적셨고, 솔숲길 그늘을 거닐었고, 바위능선을 숨차게 올랐다. 발바닥에 닿는 감촉은 매번 달랐고, 마음의 시간은 풍경과 하나가 되어 천천히 흘렀다.
솜털 보송 새끼갈매기, 눈앞에
서해 먼 섬의 생태는 신비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백령도 앞바다에서 자생하는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331호)들은 하늬해변 앞 물범바위와 까나리 그물 주변을 헤엄치다 가끔씩 고개를 내밀고 들숨을 쉬었다.
아침공기가 선선한 화동습지에서는 장다리물떼새와 뒷부리장다리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들이 종종거리는 모습을 망원경 너머 숨죽이고 지켜봤고, 풀숲에서 우는 개개비 소리를 감상했다. 버스가 지나는 길 가 논에도 온통 새들이었다. 어느 순간 흰날개해오라기가 논둑에서 날아올랐고, 저어새 한 쌍이 부지런히 논바닥을 저어댔고, 쇠백로와 황로들은 작은 들꽃이 만발한 초지를 점령했다. 먼 바다를 건너 대륙을 오가는 새들에게 외떨어져 떠 있는 섬들은 더없이 고마운 쉼터일 수밖에 없다.
백령도를 번식지로 선택한 갈매기와 쇠가마우지가 해안절벽 가득 둥지를 틀고 솜털 보송한 새끼들을 길러내는 모습을 코앞에서 관찰한 경험은 상상도 못한 놀라움이었다. 한 참가자는 “좋은 곳이 어떤 곳인지를 새롭게 알게 됐다. 바로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아득한 시간이 그려낸 지구의 나이테
물범과 새들과 들꽃이 생명이 약동하는 지금 이 순간을 노래했다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지질명소들은 아득한 지구의 역사를 속삭였다. 겹겹이 층을 이룬 퇴적층이 압력을 받아 물결무늬를 이루고, 지각변동으로 수직으로 서고, 긴 세월 깎여나가며 마치 고목나무 나이테 형상으로 굳어져버린 나이테바위가 품고 있는 시간은 무려 10억 년.
그런가 하면 서풍받이는 높게 솟은 규암 절벽이 긴 세월 강한 파도와 바람을 맞아 깎여나간 흔적이고, 옥죽동 해안사구는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든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 속의 사막이고, 해안가 현무암 바위는 땅 밑 가장 깊은 맨틀의 감람석을 끌어안고 지표로 솟아올랐다. 바위와 콩돌과 모래와 세사가 다시 퇴적돼 현란한 무늬의 지층이 되는 지질의 순환은 마주하는 이의 상상력을 오랜 과거로 안내했다.
머리 쏙쏙 해설, 웃음 팡팡 가이드
생태와 지질에 대한 이해는 전문가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인천녹색연합이 운영하는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의 박정운 단장은 백령도 물범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고, 곳곳에서 만난 지질해설사와 역사해설사들은 현지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주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을 인솔한 박경만 기자는 서해 5도를 포함한 DMZ의 생태와 역사 전문답게 버스에서 수시로 마이크를 잡고 창밖의 새들과 풍경들을 설명했다.
잊을 수 없는 재미와 웃음을 준 현지가이드 겸 운전기사 ‘김반장’의 활약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안내와 개그의 경계를 넘나드는 타율 높은 조크, 배경음악을 타이밍 맞게 주무르는 센스를 갖춘 ‘까나리여행사 에이스’ 김반장은 저녁 식사 후 깜짝 마술쇼를 직접 선보여 참가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천안함 젊은 넋들이 잠든 바다
감탄과 웃음이 일정 내내 이어졌지만, 동시에 차가운 냉전의 현실이 곳곳에서 자각되는 여정이기도 했다. 콘크리트 덩이에 날카롭게 꽂힌 용치(龍齒, 적선의 상륙을 방해하기 위한 설치물)들이 아름다운 해변마다 줄지어 서 있었고, 산 능선마다 군사기지와 레이더, 초소와 포대들이 이곳이 북녘땅 깊숙이 밀고 들어 온 국토 방위의 최전선임을 순간순간 상기시켜 주었다. 천안함 위령탑 언덕에서는 46명 용사들이 잠든 바다를 건너다보며 숙연한 추모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현지 해설사들의 설명에서도 분단의 아픔을 여전히 겪고 있는 섬 주민들의 애환과 확고한 안보의식에 기대어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일상의 긴장감이 동시에 감지됐다.
혹독한 현실에 맞선 강인한 섬사람들
섬사람들은 과거에는 혹독한 자연환경에, 오늘날에는 분단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감당했다. 백령도 앞바다가 무대인 심청전 설화에는 오래도록 서해의 거센 바람과 물결에 운명을 맡기고 살아온 서해 뱃사람들의 애환이 묻어있다. 바다 위 휴전선이 그어지며 어장이 막히자, 백령도 주민들은 섬 남쪽 깊이 파고 들어온 갯벌을 막아 농경지를 만들었다. 오늘날 백령도는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섬이 되었다. 대청도 홍어잡이 어민들이 모여사는 옥죽동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모래언덕에 소나무를 심어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모래를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농사 역시 경쟁력을 잃어가는 오늘날, 풍요로운 갯벌과 맞바꾼 간척사업의 손익은 물음표가 되었고, 희소성 높은 관광자원인 모래언덕이 줄어드는 것을 고민하는 상황을 맞았다. 섬을 찾아오는 새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비행기가 착륙할만큼 단단했던 사곶해안의 모래가 갈수록 물러지는 원인도 인위적 개발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백령도의 맛 까나리, 대청도의 맛 홍어
섬 여행에서 미식(美食) 얘기가 빠지면 섭섭하다. 김반장이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르는 백령도 특산품 까나리는 반찬이 되어 식탁에 오르고, 액젓이 되어 김치와 국물에 녹아들었다. 아구탕은 칼칼한 고춧가루를, 꽃게탕은 구수한 집된장을 풀었고, 갯바위굴이 들어간 메밀칼국수와 물냉과 비냉이 타협을 본 반반냉면도 별미였다. 우리나라 홍어의 절반을 대청도 어민들이 잡고 있고, 대청도에선 홍어를 삭히지 않고 싱싱한 생물로 먹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톡 쏘는 전라도식 삭힌 홍어가 살짝 그립기도 했지만.
“다음 여행에서 또 만나요”
나들이를 함께 한 이들은 대개가 고양의 이웃들이고, 멀리 인천과 부산,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온 부부도 있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고양신문이 진행한 테마여행에 빠지지 않고 동행한 반가운 얼굴도 있었고, 지인의 소개로 처음 온 이들도 있었다. 많은 커플이 부부 동반으로 참가했고, 오랜 공부모임 멤버들, 또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재미나게 뭉치기도 했다.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이 ‘한번 보고 말 사람들’과의 일회성 동행이지만, 고양신문 테마여행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연령대와 관심사도 비슷하다보니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자연스레 균형을 이루곤 한다. “좋은 분들과 함께한 시간” “나이 들어 교류할 수 있는 이웃들을 만나서 좋았다” “다음 여행에서 또 만나기를 기대하겠다”는 소감들이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고양신문이 기획하는 다음 테마여행은 8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백두산에서 하얼빈까지, 잊혀진 우리 역사를 탐방하는 7일 간의 특별여행이다. 몇 자리 안 남았으니 늦기 전에 신청하자. 문의 031-963-2900(고양신문)
